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설교열기)(예화)지난 주에 우리교회 어떤 권사님이 헌금을 하셨는데 참 감동적인 헌금이었습니다.
- 그분은 십일조도 정확하게 드리고 또 남편의 십일조까지 정확하게 드리는 분입니다.
- 더욱이 자식을 향한 일천번제 예물을 500번째 넘게 드리고 있는 분입니다.
- 그런 그 분이 지난 주에는 교회 재정이 넘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채워달라고 하면서 헌금을 하셨습니다.
- 실은 그 분이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권사님입니다.
- 권사님이 교회 재정을 맡으면서 여태껏 교회 재정상황이 악화된 적이 없는데 최근에 교회 재정이 좋지 않아 그렇게 헌금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런데 권사님은 정말로 헌금에 대해 투명한 분이십니다.
- 더욱이 교회 재정에 대해 그 어떤 성도님과 함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 누가 헌금을 많이 했네, 못 했네,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그만큼 권사님은 은혜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깨달음)우리교회 그 권사님을 보면서 얼마 전에 말씀드린 송옥기 장로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 그 분은 술고레였다가 간경화로 죽을 위기에서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분이라 그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아는 분이죠.
- 그런 그 분이 죽을 날이 임박한 것 같아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기도를 받는데 여태껏 숨긴 것 같은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몽땅 드린 분이었죠.
- 그렇게라도 해야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떳떳하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 더욱이 그 분은 교회 재정이 좋지 않아 담임목사님 사례비를 드릴 수 없는 지경이 됐을 때는 자신이 그만큼의 액수를 무명으로 드린 분이라고 했습니다.
- 우리교회 권사님을 볼 때 꼭 그 장로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 (적용)요즘은 십일조나 헌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 그것은 구약시대에나 행한 일이라면서 말입니다.
-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는 연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 본문의 연보는 특별한 연보요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청지기로서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사실입니다.
-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 (역배)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전서 1-15장까지 살펴봤습니다.
- 15장까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분류되었죠.
- 고린도전서 1장 1-9절까지는 고린도교회 교인에 대한 감사와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 고린도전서 1장 10절-6장까지는 고린도교회의 대립과 파당, 도덕적 해이와 무질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질책과 권면이 나왔죠.
- 고린도전서 7장-15장까지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의 현안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이 목회적인 답변을 내 놓는 것이었죠.
- 오늘은 고린도전서 16장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그야말로 고린도전서의 종결부입니다.
- 그 중에 1-4절은 연보에 대한 바울의 언급이 나와 있습니다.
- (본문)우선 본문 1-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 (원해)‘연보’는 헬라어로 ‘로기아’(λογεία)인데 영어로는 수집품(collection)입니다.
- 놀라운 것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 부분과 2절 말씀에 유일하게 나온 단어라는 점입니다.
- 그만큼 이 단어는 일반적인 단어가 아닌 특수한 단어임을 알 수 있죠.
- 중요한 것은 그 연보를 ‘매주 첫날에’ 그리고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모아 두라’고 합니다.
- 그래서 바울이 갈 때 연보를 하지 않도록, 다시 말해 부담을 주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라는 뜻이죠.
- (본문2)본문 3-4절은 이 연보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 (깨달음)왜 바울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한다고 합니까?
- 당시 예루살렘에 혹독한 재난이 임했죠.
-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런 재난을 입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구제 헌금을 한 것입니다.
- 그것을 본문에서 로기아로 곧 연보로 표기한 것입니다.
- 그런데 바울은 1절에서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헌금을 했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만 명한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들에게 명했다는 뜻이죠.
- 하지만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어디를 봐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향해 구제헌금을 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 그만큼 바울이 갈라디아에 갔을 때 그 교회 성도들에게 말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 (적용)그런데 어떻게 연보를 하라는 것입니까?
- ‘매주 첫날’이죠.
- 이것은 안식 후 첫날입니다.
- 안식일은 요즘 이야기하는 토요일이니까 안식후 첫날은 주일의 개념이죠.
-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날 모였을 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회당을 찾았지만 시간이 흘렀을 때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하라는 것이죠.
- 다만 바울이 갈때에 연보를 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은 그만큼 헌금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 세 번째 중요한 것은 그 구제 연보를 ‘은혜’라고 3절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은혜’란 헬라어로 ‘카리스’(χάρις) 곧 ‘그레이스’(은혜)입니다.
-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은혜를 끼치며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 그것은 누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일깨워 주는 것도 되겠지만 물질을 나누는 것도 은혜를 끼치는 일이라는 거죠.
-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눌 때 진정한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 은혜를 나누도록 말씀하셨죠.
-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 네 번째 중요한 것은 헌금의 투명성입니다.
-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줘서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한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 너희들이 모은 연보 헌금을 나한테 주라고 한 게 아니라 너희들이 인정하는 사람을 결정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 나는 추천서를 써 주겠다는 뜻이죠.
- 그런데 만약 바울도 가는 게 합당하게 생각한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 돈은 투명해야 하니까 그렇죠.
- 사도 바울 자신이 직접 돈을 들고 가면 투명하지 않게 되니까 말입니다.
- 오해를 살 수 있는 것이죠.
- 그래서 교회에서 재정을 맡은 사람은 투명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 교회가 교인들의 돈 문제에 대해 투명하지 않으면 이미 신뢰를 상실한 지경에 처하게 되죠.
- 우리교회가 3개월에 한 번씩 재정을 투명하게 보고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 (전개)그런데 적지 않는 분들이 고린도전서 16장 1-4절을 근거로 더이상 헌금으로 부르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합니다.
- 본문의 말씀처럼 연보로 불러야 한다면서 말이죠.
- 그만큼 더이상 헌금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냥 나눠주면 된다고 하는 식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헌금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이죠.
- 그러나 그런 해석은 본문 말씀을 확대해석한 것입니다.
- 본문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재난을 당한 이재만을 위한 연보 아닙니까?
- 그래서 성도를 위한 연보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이죠.
- 바울이 본문의 헌금을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 말한 것입니다.
-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의 중요성은 다른데 있는 것이죠.
- 본문 1절의 말씀처럼 ‘성도의 연보에 관하여는’ 하는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이죠.
- 이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런 연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헌금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 물론 이때 바울이 헌금의 문제를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 믿음으로 헌금은 드리는 것인데 내게 물질이 있다면 모두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유권자임을 알라는 차원이죠.
- 그래서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반드시 타인을 위한 몫이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헌금이 자연스럽게 믿음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죠.
- 하지만 그런 믿음의 성숙이 없이 헌금만 한다면 부적처럼 될 수 있는 것이죠.
- 그래서 바울은 이 헌금의 문제를 고린도전서의 마지막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주문)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물질 속에는 내 것만 아니라 타인의 몫까지도 들어 있으니 흘러보내는 삶을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 “송옥기 장로님이 죽음에 임박해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숨김없이 드린 것도 하나님 앞에 투명하고픈 마음이지 않았더냐?”
- “교회 재정이 어렵다면서 하나님께서 재정의 은혜를 부어달라면서 헌금을 드린 그 권사님도 믿음의 참된 수준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왜 구제연보를 하도록 권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기근과 굶주림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의 수입에 따라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흘러보내는 연보를 드리도록 한 것 아니겠느냐?”
-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나눠야 할 주님의 몫임을 기억하도록 한 것 아니겠느냐?”
-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 “하나님께서 너에게 물질을 맡기실 때 그것이 많든 작든 그것은 너만을 위한 물질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물질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라 그리하면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줄 것이라는 그 말씀을 좇아 남에게 흘러보내는 구제의 삶도 진전으로 은혜이지 않겠느냐?”
- “교회 재정이 어려울 때 너도 믿음의 자세로 함께 재정을 짊어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것 역시 구제 연보와 똑같은 성격이 되지 않겠느냐?”
- “그런 너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너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실 테니 말이다.”
- (찬양)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놓았네
-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주소서
-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실 때 영혼만 구원하신 게 아니라 육신과 물질까지도 구원하셨습니다.
- 그만큼 우리의 물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 그렇기에 주님께서 내게 소득을 베푸실 때 소득의 십일조는 물론이고 내가 쓸 수 있는 것 중에서 남을 위해서도 쓸 것을 주님께서 베푸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는 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물질의 청지기답게 내 것을 내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나보다 작고 연약한 이들을 흘러보낼 때 주님께서는 더욱 풍성케 채워주시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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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를 위한 연보에 관하여는.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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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지난 주에 우리교회 어떤 권사님이 헌금을 하셨는데 참 감동적인 헌금이었습니다.
그분은 십일조도 정확하게 드리고 또 남편의 십일조까지 정확하게 드리는 분입니다.
더욱이 자식을 향한 일천번제 예물을 500번째 넘게 드리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 그 분이 지난 주에는 교회 재정이 넘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채워달라고 하면서 헌금을 하셨습니다.
실은 그 분이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권사님입니다.
권사님이 교회 재정을 맡으면서 여태껏 교회 재정상황이 악화된 적이 없는데 최근에 교회 재정이 좋지 않아 그렇게 헌금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정말로 헌금에 대해 투명한 분이십니다.
더욱이 교회 재정에 대해 그 어떤 성도님과 함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누가 헌금을 많이 했네, 못 했네,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만큼 권사님은 은혜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음)우리교회 그 권사님을 보면서 얼마 전에 말씀드린 송옥기 장로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술고레였다가 간경화로 죽을 위기에서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분이라 그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아는 분이죠.
그런 그 분이 죽을 날이 임박한 것 같아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기도를 받는데 여태껏 숨긴 것 같은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몽땅 드린 분이었죠.
그렇게라도 해야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떳떳하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더욱이 그 분은 교회 재정이 좋지 않아 담임목사님 사례비를 드릴 수 없는 지경이 됐을 때는 자신이 그만큼의 액수를 무명으로 드린 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교회 권사님을 볼 때 꼭 그 장로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적용)요즘은 십일조나 헌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나 행한 일이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는 연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연보는 특별한 연보요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청지기로서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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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전서 1-15장까지 살펴봤습니다.
15장까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분류되었죠.
고린도전서 1장 1-9절까지는 고린도교회 교인에 대한 감사와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6장까지는 고린도교회의 대립과 파당, 도덕적 해이와 무질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질책과 권면이 나왔죠.
고린도전서 7장-15장까지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의 현안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이 목회적인 답변을 내 놓는 것이었죠.
오늘은 고린도전서 16장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그야말로 고린도전서의 종결부입니다.
그 중에 1-4절은 연보에 대한 바울의 언급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우선 본문 1-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원해)‘연보’는 헬라어로 ‘로기아’(λογεία)인데 영어로는 수집품(collection)입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 부분과 2절 말씀에 유일하게 나온 단어라는 점입니다.
그만큼 이 단어는 일반적인 단어가 아닌 특수한 단어임을 알 수 있죠.
중요한 것은 그 연보를 ‘매주 첫날에’ 그리고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모아 두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갈 때 연보를 하지 않도록, 다시 말해 부담을 주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라는 뜻이죠.
(본문2)본문 3-4절은 이 연보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깨달음)왜 바울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한다고 합니까?
당시 예루살렘에 혹독한 재난이 임했죠.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런 재난을 입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구제 헌금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로기아로 곧 연보로 표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1절에서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헌금을 했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만 명한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들에게 명했다는 뜻이죠.
하지만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어디를 봐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향해 구제헌금을 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바울이 갈라디아에 갔을 때 그 교회 성도들에게 말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적용)그런데 어떻게 연보를 하라는 것입니까?
‘매주 첫날’이죠.
이것은 안식 후 첫날입니다.
안식일은 요즘 이야기하는 토요일이니까 안식후 첫날은 주일의 개념이죠.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날 모였을 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회당을 찾았지만 시간이 흘렀을 때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하라는 것이죠.
다만 바울이 갈때에 연보를 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은 그만큼 헌금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중요한 것은 그 구제 연보를 ‘은혜’라고 3절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은혜’란 헬라어로 ‘카리스’(χάρις) 곧 ‘그레이스’(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은혜를 끼치며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일깨워 주는 것도 되겠지만 물질을 나누는 것도 은혜를 끼치는 일이라는 거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눌 때 진정한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은혜를 나누도록 말씀하셨죠.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네 번째 중요한 것은 헌금의 투명성입니다.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줘서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한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너희들이 모은 연보 헌금을 나한테 주라고 한 게 아니라 너희들이 인정하는 사람을 결정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추천서를 써 주겠다는 뜻이죠.
그런데 만약 바울도 가는 게 합당하게 생각한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돈은 투명해야 하니까 그렇죠.
사도 바울 자신이 직접 돈을 들고 가면 투명하지 않게 되니까 말입니다.
오해를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에서 재정을 맡은 사람은 투명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의 돈 문제에 대해 투명하지 않으면 이미 신뢰를 상실한 지경에 처하게 되죠.
우리교회가 3개월에 한 번씩 재정을 투명하게 보고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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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그런데 적지 않는 분들이 고린도전서 16장 1-4절을 근거로 더이상 헌금으로 부르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합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연보로 불러야 한다면서 말이죠.
그만큼 더이상 헌금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냥 나눠주면 된다고 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헌금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해석은 본문 말씀을 확대해석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재난을 당한 이재만을 위한 연보 아닙니까?
그래서 성도를 위한 연보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이죠.
바울이 본문의 헌금을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 말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의 중요성은 다른데 있는 것이죠.
본문 1절의 말씀처럼 ‘성도의 연보에 관하여는’ 하는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이죠.
이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런 연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헌금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물론 이때 바울이 헌금의 문제를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헌금은 드리는 것인데 내게 물질이 있다면 모두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유권자임을 알라는 차원이죠.
그래서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반드시 타인을 위한 몫이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헌금이 자연스럽게 믿음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믿음의 성숙이 없이 헌금만 한다면 부적처럼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이 헌금의 문제를 고린도전서의 마지막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문)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물질 속에는 내 것만 아니라 타인의 몫까지도 들어 있으니 흘러보내는 삶을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송옥기 장로님이 죽음에 임박해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숨김없이 드린 것도 하나님 앞에 투명하고픈 마음이지 않았더냐?”
“교회 재정이 어렵다면서 하나님께서 재정의 은혜를 부어달라면서 헌금을 드린 그 권사님도 믿음의 참된 수준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왜 구제연보를 하도록 권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기근과 굶주림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의 수입에 따라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흘러보내는 연보를 드리도록 한 것 아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나눠야 할 주님의 몫임을 기억하도록 한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에게 물질을 맡기실 때 그것이 많든 작든 그것은 너만을 위한 물질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물질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라 그리하면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줄 것이라는 그 말씀을 좇아 남에게 흘러보내는 구제의 삶도 진전으로 은혜이지 않겠느냐?”
“교회 재정이 어려울 때 너도 믿음의 자세로 함께 재정을 짊어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것 역시 구제 연보와 똑같은 성격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너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너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실 테니 말이다.”
[전자책]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예스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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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놓았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주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실 때 영혼만 구원하신 게 아니라 육신과 물질까지도 구원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물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내게 소득을 베푸실 때 소득의 십일조는 물론이고 내가 쓸 수 있는 것 중에서 남을 위해서도 쓸 것을 주님께서 베푸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는 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청지기답게 내 것을 내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나보다 작고 연약한 이들을 흘러보낼 때 주님께서는 더욱 풍성케 채워주시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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