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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울은 고린도후서 본론부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 거짓교사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권징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죠. 그래서 10장 1절부터 단호하고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지난 시간부터 살펴본 고린도후서 11장 1절-15절까지는 바울이 부득불 자신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것 자체는 어리석은 일이라 표현을 했죠.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시의 거짓 사도들이 바울의 외모를 폄하했고, 바울의 언변술에 대해서 비난했고, 자신들은 진짜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수고비를 받지만 바울은 가짜이기 때문에 비용도 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죠. 그에 비해 바울은 외모보다 속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는 것과, 언행일치의 삶이 중요하고, 고린도교회를 세울 때 마게도냐의 다른 교회들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고린도교회에서는 무보수로 일했다고 했죠. 그만큼 너희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복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죠. 바로 그런 부분들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거짓 사도들이 아무리 자화자찬하고, 언행일치가 안 되는 거짓사설로 현혹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반듯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는 걸 잊지 말라고 했죠. 그래서 온갖 난관을 뚫고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삶을 하나님이 아실 것이고,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임을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그것을 부득불 자랑한다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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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장선상에 오늘 16절입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왜죠? 너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내 말을 진심으로 알아들을 것이란 뜻이죠. 그래서 17절에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자이 부분을 새번역에선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빠져서 자랑하기를 이렇게 장담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게 하는 말입니다.” 자신이 거짓 사도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하다보니까 자신도 그들처럼 어리석게 자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8절에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바울도 그들처럼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죠. 거짓 사도들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지만 바울은 결국 주님을 자랑하기 위함이죠. 교회를 수호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 방편 중의 하나로 부득불 나도 자랑하는 길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19절에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랑했지만 어리석은 거짓 사도들을 용납한 것은 너희들이 스스로 어리석다는 것을 밝혀준 것 아니더냐, 하는 뜻이죠. 그래서 20절에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그 거짓 사도들은 진리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빼앗고, 뺨을 치며 너희들 위에 군림했는데, 어찌 너희들이 그런 것들을 용납했느냐, 하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왜 오늘날에도 이단 사이비에 농락당하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스로가 ‘영적 자립인’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면 언제든지 이단 사이비가 전하는 교리 앞에 농락당할 수 있는 것이죠.
21절에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거짓 사도들은 교인들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농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군림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 너희들을 농락한 그들처럼 나는 강하지 못해 너희들을 농락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만약 계속 한다면 나도 그들만큼 해야 하겠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그러니 이제는 너희들이 그들에게 농락당해서 되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22절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거짓 사도들이 히브리인이면,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라면,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나 역시도 그렇다는 것이죠. 히브리인이란 육체적인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고 이스라엘인이란 종교적인 혈통을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란 율법의 전통을 강조하는 것이죠. 저들이 그런 점들을 자랑한다면 나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죠. 바꿔 말해 그것들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그들이 자랑할 수 없는 걸 자랑합니다. 23절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여기에서 ‘정신없는 말’이란, ‘내가 하는 말이 여러분이 듣기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하는 뜻입니다. 그 정도로 바울은 수고를 넘치도록 했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거짓 사도들이 그런 삶을 살았더냐, 하는 것이죠. 그들에게 고난당한 증거가 있더냐,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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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바울이 고난당한 증거를 이야기하죠. 24절에서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40에 하나 감한 매 곧 39대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는 것이죠. 그것은 신명기 25장 2-3절에 따른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다스리지만 생명 자체를 소중히 여기도록 하는 뜻에서 그렇게 명령했지만,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문자숭배주의자들처럼 39대까지 정확하게 때렸던 것이죠. 바울이 그들에게 그런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또 25절에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았다’는 것은 로마인들에게 맞은 것이고 ‘한 번 돌로 맞았다’는 건 루스드라에서 거반 죽을 때 그런 것이고, 또 세 번 파선하고, 일주일 동안 바다에서 조난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강의 위험, 강도 위험, 동족 위험, 이방인 위험, 시내 위험, 광야 위험, 바다 위험, 거짓 형제 위험, 그 위험이 8가지입니다. 바울의 행로가 얼마나 고달팠을지 알 수 있죠.
그리고 27절에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천 년 전 복음전도여행이 이 정도로 고달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왜 그 길을 간 것입니까? 그것이 부름받은 사람 곧 교회요, 또 아포스톨로스 곧 주님께 보냄받은 자였기 때문이죠.
또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의 또 하나 자랑은 모든 교회를 위해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29절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고왜 교회 중에 누군가 약하면 자신이 약하고, 실족하면 자신이 애가 탄다는 것입니까? 복음 안에서 해산의 고통을 겪은 바울이었기 때문이죠. 그 정도로 바울은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이요,
그래서 30절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여태 자랑한 것들이 실은 그 정도로 연약한 것들을 자랑한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걸어온 길은 주님께서 행한 것이라고, 말이죠.
31절에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내가 약한 것을 자랑했는데,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걸 아신다는 것이죠. 더욱이 32-33절에도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눈이 멀었는데, 아나니의 안수에 의해 눈을 떴을 때, 곧장 복음을 전하다가, 성문의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가 아라비아 광야로 달아난 일이 있었죠. 그것은 바울에게 숨기고 싶은 일이죠. 그런데도 그것을 자기 입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은 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내가 걸어오면서 한 일은 모두 주님께서 인도하신 일이요, 주님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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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무슨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면서 받는 고난을 기꺼이 짊어지고 나가라는 것이죠.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의 강함을 의지하려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쥐구멍으로부터 도망 나왔던 약한 자신을 자랑하는 바울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약함을 자랑하는 그런 은혜 속에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의 약함을 통해 새 역사를 쓰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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