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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로마서

누가 끊으리요(롬8:31-39)

by 똑똑이채널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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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살펴본 로마서 8장 29-30절은 로마서의 핵심이자 기독교 교리의 요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할 때, 그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규정해 주기 때문이었죠.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가리켜서 복음의 황금사슬이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네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미리 우리를 정하셨다는 것이었죠. 내 삶의 뒤안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정하시고, 치밀하게 정하신 손길이 있다는 것이었죠. 칼빈은 그것을 선행적인 은총이라 명명했죠. 둘째로 바울은 우리를 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불러 주셨다는 것이죠. 이것을 칼빈은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불렀습니다. 갈릴리 어부 출신인 베드로를 향해 주님께서 나를 좇으라 할 때 따라나선 것은 베드로가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불가항력적인 부름이었다는 것이죠. 셋째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 곧 칭의라고 했습니다. 내 과거가 참으로 어둡고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대속의 은혜로 그 죄를 ‘패스오버’해 주신 것이죠. 주님께서 그렇게 의롭다 해 주셨기에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것이죠. 칼빈은 그것을 필승불패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넷째로 한 순간 칭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적인 영화의 삶을 살도록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가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성화의 삶과 같은 것이죠.

 

그리고 이제 바울이 본문 31절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그런즉’은 ‘주님께서 이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은즉’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 앞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것이죠.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원망할 말이 없다는 것이죠. 둘째는 걱정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나큰 은혜를 부어주셨기에,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상황을 주시든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죠. 복음의 황금사슬로 우리를 주님께서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걱정할 게 없죠.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내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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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도 바울이 위대한 신앙고백 세 가지를 합니다. 첫째로 31절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맞설 수 있겠느냐? 누가 우리를 쓰러트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 누구도 나의 대적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에서 ‘은사’란 곧 ‘값없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살리셨는데, 우리가 진리의 길을 걸어간다고 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당연히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주님과 삶 속에서 동행하는 거룩한 삶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는데, 어찌 우리의 믿음이 방해되도록 내버려두겠느냐는 것이죠.

 

둘째로 바울은 33-34절에서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겠는가, 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심판 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이를 누가 감히 고발하겠느냐는 것이죠. 간음하던 여자가 현장에서 붙잡혀 예수님 앞으로 끌려왔을 때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니 아니하노니”(요8:11)하고 말이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셋째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고 고백합니다.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여기에서 ‘누가’는 헬라어 문맥상 ‘무엇’을 뜻합니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무엇도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환란’, 둘째로 ‘곤고’입니다. 환란이란 잔잔한 배에 불어 닥치는 태풍과 같이 순식간에 몰아닥치는 고난입니다. 욥이 당한 환란이 그것이죠. 순식간에 불이 떨어지고, 자식들을 다 잃고, 하루아침에 육체까지 망가진 것 말이죠. 반면에 ‘곤고’는 서서히 조여오는 시련입니다. 이른바 경제적으로 윤택해서 크고 넓은 저택에 살았는데 서서히 가세가 기울어 단칸방에 살게 되었다든지, 건강이 조금씩 쇠락해 일어설 수 없는 경우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환란이나 곤고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이죠.

세 번째는 ‘박해’입니다. 이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함, 험담, 조롱 같은 것이죠. 이것은 때로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신체적인 어려움보다 우리를 더 괴롭히는 것들이죠. 인격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살아 있는 사람이 인격을 손상당하게 되면 견디기 힘들죠. 그런데 그런 박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기근’입니다. 재해나 재난, 흉년을 말하는 게 아니죠.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잘 먹던 사람이 바른 삶을 위해 못 먹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걸 말합니다.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가 그 경우죠. 이전까지 산해진미를 먹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서, 자기 재산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절반을 주고, 남의 걸 부당하게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했죠. 그런 배고픔을 당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적신’입니다. 빨간 몸뚱이, 곧 헐벗음을 말하는 것이죠. 디모데후서 4장 13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서 자신의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바울의 상황이 춥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울이 스스로 자취한 것입니다. 그저 유대 땅에 남아 있으면 비단 옷 입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주님을 위해 그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위험’입니다. 이것 역시 스스로 자초한 위험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6-27절에서 바울은 강과 강도와 동족과 이방인과 시내와 광야와 바다와 거짓 형제 중의 위험 등 여러 가지 위험을 당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째는 ‘칼’, 곧 권력입니다. 초대교회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배 세력의 권력에 의해 사자의 밥이 되었죠. 바울이 매를 맞고 투옥되는 어려움을 겪는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러나 그런 권력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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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36절에서는 도살당하는 양처럼 그런 일을 겪어도, 37절에서는 주님 때문에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38-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첫째 ‘사망’ 곧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관문도, 둘째 ‘생명’ 곧 삶에 대한 애착도, 셋째 ‘천사’ 곧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해도, 넷째 ‘권세자’ 곧 악령, 사탄도, 다섯째 ‘현재 일이나 장래 일’ 곧 지금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모든 일들도, 여섯째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 곧 세상에서 가장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누구도, 마지막 일곱째 ‘피조물’ 곧 모든 만물조차도,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절대로 끊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시고, 불러주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그 사랑이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주신 그 사랑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냐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그것을 교리적인 지식이나 이론적으로만 믿는 게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체험적으로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생생한 임재를 느끼고, 그 분의 사랑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 말이죠. 그때 비로소 우리를 먼저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셔서, 이제는 영화롭게 하시려는 그 은혜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주님. 미리 예정해서 불러주시고 의롭다 인정해주시고 영화롭게 하신 그 사랑을 이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한 그 어떤 것도 주님과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음을 압니다. 사망도 애착도 영적 능력도 권세자들도 장래 일도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시고 친히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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