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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동안이라도 생명의 고리를 엮어 나가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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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 등장한 김혜자가 일수꾼으로 나타났죠. 상갓집까지 찾아가 고인이 빌린 돈을 받아낼 정도였으니 너무나도 강렬했어요. 오죽했으면 고인의 딸도 김혜자에게 지옥에나 가라고 빌고 또 빈다고 했을까요? 그런데도 김혜자가 천국에 갔으니 자신도 놀랐죠. 그 이유가 딱 하나 있었죠. 밥도 못 먹고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점심 도시락조차 못 싸가는 어린 이정은을 엄마처럼 돌봐준 것 말에요.    

 

그 드라마 때문일까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최근에 홍도에서 사는 분과 목포에서 사는 분들을 초대해서 따뜻한 밥을 섬겼어요. 다들 어렵게 살아가는데 밥이라도 먹고 힘내라면서요. 또 다른 분도 있어요. 그분은 배드민턴 동호회 사람들에게 종종 삶은 달걀과 바나나를 섬기고 있어요. 저녁밥을 굶고 오는 이들에게 허기라도 달래라면서요. 그런 모습 자체가 손의 온기를 나누는 일이자 생명의 고리를 엮는 모습이지 않나 싶어요.     

 

“사람은 극한상황에 가면 가장 날것의 모습이 나온다. 생과 사의 경계인 공간에서 그런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볼 때가 참 힘들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입원한 사람의 보호자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극한 상황에서 극한 장면들을 보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99쪽) 

    

이라윤의 〈저는 오늘도 떠나지 않습니다〉에 나온 이야기에요. 20대 시절 중환자실에 인생을 바친 그녀의 진솔한 고백이라 할 수 있죠. 코로나 시절 격리 환자에게 폭행당했고 생명 도구인 보호구까지 벗겨졌으니 오죽했을까요? 중환자실 간호사는 잘하면 본전이고 작은 구멍도 크게 티 나는 직업이라고 하죠. 총만 안 들었지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곳이라고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가득한 중환자실의 경험담을 그녀는 이 책에 생생하게 녹여내고 있어요.  

   

간호사가 취업이 잘 된다고 많이들 지원하지만 최소한의 사명감이 없이 돈벌이로 들어온 이들은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해요. 그녀도 38도가 넘는데도 해열제를 먹고 출근 한 일이 있었다고 하죠. 그때는 ‘하루살이’처럼 버티고 또 버텼다고 해요. 그런데 벌써 10년이 지났고 지금은 중환자실 신규 간호사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현장교육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뿌듯할까요.     

 

이 책은 1장에 ‘중환자실의 시간과 공간’, 2장에 ‘그렇게 간호사가 되어가다’, 3장에 ‘간호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만, 간호사가 되지 않았다면 더 후회했을 것이다’, 4장에 ‘간호사의 자리는 절대 불이 꺼지지 않는다’, 5장에 ‘코로나의 상흔: 누구도 끝을 이야기할 수 없던 시간들’로 구성돼 있어요. 그만큼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겪는 어려움과 보람 등이 담겨 있어요.     

 

2020년 기준으로 미국은 간호사 한 명 당 환자 5.4명을 본다고 해요. 한국은 훨씬 많은 19.4명을 보고 있고요. 사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사업과 간호사 양성은 19세기 말 영미 선교사들의 지원과 함께 태동이 됐다고 하죠. 하지만 일제의 군대식 문화가 남긴 태움이나 낮은 의료수가 문제가 겹쳐 영미권 방식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다고 해요. 경험 많은 간호사들이 현장에 절실히 필요하지만 직업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5년 안에 사직하는 경우가 다반사고요.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마28: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리릴로 가서 제자들과 만나자는 이야기죠. ‘갈릴리’는 헬라어 ‘갈릴라이아’(Γαλιλαια)의 영어식 표현이에요. 구약의 히브리어는 ‘갈릴’(גליל,수20:7)이죠. ‘회로’(Circuit)와 ‘고리’를 뜻하는 말이에요. 본래 갈릴리는 이스라엘 북쪽 납달리 산지에 위치한 곳인데 솔로몬 왕이 두로 왕 히람에게 그 성읍 스무 개를 줬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지역을 ‘형편 없다’는 뜻의 ‘가불’이라 불렀죠(왕상9:13).      

 

그만큼 갈릴리는 변방이자 경멸의 대상이었죠.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초기에 그토록 버림받고 소외된 갈릴리에서부터 생명의 고리를 엮어 나가기 시작했어요. 가난과 상처와 질병과 죽음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하늘 소망을 엮어주신 것이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만일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을 만나자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세상은 또 한 번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렸겠죠. 그만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혈연과 학연과 지연의 고리로 다들 연결돼 있으니까요.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소외된 곳에서부터 생명의 고리를 다시금 엮어 나가도록 하신 것이었죠. 

 

이라윤 간호사는 왜 그토록 힘들고 때로는 치욕스런 중환자실을 10년간 떠나지 않았을까요? 보호자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할 할 때도 있었고, 환자가 무례하게 목을 조를 때도 있었고, 선배 간호사로부터 모욕을 당할 때도 있었는데 말에요. 그녀는 환자의 생명이 살아 있는 한 그들과 조금이라도 손의 온기를 나눠주려는 이유였다고 해요. 그 또한 생명의 고리를 엮고자 한 뜻이지 않나 싶어요. 잠시 동안만이라도, 중환자실의 간호사로 몸담고 있는 잠시 동안만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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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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