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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부터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한 것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답변 속에는 하나님의 명령도 있지만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도 있다고 했죠. 고린도교회가 놓인 특수한 시대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2천년전 고린도는 타락한 성문화가 팽배했고, 극단적 금욕주의에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제 사회, 그리고 임박한 종말론이 팽배했죠. 그래서 어제 읽은 1-3절까지는 남자가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게 더 낫고, 만약 음행을 피하고자 한다면 결혼하라고 했죠. 모두가 임박한 종말론 때문이었죠. 그러면서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라고 했죠. 부부관계에 성실한 의무를 다하라는 권면이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는 건 금욕주의 여성들을 향한 권면이었죠.
계속해서 본문 4절입니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이른바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져 남편과 잠을 자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여자를 향해 하는 말입니다. 또 남편이 아내의 몸을 함부로 대하려는 남자들에게 권면한 말이죠.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다’하고 말이죠. 하나님께서 부부를 한 몸으로 만드셨다면 부부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위한 헌신의 자세로 임하라는 뜻입니다.
5절입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분방하지 말라’하는 헬라어가 ‘메 아포스테레이테’(μὴ ἀποστερεῖτε)입니다. 문자적인 번역은 ‘상대의 권리를 강탈해서 물리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너의 권리만을 위해서 상대를 짓밟지 말라’는 뜻이죠. 우리 개역성경에서는 ‘분방하지 말라’라고 번역해 놓고 있는데 정말 잘된 번역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어쩔 수 없이 분방해야 하는 부부도 있죠. 체질상 남자는 여름에 에어컨을 틀고 자야하고, 부인은 여름에도 이불을 덥고 자야 한다면 말이죠. 또 남편이 출근하면 부인이 퇴근하고, 부인이 출근하면 남편이 퇴근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본문에서 ‘분방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을 향해 한 말입니다.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은 남편과 아내가 부부관계를 갖는 것 자체를 죄악시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여기에서 ‘기도할 틈’이란 일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해야 할 특별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죠. 그런 상황이라면 ‘얼마 동안은 분방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합하라”하고 합니다. 내가 금욕주의를 실시하는 것은 좋은 신앙인이 되는 길이지만, 그것을 실시할 때 남편이 외도하게 만든다면, 결국 죄를 짓게 하는 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금욕주의가 틈타지 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그러니까 바울이 여태껏 답변한 것은 절대 규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허락해 주라고, 수용해 주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결혼을 할까, 말까, 하느냐?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용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오직 나의 견해다, 하는 뜻이죠. 바울이 훌륭한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확실하게 이야기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개인적인 사견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7절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여기에서 ‘나와 같기를 원한다’는 것은 바울의 독신생활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울이 나처럼 독신이 되기를 바란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성직은 독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이후에 곧 알 수 있습니다. 7절 하반절에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주님을 위해서 독신으로 산다면, 그 독신도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저렇게 하고, 저 사람은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독신도 좋을 수 있고,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독신이든, 부부의 삶을 살든,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를 좇아 행하라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여기에서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이란 결혼하여 살다가 상처한 자들입니다. 홀아비나 과부가 된 자들이죠. 그런 자들은 자신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했을까요? 바울도 결혼하여 살다가 상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5절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들 결혼을 했는데, 나이 들어 선교여행을 다닐 때 아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도움을 받았던 것이죠. 바울도 그런 권리가 없겠느냐는 한 것입니다. 바울이 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이죠 사도행전 26장 10절에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할 때, 대제사장의 윤허를 받아 갔고, 누군가를 죽일 때도 찬성투표를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산헤드린 의회 공회원이었다고 성경학자들은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에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는 데에는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총각은 안 되는 것이죠. 유대인들의 관습상 20세 이상의 성인은 결혼을 의무사항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때도 34세였고, 이미 혼인한 상태죠. 그렇기에 바울의 면면을 종합해 볼 때 바울은 이미 결혼을 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상처를 입은 뒤였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그 뒤로 혼자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여자든 남자들, 과부든 홀아비든, 임박한 종말론을 내다볼 때 자신처럼 그냥 지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9절에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임박한 종말을 안다면 그냥 지내는 것이 좋고, 혼자 지내면서 절제 할 수 없다면 결혼하라는 것이죠.
10-11절에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이 말씀은 주님의 명령이라고 밝힙니다.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지지 말라’, 이것은 극단적 금욕주의 여자들을 향해 던진 말입니다. 가정을 지키라고 말이죠. 만약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져 내가 잘못했는데, 그 남편이 재혼을 했다면 그냥 지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 남편이 재혼하지 않았다면 다시 합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하죠.
12-16절입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믿는 여자가 믿지 않는 남편과 살 경우, 또 믿는 남편이 믿지 않는 아내와 사는 경우죠. 그 경우 믿음의 문제로 갈라설 수 있지만 ‘너를 통해서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그러니 함부로 갈라서지 말고, 화평을 위해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믿음생활에 걸림돌이 된다면 혼자 살 수도 있다는 것이죠. 또 지금 도장을 찍을까 말까 할 때 언제든지 찍을 수 있지만, 자녀들의 문제까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내 고민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될 수 있는 한 믿는 사람이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나 이미 결혼하여 사는 부부라면 화평을 위해 결혼생활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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