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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울은 고린도후서 본론부의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무엇보다도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야 거짓교사들처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자기 논리나, 자기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모든 생각을 주님께 복종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8절입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에게 ‘권세’ 즉 ‘엑수시아’ 곧 권위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자 하는 너희들을 무너뜨리려 하는 게 아니라 너희들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너희들을 권면하고 때로 너희를 징계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너희들을 세우고자 함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세워주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진다, 정말로 기쁜 일이죠. 그러나 그것은 그 분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죠. 내 능력으로는 내 몸에서 태어난 내 자식도 바르게 세우지 못하는 게 우리의 실상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런 권위를 주셔서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바울만 그런 게 아니라 주님안에서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것이죠.
9절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그 동안 거짓 교사나 거짓 사도들에 의해 부화뇌동했던 것을 사도 바울이 꾸짖을지라도, 그것은 너희들을 놀라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10절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그들의 말이란 바울의 대적자들, 바울을 폄훼하는 거짓 사도들을 말이죠. 그들이 말하기를, 바울은 얼굴과 얼굴을 보면 말도 못하는데, 편지들은 좀 무게가 있다고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칭찬이겠습니까? 말은 못하는데 글을 좀 쓰는 것 같아, 하는 뜻이죠. 그런데 11장 6절에 넘어가면 바울은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하고 고백하죠.
사실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들은 원고문을 작성할 때 글을 잘 읽습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마이크 잡고 이야기할 때는 말을 잘 못하죠. 원고를 끊임없이 다듬기 때문에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것이죠. 바울도 실은 그런 모습이죠. 고린도는 수사학이 발달된 곳입니다. 거기에서 웬만한 남자들은 웅변술이 뛰어납니다. 그곳에서 바울이 들어가서 이야기할 때 어눌하지만 오직 주님의 진리만 전할 뿐이었죠. 그러니 그곳의 웅변가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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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1절에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떠나 편지로 말한 것과, 자신이 교인들 앞에서 일한 그것과, 같다는 것을, 너희들이 알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말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를 따지지만, 바울은 말과 글이 일치된 삶을 살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거짓 교사들은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12절,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거짓 사도들은 언행이 일치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진짜 사도라고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부류에 끼고 싶지도 않고, 견주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자기’라는 말이 5번 나옵니다. 언행은 전혀 일치가 되지 않는데도 자기를 칭찬하는 자들의 기준이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지혜가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절대 잣대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그 분 앞에서 나 자신을 부인하고 뜯어낼 것을 뜯어냄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화자찬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깃들 수 없죠.
13절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여기에서 ‘한계’로 번역된 헬라어 ‘카논’은 ‘원칙’입니다. 바울은 자기도 전혀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자신도 자랑하지만,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신 원칙 속에서 자랑한다는 것이죠.
바울이 정한 원칙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두 가지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도행전 9장 15절에 나오는 원칙이죠.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 눈이 멀게 되는데, 하나님은 선지자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죠. 바울에게 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은 이방인을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하고 말씀하죠. 그것이 바울의 첫 번째 원칙이죠.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 두 번째 원칙은 로마서 5장 12절에 있죠.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 거기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것이 두 번째 원칙입니다. 그 원칙 속에서 자랑하는 게 있는데 13절 하반절에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다.” 바로 그런 두 가지 원칙을 따르다보니 너희에게까지 이르지 않았더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자랑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자신을 이끄신 주님을 자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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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는 너희에게 나아갈 자격이 없는 자이지만, 욕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거짓 교사들이죠. 그들은 고린도교회에 들어갈 자격도, 권세도, 받지 못했는데 자기들으 사욕을 위해 교회를 흔들고자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께서 주신 두 원칙에 이끌렸다는 거죠.
15절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너희들에게까지 미친 것이 남의 수고 위에 뿌린 열매인양 자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도 거짓 교사들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너희의 믿음이 커지는 풍성한 열매가 맺기를 바란다는 것이죠.
16절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남의 수고로 이뤄진 것을 나의 공로인 것처럼 자랑하려 함이 아니라, 너희의 발판으로 해서 이 복음이 더 멀리까지 전파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를 발판 삼아 로마까지 간 것이죠. 그래서 고린도에서 쓴 편지가 로마서였습니다. 그걸 쓴 뒤 예루살렘으로 갔고, 그 뒤에 로마에 직접 가서 복음을 전했죠.
17절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고린도후서 도입부에서 나온 고백인데, 주 안에서 자랑하면, 누구만 보입니까? 주님만 보이죠.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만 드러내는데, 바울은 주님만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고린도교회까지 이끄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죠.
18절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내가 아무리 자화자찬해도, 거짓 사도들처럼 나 자신을 칭찬해도, 오직 주님께서 칭찬하는 자라야 그 사람이 옳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님께 칭찬받는 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서 있을 때만 가능하죠. 그만큼 말씀 속에 있지 않고, 말씀의 거울 앞에 서지 않고 칭찬받기를 원한다면 결국 자화자찬하는 거짓교사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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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말씀의 조명 속에서 내가 주님께 이끄심을 받고 주님께 칭찬받는 자인가, 늘 생각하면서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죠. 오늘도 그 분의 말씀 속에서 주님께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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