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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고린도전서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고전7:1-3)

by 똑똑이채널 2024.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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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장까지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대립, 그리고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사도바울의 책망과 권면의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7장부터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사도 바울에게 서신으로 질문했던 내용에 대한 답변이 담겨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게 그것이죠. 그렇기에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사도 바울에게 질문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본문에서 1-8절까지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여부, 부부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고, 8-16절까지는 사별한 사람, 남편이든지 아내든지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 재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한 사람은 이혼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답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바울이 답변서를 써 보낸 2천년전 고린도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을 아는 게 중요하죠.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2천년전 특수한 시대 상황에 놓여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써 보낸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배경에 대한 선이해가 없을 경우 자칫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2천년전 고린도의 시대 배경이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첫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그 당시 고린도는 쾌락풍조가 만연했습니다. 성도덕이 극심하게 문란했죠. 고린도는 평지지만 해발 575m의 아크로고린도가 있었는데, 그곳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죠. 그곳의 여사제들은 낮에는 신전의 일을 섬겼지만 밤에는 모두 고린도 시에 내려와 매음을 하던 이른바 창녀였습니다. 그 수가 무려 1천명이었죠.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그 사회에 풍미했던 그릇된 사조 두 가지가 있었죠. 에피쿠로스 철학사조와 영지주의 사조가 그것입니다. 에피쿠로스 사조는 인간은 단순한 원자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음은 물질의 해체라고 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쾌락을 추구하면 된다고 본 것이죠. 그리고 영지주의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원론입니다. 영혼은 고귀한데, 썩어 없어질 육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육체로 무슨 짓을 해도 높은 차원의 영혼에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렇기에 육체로 쾌락을 추구해도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쾌락주의가 만연한 이유였습니다.

두 번째 사회배경은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금욕주의의 뿌리도 영지주의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영혼은 고귀하고 육체는 저속하기 때문에 육체의 본능에 따라서 무슨 짓을 해도 영혼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죠. 그래서 쾌락주의에 빠진다고 했죠. 그런데 똑같은 영지주의자들 가운데에 영혼은 고귀하고 육체는 저급하기 때문에 영혼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결혼도 하면 안 되고, 설사 결혼할지라도 부부관계를 갖는 것조차도 죄가 되고, 또 가정을 지키는 것도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금욕주의자들이죠.

세 번째 사회적 배경은 남성위주의 사회제도였습니다. 따라서 부부지간이라 해도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에 불과하던 시대였습니다. 네 번째 풍조는 임박한 종말사상이 있었죠. 종말의 정확한 날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고 했지만 모두들 자기들 시대에 올 거고 확신했습니다. 실은 사도 바울도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로마서 13장 11절을 통해 권면한 말씀에서 알 수 있죠.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더욱이 고린도전서 7장 26절에서도 그렇게 권면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왜 그들이 임박한 종말론에 심취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할 때 종말이 오면 환란도 같이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환란하면 종말이고 종말하면 곧 환란으로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전서 4장 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하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을 내다보고 진리대로 사는 게 중요한데,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면 내 삶의 모든 것이 무익하고 무용하다는 오류에 빠지게 되죠. 그와 같은 시대적 사회적 배경 속에 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었기에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도대체 결혼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결혼 했으면 부부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홀아비요, 과부인데, 과연 재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질문들을 바울에게 던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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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특수한 상황속에서 나온 질문들에 대해 사도 바울이 답변을 해 준 것입니다. 그 까닭에 다른 서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6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바울은 답변을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고 ‘허락’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싱그노메’인데 그 뜻은 그렇게 해도 좋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도 자기가 답변한 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절대 진리의 답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고린도교회 성도가 처해 있는 그 상황에 대한 답변임을 자기 스스로가 알고 밝힌다는 뜻입니다.

또 10절에 이런 말씀도 있죠.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이 부분은 주님의 명령을 전하는 것이기에 분명히 ‘주님이시라’고 밝히고 있죠. 그리고 12절에서는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절대 진리가 아니고, 특수상황 속에서 밝히는 ‘나의 주관적인 견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해 주는 구절입니까? 2천년전 고린도와 오늘날의 2019년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삶의 자리와 같은 부분도 있지만 또 다른 상황들도 있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절대진리도 있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할 말씀도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바울의 답변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내용 자체보다 그 내용의 본질적인 정신을 우리가 포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이제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너희들이 서면으로 결혼에 대해 물었고 내가 답을 하는데,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답변한 것입니다. ‘가까이 하다’는 헬라어 말은 ‘합법적인 결혼’을 뜻하는 말입니다. 왜 바울이 그것조차 하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결혼해서 사는 걸 원하셨는데 말이죠. 바울의 임박한 종말론 때문이죠. 곧 종말이 오는데 결혼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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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에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게 좋은데, 혹시라도 음행의 죄를 짓지 않고자 한다면 결혼을 하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혼을 고작 음행을 피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동물적인 의미로, 격하시킨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그 시대 자체가 쾌락주의가 만연한 시대요, 죄의식없이 아무나 관계를 맺던 시대요, 임박한 종말론 사상을 갖고 있던 시대였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임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죠.

3절,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여기에서 ‘의무’란 ‘아파디도미’(ἀποδίδωμι)인데 ‘채무’ 곧 ‘빚’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른바 육체의 관계에 있어서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라는 뜻입니다. 2천년전 시대상황에 비춰보면 가히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여자들은 성적 노리개였는데, 남자들을 향해 의무를 다하라고 했으니, 그렇죠. 그런데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 바로 금욕주의 여자들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마치 남편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불결하게 여기는 금욕주의 여성들을 향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시대적 풍조를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 고린도의 쾌락주의, 영지주의, 극단적 금욕주의, 가부장주의 그리고 임박한 종말론 사상이 시대 풍조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고 고민하고 있던 그들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살아가는 그런 신앙인들로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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