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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로마서

골육 친척을 위하여 내가 끊어질지라도(롬9:1-33)

by 똑똑이채널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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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내가 몸이 아파보면 몸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죠. 내가 굶주려보면 굶는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유대교에 아주 열심히 있는 자였습니다.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잔멸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죠. 그런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로 어떻게 됩니까? 자신이 전하는 복음으로 인해 동료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같은 유대 민족을 향한 가슴 절절한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3-4절 상반절을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하고 말이죠. 바울은 지금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구하는 심정입니다. 그들이 구원받는 일이라면 자기 자신은 저주를 받을지라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왜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토록 가슴 절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도 이전에는 자기를 핍박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똑같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무자격자이자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은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자신처럼 무자격자요, 무가치한 사람에게 먼저 찾아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먼저 그 은혜를 체험했기에, 지금 자신을 핍박하는 동족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적 중의 가장 큰 기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변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변화는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질책하고 무시하고 꾸짖는다고 사람이 변화되는 게 아니죠. 오직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고기잡이로 나선 제자들을 예수님이 무시하고 비난했다면, 어찌 그들이 주님의 제자로 쓰임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을 사랑으로 격려해주시고, 그들을 위해 친히 조반을 차려주셨기에, 그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금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먼저 입은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받지 못한 이들,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향해 바울처럼 열린 마음을 갖고 다가서는 것이 필요한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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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유대 동족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 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6-7절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하고 말이죠.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이 육신적인 혈통안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택함을 받고 부름받은 참된 영적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여종인 하갈에게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이스마엘이 아닌 약속의 말씀으로 태어난 이삭을 택하셨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태어난 쌍둥이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10-11절을 보면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그 어머니가 달랐습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은 동일한 어머니에게서 쌍둥이로 태어났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서 대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것에 대해 11절에 말씀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것은 야곱의 그 어떤 행위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에서는 버리고 야곱은 택하셨다?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버리셨다면 불공평한 하나님이지 않는가? 그런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 사람들은 반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불의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죠.

그에 대해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왜죠?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다루시는 근거는 정의가 아닌 긍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멸망 받을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면 그것은 그분이 불의하신 증거가 아니라 긍휼과 사랑의 증거라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고,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에게 정말로 놀라운 것은 바로 도무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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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본문 20-21절에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하나님은 창조주시기에 이 세상 만물의 주관자시라는 것입니다. 물건을 지은 자가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쓸 수 있듯이,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에게는 그런 권한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22-23절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무슨 말씀입니까? 토기장이 이신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을 진노하시고 멸하신다고 해도 인간 편에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죄인들을 향해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셔서,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해 주신다는 것이죠. 그것이 곧 정의의 하나님보다 긍휼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긍휼하심이 없었던들 어찌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겠습니까? 그런 긍휼함이 없었던들 어찌 노아와 그 가족들을 방부로 구원해 주셨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하심에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본문 30-32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의식만 있을 뿐 그래서 율법을 자랑하고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만 강조할 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덧입기를 바울이 간구하고 있는 심정으로 이 부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이요 죄의 후손인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나를 먼저 선택하고 불러주시고 의롭게 여겨주신 것,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긍휼과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의 골육 친척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은혜의 삶을 매순간 순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 가운데도 주님이 현존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바울은 유대 동족이 구원받도록 애타했습니다. 무자격자인 자신을 선택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 사랑을 먼저 받은 자로서 동족에게도 임하길 간구했습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선택하신 것도, 토기를 사용할 권한도 토기장이이신 주님의 긍휼에 달려 있음을 압니다. 저희도 토기장이신 주님께 저희의 인생을 의탁하오니 친히 긍휼로 빚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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