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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고린도전서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고전7:25-40)

by 똑똑이채널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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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1-16절은 결혼에 대한 질문과 바울의 답변이 들어 있었고, 17-24절까지는 개개인의 사회적인 신분에 관한 바울의 답변이 담겨 있었죠.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실 때 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라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경제적인 빈곤이나 신체적인 연약함 속에 몰아넣으셨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실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결혼에 대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질문과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1-16절에서 이미 나온 내용이기도 하죠. 그때 우리가 살펴본 고린도의 특수한 상황이 있었죠. 첫째는 온 사회에 만연한 쾌락주의와 영지주의 사상이 판을 치고 있었기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극단적 금욕주의자들이 있다고 했죠.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혼을 했을지라도 방을 다로 쓴다든가, 별거를 한다든가, 이혼을 한다든가,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자들 말이죠. 셋째 철저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였죠. 그 시대의 여자는 인격체가 아니라 남자의 부속물이었고, 모든 결정권은 남자에게 있었죠. 넷째 임박한 종말사상이 팽배했습니다.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생애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 믿었죠. 바로 그런 상황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우리가 결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혼을 유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질문을 가졌죠. 그 답변을 1-16절을 통해 제시해 주었는데, 바울은 어떤 부분은 주님의 명령이라고, 또 다른 부분은 ‘허락’이라고, 또 ‘자기 당부’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의 답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신의 주관적인 답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25-40절까지는 그런 특별한 상황 속에서도 임박한 종말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래서 25절 하반절에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하고 말하는 것이죠. 절대적인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 의견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개인 견해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빼어버려도 상관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종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역사가 종언을 고하는 우주적인 종말이 있고, 각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개인적인 종말이 있죠. 본문은 개인적인 종말 앞에 내가 취해야할 자세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혼의 큰 뜻을 아는 게 중요하죠.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홀로 독처하는 게 좋지 않아 돕는 배필로 살게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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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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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5절입니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7장 1절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남자의 경우를 두고 한 이야기이고, 25절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녀가 결혼하는 것이 좋으냐? 좋지 않냐? 주님께 받은 계명이 없다고, 주님께 들은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종으로서 자기 의견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임박한 종말론 때문이죠. 그 종말을 대비해야 할 텐데, 구태여 결혼해서 되겠냐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은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대답했지만, 혹시라도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27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네가 기혼자면 기혼자로서 종말을 대비하고, 미혼자면 미혼의 상태에서 종말을 대비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하는 것이 절대 죄가 아니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너희들을 아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종말과 환란의 때에 결혼하면 고난이 커진다고 말입니다. 과연 가게 무슨 말입니까? 29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여기에서 말하는 ‘때’란 시간이 연대기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부터 임하는 결정적인 시간 곧 카이로스로서 종말의 때입니다. 그 때가 단축하여 졌다는 것은 ‘코끝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가가고 시집가는 게 죄가 아니지만, 종말과 환란이 임박했는데, 결혼해서 고생할 필요가 있겠냐,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29절 하반절에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라.”고, 결혼한 사람은 마치 결혼하지 않은 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우자를 제쳐놓고 살라는 것입니까? 아니죠. 우선순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죠.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되고 싶으면 너희들의 부모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들을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역설적인 말씀이죠.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바꿔 말해 우선순위를 바르게 두라는 뜻입니다. 지금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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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절입니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종말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을 절대화하며 살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그 기쁨도, 그 슬픔도 절대화하지 말라는 것이죠. 왜죠? 이 세상의 것은 다 변하고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2-35절까지는 바울이 종말을 맞이해서 결혼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는 진심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임박한 종말을 생각하면서 혼자 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마음이 흩어짐 없이 주님을 섬기며 살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혼한 사람들이고, 우주적인 종말과 개인적인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부부가 함께 주님 앞에 깨어 살도록, 주님을 섬기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살면 되는 것이죠. 이른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아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이 사는 것이죠. 그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그의 아내, 주기철 목사와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죠. 부부가 한 몸으로 주님을 최우선으로 섬겼던 사람들이죠.

본문 36-37절은 약혼자나 딸이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잘 한 것이라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38절에서는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왜 이런 권면을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죠. 임박한 종말론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문 39절에서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사별한 여자나 남자가 결혼하려고 하면, ‘주 안에서만 하라’, 이제는 믿는 사람과 하라는 것입니다. 왜요? 주님의 재림 앞에 한 뜻으로 섬기도록 하는 차원이죠. 그런데 마지막 40절에서는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이것 역시 임박한 종말을 전제로 한 권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가요? 그 시대에 우주적인 종말 곧 주님의 재림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받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헛수고했을까요? 그렇지 않죠. 이 후에 네로의 박해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큰 환란과 박해의 터널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말한 우주적인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환란 속에서 다들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시대에 바울이 한 권면을 듣고 개인적인 종말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훨씬 더 튼튼한 믿음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믿음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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