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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고린도후서를 살펴보려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1년 6개월 간 머물면서 세운 교회였죠.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속주 중에 ‘아가야’라는 로마행정구역의 수도였죠. 아테네보다 훨씬 큰 도시로서 그리스의 중심지였습니다. 인구 60만 명을 헤아리는 상업중심지였기 때문에 외부 문화에 개방적이었고, 성적으로 문란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린도는 해발 575미터에 아크로폴리스 성채가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그 아크로폴리스에는 유명한 신전인 아프로디테 신전, 곧 비너스 신전이 있었죠. 그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의 숫자만 해도 일천 명이 넘었는데, 그들은 낮에는 제사를 드리는 데 동참했지만 밤엔 시내로 내려와 매음을 했습니다.
바로 그런 도시에 바울이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1년 6개월간에 걸쳐 고린도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때가 주후 53년경의 일로서 바울의 나이 53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주후 56년 곧 바울의 나이 56세에 3차 전도여행 차 에베소에 들어가 유대인 회당에서 3개월간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훼방을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주님의 제자들을 따로 세워 ‘티란노스’라는 사람의 ‘스콜레’, 곧 두란노서원을 빌려 점심시간에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죠. 무려 2년 넘게 말이죠. 그 무렵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좋지 못한 소식을 듣죠. 음행과 파벌과 제사음식과 은사 문제 등 여러 문제를 말이죠.
그때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짧게 고린도교회를 방문(고전2:1)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아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오죠.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 돌아와 편지를 써서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죠. 그것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쓴 첫 번째 편지였죠. 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편지내용을 귀담아 듣지 않죠. 대신에 자신들이 논쟁하려는 부분에 대해 바울에게 질문의 편지를 쓰죠(고전1:11). 그때 바울은 먼저 젊은 제자 디모데를 보내 수습토록 했고(고전4:17, 16:10), 동시에 두 번째 편지 곧 우리가 읽었던 고린도전서 1장-16장까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의 역량도, 바울이 써 보낸 고린도전서의 역량도,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했죠.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두 번째 방문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고린도전서를 써 보내면서 너희들에게 방문(고전16:5-7)하겠다고 써서 보냈죠. 하지만 여러 문제가 걸려서 바울이 가지 않았는데, 그 일을 두고 고린도교회 내의 거짓 교사들이 문제를 삼았습니다. 더욱이 바울의 사도권까지 걸고 넘어졌던 것이죠. 그 때문에 바울은 전격 방문(고후2:1-2)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그들은 바울을 외면해 버립니다. 그러자 바울은 아픈 마음을 안고 에베소로 돌아오는데, 저 같으면 그냥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은데, 바울은 세 번째 편지를 써서 나이 많은 제자 디도 편(고후12:18)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바울은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까지 건너가죠. 놀라운 것은 성격이 온순한 젊은 디모데와는 달리 강단 있는 성격의 나이 든 디도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매듭짓고 돌아오게(고후7:5-10) 됩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너무나도 기뻤고, 그래서 네 번째 편지 곧 오늘부터 읽어나갈 고린도후서를 쓴 것입니다. 물론 이 편지를 쓰고서도 바울은 걱정이 되었던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해 마게도냐에서 직접 고린도교회를 방문(행20:1)하죠. 그때 바울은 고린도에 들어가 3개월간 머물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굳게 세웠고, 동시에 로마서를 써서 젊은 여집사 뵈뵈 편으로 보내죠. 그 후에 바울은 에베소에 들러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인사를 나눈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체포당하죠.
이상 살펴 본 것처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위해서 세 번 직접 방문했고 네 번에 걸쳐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의 교통수단은 선박이나 도보였죠. 배를 타고 또 걸어서 세 번씩이나 찾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거기다 네 번에 걸쳐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에겐 두 통만 남아 있지만 말이죠. 그래서 고린도전서는 16장과 고린도후서는 13장의 분량을 합친다면 무려 60여 편의 편지를 바울이 써서 보낸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긴 편지를 쓸 수 있을까요? 군에 간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렇게 길게 쓸 수 있을까요? 바울은 그렇게 긴 장문의 편지를 고린도교회에 썼던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충성 때문이죠. 그게 본문 1-2절에 있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교회를 위해 충성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한 것이죠.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라기보다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 교회에 충성한다는 게 곧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게 아니죠. 교회에 충성한다는 것은 곧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하나님의 사랑과 충성 때문에 지중해 세계를 누비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고, 고린도후서와 같은 편지를 또 써 내려간 것입니다.
또 하나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장문의 편지를 쓴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1절 첫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하고 언급합니다. 바울이 이전에 두 번째 편지 곧 고린도전서에서 디모데를 향해 “신실한 아들 디모데”(고전4:17)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형제 디모데”라고 쓰고 있죠. 이유가 뭘까요? 이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보낸 디모데를 모두 배척했습니다. 아들과 같은 젊은 제자 디모데를 배척했다는 것은 곧 스승인 바울을 배척한 것과 같은 것이죠. 바로 그 사실을 잊지 말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형제 디모데’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로서 이제는 화해하도록 말이죠. 그만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일깨워주기 위해서 긴 장문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바울이 그렇게 긴 장문의 편지를 쓴 이유가 있다면 환란속에서 위로와 소망을 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6절에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숱한 환란을 당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환란을 통해 그들도 함께 위로받고 구원받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1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바울과 함께 한 모든 이들이 아시아에서 환란을 당했지만 큰 사망 가운데서도 소망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소망의 은혜를 부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바로 그 사실을 알리고자 장문의 편지를, 곧 고린도후서를 썼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린도후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장 1-11절은 서론 격으로 인사말을, 1장 12절—7장 16절까지는 바울의 고린도교회에서의 사역과 헌신에 대한 진정어린 답변을, 8장 1절—9장 15절까지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연보에 관한 내용을, 10장 1절—13장 10절까지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호소와 바울의 요구를, 그리고 13장 11절-14절까지는 결론 부분으로 바울의 권고와 인사와 축복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바울이 쓴 네 번째 편지 곧 고린도후서의 서론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하십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된 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이죠. 아울러 우리의 삶에 연약한 부분을 늘 회개하며 살도록 부르셨고, 환란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소망 가운데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하루도 충만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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