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어머니의 품격을 닮은 그녀의 음식점 개업일지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어머니의 품격을 닮은 그녀의 음식점 개업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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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왔어요. 올해 91세라 그런지 몸이 예전보다 훨씬 못했어요. 전에는 구부정한 모습이라도 집에서 엉금엉금 걷기라도 했죠. 지금은 안방에서 주방을 가는데도 앉아서 가야 하는 모습이었어요. 마음이 무척 아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이었죠.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자식이 어머니 집에 찾아온다면 따뜻한 밥이라도 먹여 보내야 한다는 것 말이죠. 그 몸으로 어머니는 갓김치와 쪽파 장조림을 담아놓고 기다렸던 거예요. 어머니 음식 솜씨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그만큼 어머니가 담은 김치랑 반찬은 어디에 내놔둬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이 그윽해요.

 

누구나 그렇듯 중고등학교 시절은 한 창 배고프던 때였죠. 밥 먹고 뒤돌아서기가 무섭게 배가 꼬르륵하던 때였으니 말이죠. 밤에 잠을 자야 하는 데도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을 때도 많았고요. 그럴 때면 어머니는 부엌에 나가 개떡이나 부침개를 순식간에 만들어 내놓았죠. 대낮에는 흰 수건을 쓰고 부엌에서 불을 때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요.

 

“어머니는 김치를 썰어 접시에 담을 때라도 줄기와 잎이 보기 좋게 배치되는 담음새가 아니면 절대 용납지 않았다. 썰어 놓은 파와 풋고추가 푸릇푸릇 제 색깔을 내지 않는 된장찌개를 상에 올리는 일은 수치였다. 식구들 중에 누군가가 급한 마음에 국대접에 밥을 담거나, 밥주발에 국을 담아오면 가차 없이 혼을 냈다. 물론 이 빠진 그릇에다 태연하게 음식을 담는 사람들을 어머니는 가장 경멸했다.”(190쪽)

 

양귀자의 〈부엌신〉에 나온 내용이에요. 1995년 그녀가 한정식집을 차렸을 때 왜 그렇게 그릇에 꽂혔는지 알 수 있죠. 그때 영업용 그릇을 구하고자 중앙시장과 남대문시장을 넘어 경기도 이천까지 가서 도자기로 구워 만든 그릇을 사용했다고 하죠. 음식점 특유의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을 담아 손님에게 팔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까닭이죠. 그 모든 게 그녀가 어머니의 품격을 닮은 데서 비롯된 거죠.

 

사실 그녀가 음식점을 차릴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죠. 홍대 부근의 한식 가옥을 음식점으로 세줬는데 그 집에서 버린 고양이를 보살피다가 그 집을 손질해 한정식집을 차린 거였어요. 그때 어머니를 떠올려 상호를〈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라 지은 거고요. 처음엔 잘 됐는데 손님에게 불친절하다는 인터넷 게시판이 올라와 집도 직원도 모두 수리했죠. 그 과정도 담겨 있는데 그만큼 이 책은 작가의 삶을 녹여낸 산문집이자 감성이 담긴 ‘개업일지’라 할 수 있겠죠.

 

그녀는 왜 자기 어머니를 ‘부엌신’이라 불렀을까요? 우리의 세시풍속은 부엌을 관장하는 조앙신을 섬겼다고 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죠. 어머니가 일하는 부엌은 나름의 품격과 신성이 깃든 곳이라고 해요. 자식 중 누군가 찬장 그릇을 뒤섞여 놓거나 부뚜막을 더럽힐 때면 무섭게 화를 냈고, 밤잠 없는 자식들이 출출하다고 하면 언제든 부엌에서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냈고요. 교회 목사님이 오거나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하면 부엌 찬장에서 가장 귀한 장미꽃 유리잔과 고급 접시를 꺼냈고요. 한 차례도 헝클어지지 않고 차분하게 하는 모습들을 보고 자기 어머니를 부엌신이라 부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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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우리말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카바드’(כָּבַד)는 ‘무겁게 여기다’ ‘부담을 갖다’는 뜻이에요.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고 부담감을 안고 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 인간과 인간에 관한 첫 번째 계명이죠. 왜 그런 명령을 했을까요? 자녀들에게 부모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워주셨기 때문이죠. 자녀들의 생명은 부모를 통해서만 태어날 수 있고 부모의 희생을 통해 양육되기 때문이죠. 부모가 심은 대로 자녀가 거두는 법이고요.

 

물론 공경하는 것과 사랑하는 건 다르죠. 부모와 자식이 차라리 남남이었다면 주거나 받지 않을 상처도 있죠. 자녀들 마음속에 부모가 할퀸 상처 자국들 말이죠. 다 큰 성인이 돼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도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내재된 ‘성인 아이’ 기질이 그렇죠. 그러니 부모를 사랑하라고 하면 사랑하지 못할 자녀들도 있죠. 하지만 이웃집 노인을 사랑하지 않지만 나보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공경할 수 있듯이 부모님을 공경할 순 있죠.

 

엊그제 방송을 보니 양귀자의 〈모순〉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요. 1998년에 나온 책인데 말이죠. 일란성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의 서로 다른 삶을 보고 모순투성이라 생각한 딸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죠. 이 땅의 부모와 자식도 그런 모순처럼 사랑해야 할 사이인데 그렇지 못한 모습들이 참 많이 있어요.

 

그래도 이웃집 어른을 공경하듯 부모님의 삶과 말을 무겁게 여길 순 있죠. 양귀자가 음식점을 하면서 이가 빠진 그릇을 내놓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어머니의 품격을 무겁게 여긴 탓이니까요. 2013년 그 음식점을 폐업했어도 그녀의 성품엔 어머니의 단호한 기품이 지금도 몸에 배어 있겠죠. 그만큼 부모님을 사랑하진 못해도 그 삶과 말을 무겁게 여기고 부담을 갖고 산다면 결코 해될 것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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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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