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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하나가 되게 하려(요17:20-22)_부부주일

by 똑똑이채널 202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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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 결혼생활이란 서로 다른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고 한 몸을 이루며 사는 삶입니다.

서로의 출신과 삶의 환경과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도 남녀가 하나가 되어 한 몸을 이루는 삶이 부부생활이요 결혼생활이죠.

 

그를 위해 창세기 224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부하신 게 있죠.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가 되게 하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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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남자와 여자가 부부의 연을 맺고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태껏 의지하고 살아 온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이제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며 사는 것이죠.

 

결혼생활 곧 부부생활을 펼쳐나갈 남자와 여자에게 왜 그런 말씀을 주셨겠습니까?

여태껏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온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으면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명절이나 어버이날이나 특별한 가족행사마저 끊고, 부모님과 단절하며 살라는 게 아니죠.

결혼을 한다면 여태 기대고 의지해 온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둘이 한 몸을 이루며 헤쳐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떠났다면,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면,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해야 함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며 사는 것, 하나로 연합하여 사는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둘이 합해서 한 몸을 이루며 살 수 있겠습니까?

영적인 부부, 의식적인 부부, 경제적인 부부, 그리고 성적인 부분까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걸 말한 것입니다.

 

영적인 부분에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건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의지하는 걸 말하지 않겠습니까?

결혼전에 어느 한쪽이 무교이거나 다른 종교를 섬겼다면 결혼 후에는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을 세우는 것 말이죠.

 

의식적인 부분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상대방의 의식수준까지 존중하고 맞춰나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성이 목적중심이고 성취중심인데 반해 여성은 관계중심이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의식을 맞춰나가는 것이죠.

 

경제적인 부분에서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실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현대판 신혼부부들이 많이 깨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혼전에 서로의 씀씀이와 부채를 알고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위해 진 빚도 함께 짊어지는 경제부분을 말한 것이죠.

 

(발췌1) 이런 부분을 잘 설명해주는 책이 조현삼 목사님의 결혼설명서에 나와 있습니다.

목사님이 결혼을 앞둔 형제와 자매를 불러 결혼생활에 대해 몇 주간에 걸쳐 말씀 공부를 나눴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들 두 사람에게 색종이를 하나씩 가져오도록 했는데, 핑크색과 하늘색을 각각 가져왔습니다.

이제 색종이 앞에다 각자의 이름을 쓰도록 했고, 강력 접착체로 그 뒷면을 붙였고, 다리미로 달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두 사람을 연합시키고 있는 거예요.”(웃음)

두 사람이 너무 뜨거운데요.”(웃음)

 

실물 교육 차원에서 벌인 그 모습 앞에 두 사람은 너무나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이제 두 사람이 이걸 최대한 손상시키지 말고 원상태로 분리하도록 해봐요.”

 

그랬더니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이걸 떼요?”

그래요, 한 번 해봐요.”

아까운데요....”

그래도 한 번 해봐요. 각각 자기 것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도록 떼어 봐요.”

 

두 사람이 서로의 것을 조심해서 떼어내려고 했는데, 그만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강력 접착제를 사용한데다, 다리미로 밀착시켜서 그런지, 두 사람의 색종이는 손톱만한 조각으로 찢어져버린 것이었죠.

그리고는 테이블 한쪽에 원래 형태의 모습으로 조각들을 맞춰 놓았지만, 얼마나 볼품없는 모습인지 서로가 느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말을 했죠.

어떤가요? 두 사람이 보기에도 아주 흉측하죠. 일단 합한 것을 다시 분리하면 이렇게 되는 법이예요.”

알겠습니다. 목사님,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한 걸 보여주셨는지.”

 

(깨달음) 그때 그 목사님이 힘주어 말씀했습니다.

그래요, 연합할 때는 분리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합했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가서 다시 분리하면 되지.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마세요.”

연합이 깨지면 이런 상태가 되니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나눌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연합한 상태를 나누게 되면 이렇게 되기 때문이죠.”

 

(발췌2) 한번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을 하겠다는 한 자매가 그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혼을 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성경도 배우자가 간음한 경우에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고 했죠.

그러나 배우자가 외도하면 다 이혼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런 경우에는 이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씀한 것이죠.

물론 그 자매가 이혼을 했을 때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경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자매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자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자매님, 이혼 후에는 어떻게 살 계획인지 생각해 두신 게 있습니까?”

“....”

자매님, 지금 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결혼 후에 쭉 살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별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듭니까?”

4백만원 정도 듭니다.”

이혼을 한다면, 그 후에는 한 달에 얼마 정도 생활비가 있어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그래도 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녀들을 제가 키워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정도를 벌 수 있겠습니까?”

“...”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라고 했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빠 없는 애라고 무시당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이혼 후에는 재혼을 할 생각입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지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하지요.”

재혼을 한다면 어떤 사람하고 하게 될 것 같습니까? 초등학생 아이 둘이 있는 자매님과 결혼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

지금 남편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 결혼할 것 같으세요?”

그야 어렵지요. 우리 남편이 바람을 피우긴 했지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만약 이혼을 한다면 이혼녀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될 텐데, 그 이름을 수용할 준비는 했습니까?”

“...”

아버지 없이 자녀를 키우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아버지가 있는 가운데 자녀들을 키우는 게 낫겠어요?”

“...”

 

(깨달음) 그 목사님은 그렇게 묻기만 했을 뿐인데, 그 자매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생각하면 어떻게 이혼할 수 있겠느냐고, 그냥 이혼안하고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말이죠.

 

목사님은 그 자매를 위해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축복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결혼할 젊은 남녀에게는, 다시금 색종이에 이름을 쓰고 붙이고 달여서, 그 색종이를 선물로 주며 축복해주었죠.

 

(원해) 어떻습니까?

결혼생활이란 그런 연합의 삶이지 않겠습니까?

영적이고 의식적이고 경제적이고 성적인 부분까지 하나가 되어 연합하는 것 말입니다.

그를 위해 이해하고 양보하고, 수용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저와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창세기 224절에 나오는 합하다연합하다는 히브리어 단어가 다베크’(דָּבַק)입니다.

그 뜻은 물질이 서로 달라 붙는다고 할 때, 특히 신체 부분이 달라붙었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죠.

욥이 악창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다”(19:20)고 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시편에서도 나의 삶이 뼈에 붙었나이다.”(102:5)할 때도 그 단어가 쓰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사랑과 충성으로 하나님과 결합할 때(13:11) 사용된 단어입니다.

 

(원성) 그런데 그 단어가 신약성경의 프로스콜라오’(προσκολλω, to join one's self to closely)와 똑같습니다.

마태복음 195절과 마가복음 108절에, 예수님께서 창세기 224절을 인용하면서 한 말씀에 그 단어가 쓰였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걸 읽지 못했느냐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남자들이 율법의 죄목을 만들어 아내를 내쫓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리새인들이 그런 질문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대원칙 곧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그 명령을 지켜 한 몸을 이루며 살라고 하신 것이었죠.

 

(원성2) 프로스콜라오란 단어는 에베소서 531절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쓴 편지에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바울도 하나님의 대명령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도록 권면한 편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울이 왜 그런 내용의 편지를 썼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울은 그 편지 내용을 쓴 이유가 부부의 연합으로 한 몸이 되듯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도 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것 말입니다.

 

(깨달음) 그렇기에 깨달을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생활도 실은 결혼생활처럼 주님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에 다른 신을 모신 사람이라면 주님을 모신 이후엔 하나님 한 분만 모시며 구별되게 사는 삶이 신앙생활이죠.

이전에 자기 주관과 자기 의식대로만 살아온 사람이라면 주님을 모신 이후엔 주님의 뜻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죠.

이전에 경제적인 부분에서 자신이 물질의 주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주님께 그 모든 경제권을 맡기며 살아가는 삶이죠.

 

(적용) 그것이 주님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부부가 연합해 한 몸을 이루듯, 주님과 연합해 살도록,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비롯한 12 제자를 데리고 제자훈련을 시키셨죠.

그렇다고 따로 시간을 갖고 제자훈련을 가진 것은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 자체가 제자훈련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죠.

자식은 부모의 평상시의 삶을 거울로 삼아 그대로 닮아가듯이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없거나 따로 한적한 곳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직접 가르쳐주셨죠.

마치 부모가 밥상머리에서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귀중한 것을 따로 일깨워주듯이 말이죠.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도 부활 후 40일 후에 천국으로 떠날 걸 염두에 두고 따로 시간을 가지셨죠.

오늘이 바로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계신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하는 승천주일기도 하죠.

더 정확히 말하면 513일이 승천절이 되는 것이죠.

그로부터 10일이 되는 날, 곧 다음주 23일이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늘로 승천하실 것을 염두에 둔 주님께서 제자들을 따로 모아 제자강화의 시간을 가지신 것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고, 성찬식을 가지면서, 한 마디 한 마디 그들의 심령에 새겨주셨죠.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던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가면서 자식들을 앞에 최후 유언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때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3-17장에 나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서 세 가지 기도가 나와 있다고 했죠.

맨 먼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 자신을 위해 간구의 기도를 올렸죠.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의 기도를 드렸고요.

 

그리고 세 번째 기도한 내용은, 우리가 3주째 살펴보고 있는, 본문 말씀이었습니다.

그때 드린 세 번째 기도는 앞으로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 곧 우리를 향한 기도라고 했죠.

 

그 중에 3주 전에 살펴본 말씀은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인 늘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이요 행함이었다는 것이었죠.

 

2주전에 살펴본 말씀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오셨듯,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은 부모를 통해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이었죠.

부모가 말씀을 좇아 순종할 때 그 자녀와 후손과 가문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본문) 오늘은 부부주일이자 스승의 주일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말씀은 본문 22절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원해) 여기에서 하나라는 헬라어 단어가 에이스’(ες)인데 영어로 ‘one’(하나)입니다.

한 몸을 이루고, 한 팀을 이루는 것, 12명의 제자들과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라는 뜻입니다.

 

(깨달음)그런데 이 에이스가 실은 ‘-안에를 뜻하는 ’(ἐν)과 같은 말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할 때 그 안에라는 말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마치 서로 다른 남녀가 부부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죠.

출신지와 삶의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연합하는 교회를 이루듯 말이죠.

12명의 제자들이 고향도, 배경도, 삶의 목적도 달랐지만 주님 안에서 제자로 연합하여 살 듯이 말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가 되다하는 뜻입니다.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우리 주님은 우리가 부부로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그런 연합의 몸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이루며 사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주음성) 그래서 지금 성령님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부부가 연합해 한 몸을 이루는 게 결혼생활이듯, 신앙생활도 성도들이 연합해 주님안에서 하나로 연합하는 삶이지 않더냐?”

부부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의 부모를 떠나 영적으로, 의식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지 않더냐?”

둘이 하나님만 섬기며, 서로 다른 특성을 이해하고, 경제부분도 털어놓고 서로 짊어지며 살고자 다짐하는 게 결혼생활이지 않더냐?”

설령 마음이 안 맞고, 흠결이 있고, 큰 잘못을 범했어도, 갈라서면, 이전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게 부부의 삶이지 않더냐?”

신앙생활도 그와 똑같다는 것을 네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신앙생활도 이전의 신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특성을 이해하고, 모든 경제적인 주권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사는 것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요즘같이 이혼이 나무하는 시대에, 너희가 연합해 한 몸을 이루는 부부의 삶을 자식들 앞에 참된 본을 보여주면 좋겠구나.”

힘들고 어려워도 아버지로서 지켜야 할 자리, 어머니로서 밑거름이되는 그 자리를 지혜롭게 지켜나가는 모습 말이다.”

바로 그런 부부의 삶, 그런 결혼생활이 실은 너희가 나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이지 않겠느냐?”

출생과 배경과 가치관까지 다 다른 이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아 주님안에서 연합해 하나가 되어 주님 뜻을 받들 듯 말이다.”

때로는 말로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사탄이 가리지를 심을 수도 있으니, 그때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이해해줘야 하듯이 말이다.”

그것이 부부가 어려움을 이기고 한 몸을 이루듯이,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로 연합하는 길이지 않겠느냐?”

 

(찬양)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성령안에 예배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발췌)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 본부 이사장인 김성묵 장로의 남자, 아버지가 되다가 있죠.

김성묵 장로님은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갈등이 생기고 심한 경우 가정이 깨지는 일이 생기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하죠.

첫째는 우리 인간의 죄성 때문이다.

둘째는 부부가 서로 욕구하는 차이가 다른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부부가 서로 소통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계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우리의 무지 곧 부부의 무지이기 때문이다.

 

그 대안은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부가 배워야만 된다는 것이죠.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것일까요?

남자와 여자의 성격차이에 대해서, 남자와 여자의 표법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남자와 여자의 성격 특성은 다르죠.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줄 때 힘이 솟는데,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이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는 거죠.

남자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을 하지 않는 특성이 있고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버린다고 하죠.

그때 여자는 남자의 동굴에는 절대로 따라 들어가서는 안 되며, 만약 들어가게 되면 용이 뿜어내는 불에 데이고 만다고 하죠.

남자는 그만큼 신뢰를 받길 원하지만 여자는 그만큼의 관심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남자는 대부분 표현하는 방법에 무뜩뜩한데 비해, 여자는 사랑받는 표현을 듣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날 부부가 저녁을 먹는데 아내가 여보 가까운 곳에 초밥집이 생겼대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그래? 요즘 장사가 어렵다는데 잘되었으면 좋겠네.”

며칠 후에 다시 아내가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 오늘 그 초밥 집 앞을 지나가는데, 제법 차가 많던데?”

그러자 남편은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장사가 잘 되나 보네. 잘 됐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그의 아내가 말을 했습니다.

여보, 내 친구 정민이 엄마가 그 초밥 집 가서 먹어봤는데 맛이 아주 괜찮데.”

그랬더니 그 남편이 이렇게 또 말을 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장사가 잘 되는구먼. 주방장이 꽤 꽨찮은가 보네.”했다는 것이죠.

 

(예화2) 달 밝은 밤에, 아내가 창밖의 보름달을 보면서 남편에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 달이 참 밝지?”

그랬더니 그 남편은 창밖을 보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하죠.

벌써 보름이 다가오는군.”

 

(깨달음) 이곳에 앉아 계신 아내분들이여, 남편들이 그만큼 무뚝뚝하다는 걸 이해하시길 바랍니다.(웃음)

그 아내가 초밥집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남편과 같이 먹으러 가자는 뜻이죠.

달이 밝다는 것은 그 남편과 달밤에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자는 뜻이죠.

 

사실 김성묵 장로님도 교사인 아내와 결혼했을 때 신혼 때는 손만 잡아도 달달했다고 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아내가 교사 티를 내고, 뭔가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 못마땅해, 자기 동굴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급기야 이혼까지 생각하게 됐는데, 그때 아버지 학교를 통해 그 분이 깨어났고, 그때 배운 성경말씀 대로 실천하는 것이죠.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적용)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해라, 하는 말씀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격차를 알고, 관계중심적인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부부가 행복해지려면 지식을 따라 배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주신 사실입니다.

 

(예화3) 서두에서 말한 조현삼 목사님이 민수와 수현 자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두 분은 양가 부모님을 공경할 것이죠?”

그러자 둘 다 , 목사님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양가 부모님을 공경할 것입니까?”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선뜻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아주 현실적인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길은 돈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목사님은 마가복음 78-14절의 예수님 말씀을 직접적으로 인용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많은 유대인들을 꾸짖으면서 하신 말씀이 그것이었죠.

부모님에게 드려야 할 돈을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고르반만 이행하면 다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라고 말이죠.

예수님의 그 말씀을 떠올리면서 그 목사님은 두 사람에게 강력하게 권고한 것이었습니다.

결혼하며 통장에서 양가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되, 찾아뵙기보다 자동이체 해서 드리세요

 

모든 부모님들은 됐다, 어서 모아 집 사라. 너희 자식이나 잘 키워라하지만 그래도 하라고 하죠.

부모님들은 기뻐하시고, 그 용돈을 모아 나중에 손주들에게 더 큰 것으로 준다고 하니까요.

 

(깨달음) 그것이 예수님께서 일깨운 말씀이고, 신혼부부가 지켜야 할 부분 아니겠습니까?

영적인 면, 의식적인 면, 경제적인 면에 독립하되, 부부가 부모공경도 잃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부부사이의 표현도 중요하듯이, 부모공경의 표현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이 부부지간에만, 부모지간에만 좋은 일이겠습니까?

스승의 주일인 오늘, 많은 교회들이 영적 스승 목사님께 교회에서 작은 용돈을 드리는 표현을 합니다.

저도, 김영란 법 아래에 해당하는 표현은, 좋아하는 편이겠습니까? 싫어하는 편이겠습니까?

 

(적용)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지식을 따라 배우고, 가정을 지키고, 화목하게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소중하죠.

그것은 신앙생활하는 성도들도 주님을 섬기듯, 서로 잘 섬기고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로마서 12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는 말씀처럼요.

히브리서 10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말이죠.

신앙생활도 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를 격려하는 표현하는 삶이기 때문이죠.

 

(내음성)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 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주님.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제 남편과 제 아내를 더욱 사랑하며 살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주님, 인정받고자 하는 제 남편의 특성을 더 살려줄 수 있는 아내가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주님, 사랑받고 싶어하고 관계중심적인 제 아내를 더 배려하며 살게 해주세요.”

제 아내가 어느 초밥집이 좋다고 하면, 달밤이 참 밝다고 하면, 그 뜻을 헤아리고 함께 동행할 수 있게 해주세요.”

주님, 제가 결혼하게 되면 양가 부모님께 적은 용돈이라도 매달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못 가르치면 저희 목사님이라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우리 목사님께 담대함을 주세요.(웃음)”

주님, 부부의 주일에 표현할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셨는데, 스승의 주일에 영적 스승인 목사님께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주님. 부부가 행복하면 가정생활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면 신앙생활도 행복할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를 저희의 가정 위에, 저희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부어주시옵소서.”

주님, 화려하지 않아도 온 가족이 행복한 가정생활, 온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세요.”

 

(찬양)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부의주일이자 스승의주일입니다.

행복한 부부생활, 그것은 부모를 떠나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의식적으로 서로 특성을 이해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해 하나됨을 이루는 삶을 주님은 원하신 것입니다.

 

신혼생활이든 결혼 15년차 20년차 부부든 가정의 행복은 부부의 행복에 달려 있습니다.

그를 위해 영적인 말씀과 함께 지식을 따라 배우면서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루시길 바랍니다.남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아내로,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남편, 그런 부부로 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렇게 지식을 따라 부부가 살아갈 때, 가정이 행복할뿐만 아니라 신앙생활도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이 행복한부부, 행복한가정, 행복한교회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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