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예화)지난 금요일 오후 1시 30분 무렵에 미국의 베델교회에서 파송한 서정희 선교사님이 방문했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에서 살던 그 분이 미국에 건너가 20년 넘게 살았고 남편과 함께 신학공부를 하던 중에 캘리포니아의 베델교회에 다니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는 한인들이 주축을 이루지만 일본 사람도 있고 아프리카 사람도 있고 미국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진 교회라고 했습니다.
담임목사가 설교할 때에는 대부분 헤드셋 번역기를 끼고 설교를 듣고 이해한다고 하죠.
놀라운 것은 11,000명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그 중심 사역이 선교사역이라고 했습니다.
서정희 선교사님도 동유럽 공산권 국가인 루마니아에 들어가 난민 사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기간 동안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가 없어서 시리아 난민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쳐주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 한국에 들어온지는 4년이 됐는데 농어촌교회와 미자립교회의 목회자 자녀에게 화상으로 영어를 가르쳐준 사역을 매칭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다른 나라로 갈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깨달음)그런데 그때 그 분이 깜짝 놀랄 말을 해 준 게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미전도종족에 속한다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랬죠.
“아니 우리나라가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미전도종족이 될 수 있나요?”
“그랬더니 그 분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40대 연령은 복음화율이 20%가 넘을지 몰라도 10대와 20대는 2~5% 미만이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의 복음화율이 2%대면 대부분 미전도종족, 그 나라 스스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종족이라고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적용)그분이 제게 영어공부할 수 있도록 미국 베델교회의 57세가 된 스티브 리를 연결시켜 주셨고 노트북도 주고 가셨습니다
그때 혼자 생각을 한 게 있었습니다.
왜 우리나라가 이토록 미전도종족이 되고 말았을까?
그 무엇보다도 기성세대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지 않고 사회적인 공의를 실현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세대가 바로 서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싶었습니다.
오직 미국을 맹종하고 미국의 극우화된 기독교, 정치화된 기독교를, 하나님처럼 맹신하는 게 문제이지 않나 싶은 것이었죠.
현재 우리나라의 대형교회들조차도 미국의 트럼프와 미국의 기독교를 하나님처럼 떠받들지만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코끝의 호흡이 멈추면 고깃덩어리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이나 국가의 권력보다도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모습이 진실된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모습이 살아날 때 우리의 다음 세대도 하나님께서 바르게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나의 힘으로 삼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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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예레미야’(יִרְמְיָה)란 이름은 ‘주님께서 들어올리신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에 패망한 유다 백성이 다시금 세워질 수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인데, 아버지 힐기야는 엘리 제사장(삼상14:3)의 후손인 아비아달의 자손입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고자 할 때 그 솔로몬을 제치고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걸 도운 인물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됐을 때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파하고 아나돗 땅에서 살게 했습니다.
어찌보면 예레미야는 몰락한 제사장 가문의 후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후에는 왕궁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수가 없었죠.
다만 남왕국 유다의 16번째 요시야가 8살에 왕이 되어 통치 28년에 종교개혁을 일으켰는데 그때 할아버지 므낫세가 닫어버린 성전문도 열었고 제단도 수축하고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그때 성전을 수리할 때 그 안에서 율법책을 발견한 인물이 예레미야의 아버지 힐기야였던 거죠.
그때가 B.C.627년으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로 사역한 때요 16살 거의 20살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던 요시야 왕이 말년에 교만해버렸습니다.
애굽의 파라오와 므깃도 전투를 벌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길 거라 생각했지만 그만 죽고 말죠.
그때가 B.C.609년의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뒤였습니다.
유다를 격파한 애굽의 파라오는 유다 왕도 자기 멋대로 세했는데 여호야김을 제18대 왕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니 여호야김은 친애굽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B.C.605년에 바벨론 제국이 애굽과 갈그미쉬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 애굽이 패하고 말죠.
그 일로 친애굽정책을 펼친 여호야김은 힘을 잃게 되죠.
그때 다니엘을 비롯한 많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것이 제1차 바벨론 포로유수로 B.C.605년의 일입니다.
그 무렵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바벨론에 의해 환란을 당하는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죠(렘36장).
하지만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여호야김 왕은 그 책을 불러 태워버립니다.
그리고는 바벨론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도 없던 일로 여기고 바벨론 제국에게 반역을 하죠.
그걸 알아차린 바벨론 왕은 여호야김 왕을 죽이고 그 자리에 여호야긴을 제19대 왕으로 앉히죠.
그런데 그 여호야긴도 여호야김처럼 반역을 꾀할지 몰라 3개월간 왕으로 앉힌 뒤에 바벨론으로 끌고 가버립니다.
그때 많은 유다 백성들이 함께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 일이 제2차 바벨론 포로유수기로 B.C.597년의 일이죠.
이제 바벨론 제국은 시드기야를 제20대 왕으로 세우는데 그들의 꼭두각시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드기야조차 바벨론 제국보다 애굽의 힘을 의지할 때 B.C.586년 마지막으로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유다 왕국을 완전 멸망시키죠.
그 무렵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선포를 합니다.
하지만 유다의 왕과 지도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예레미야를 끌고(렘42-43장) 애굽으로 도망칩니다.
하지만 무장한 바벨론 군사들에게 곧장 붙잡히고 마지막으로 포로로 끌고 가는데 그것이 B.C.581년의 일로 제3차 포로유수기죠.
예레미야는 바로 그 직전까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사역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깨달음)이게 그 당시에 급변하는 국제정세였습니다.
그 당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숭배하며 탐욕에 물든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심령을 흔들어 깨우고자 예레미야를 불러 바벨론 제국에게 징계를 받기 전에 회개하도록 촉구했죠.
하지만 왕과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서지 않았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고 예레미야가 쓴 두루마리 성경도 불태워버리죠.
그러다가 친애굽 정책을 쓰는 이들과 함께 왕과 지도자들이 애굽으로 도망치다가 바벨론 군대에게 붙잡히는 수모를 당한 것입니다.
그때 폐허더미로 변할 예루살렘 성읍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르는 이유(렘9:1)입니다.
그와 같은 예레미야의 활동은 열왕기하 21-25장과 역대하 33장-36장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토록 유다 백성들을 향해 그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도록 선포한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도 안 된다면 사악하고 포악한 애굽의 파라오를 의지하지 말고 차라리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끝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살던 그들이 애굽의 힘과 팔을 의지하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완전히 폐허더미로 멸망하고 말죠.
그때 예레미야는 미스바에 남아 사는데 그달랴 총독이 암살되고 요하난이 예레미야와 나머지 사람들을 애굽으로 끌고 가죠.
그때 예레미야는 애굽에 숨어들어가도 하나님께서는 찾아내 멸망시킬 것이라면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도록 촉구하죠.
그렇게 예레미야는 20살 때 하나님의 부름받아 40년간 사명을 감당한 선지자였습니다.다.
우리가 읽고 있는 예레미야서는 불타 없어진 두루마리인데 바룩의 도움으로 복원한 것으로 보죠.(렘36:17-18, 렘45장 초반부).
그래서 예레미야 1장은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소명장이고 2-25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26-29장은 어리석은 거짓 선지자들과 예레미야가 논쟁을 벌이고, 30-33장은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34-45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둘러싼 사건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예레미야의 전반부 말씀입니다.
후반부는 열국에 대한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46-49장까지는 애굽, 블레셋, 모압, 에돔, 다메섹에 관한 메시지를 선포하죠.
50-51장은 바벨론에 관한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52장은 예레미야서의 결론인데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성전이 강탈당하고 여호야긴 왕이 감옥에서 벗어날 것을 선포하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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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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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그렇다면 오늘 읽은 예레미야 17장은 예레미야의 전반부 말씀에 속하는데 그중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5절을 다시 한번 읽으면 과연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을 것인지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17:5)
(원해)여기에 ‘사람’은 히브리어로 ‘아담’(אָדָם)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을 뜻하기도 하지만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그 시기에는 온통 사악한 일극체제를 강화한 이집트의 왕 파라오를 칭하는 말입니다.
‘믿는다’는 히브리어 ‘바타흐’(בָּטַח)는 ‘신뢰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 120회 쓰였는데 무언가 매달리며 붙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어떻습니까?
자기 무능함과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의지하는 건 너무나도 좋은 말 아닙니까?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끝날 우리 인생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기대는 것은 너무나도 올바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이 이집트의 파라오를 붙잡고 매달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파라오도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이고 코끝의 호흡이 멈추면 그도 고기덩어리 밖에 되지 않는데 마치 신처럼 숭배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백성이요 그런 사람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백성을 향한 저주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멸망하는 것이요 1차와 2차와 3차에 걸려 포로로 끌려가 70년간 고생고생하며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원성)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5-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9:23-24)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까?
아주 능력이 있어 보이고 아주 월등해 보이는 사람이나 국가나 나라를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호흡이 끊어지면 그 생각도 그 능력도 모두 소멸되고 말기 때문이죠.
겉으로 보기에는 능력자들이 먼저 도착하고 용사들이 전쟁에 승리할 것 같지만 그 시기와 기회는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네 명철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좇아 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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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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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사람의 힘과 팔을 의지하기보다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남왕국 유다의 왕과 백성들처럼 애굽의 파라오와 같은 사람이나 나라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너의 구원자요 힘이시오 능력이시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네가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붙잡고 살기를 원하지 않겠느냐?”
“미국의 베델교회에서 파송한 서정희 선교사님이 우리나라도 미전도종족이라고 했는데 다음세대의 복음화율이 2%가 안되는 이유가 있지 않느냐?”
“어른 세대인 너 자신부터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붙들리기보다 사람의 힘을 좇고 불의한 방법을 찾아 정치화된 기독교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애굽의 파라오처럼 미국의 트럼프가 아무리 강력해보여도 그도 코끝의 호흡이 멈추면 한낱 고깃덩어리가 불과하다는 것을 네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에덴동산의 아담도 자기 탐욕과 욕망 때문에 코끝의 호흡이 사라지는 날 육신의 고기덩어리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네가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붙잡으려고 하지는 너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간의 힘과 능력보다도 오직 너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께 매달릴 때 네 인생의 시기와 기회를 하나님께 열어주지 않겠느냐?”
(찬양)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화)캐나다 하면 모두가 지상 낙원과 같은 곳으로 생각을 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록키산맥이 유명한 곳이고 또 UN이 정한 살기 좋은 나라고 사회복지가 잘 돼 있어서 이민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죠.
우리나라 국토의 107배에 달하는데 그 땅에 3,300만 정도만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살다가 캐나다에 가면 숨통이 확 뚫리는 걸 느낀다고 하죠.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은 벤쿠버, 휘슬러, 캘거리, 로키밴프, 토론토, 나이아가라라고 하죠.
그곳 캘거리에 있는 한 교회의 수요예배에 한국에서 온 여자 집사님이 한 분 있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그곳에 유학을 시키면서 자신의 일을 할 생각으로 답사를 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캘거리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마침 그 예배 때 그런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고요.
그때 그 여집사님이 그 말씀을 듣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그런 고백을 했다고 하죠.
“그렇군요. 이곳에 와서 사는 것은 내 힘으로, 사람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군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이 이곳에 오는 걸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아닌지 먼저 하나님께 물어봐야 겠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곳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살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지도 않는데도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이곳에 오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겠죠.”
[전자책]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예스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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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그것은 제 딸과 똑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엊그제 제 딸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빠. 엄마. 나 IPP 장기현장 실습 가는 것 합격했어요.”
“6월 23일부터 12월 19일까지 실습하는 거예요.”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삼성전기에 합격했어요.”
“제일 경쟁률 빡셌고 들어가기 힘든 곳인데 숙소 제공하고 밥 다 제공하고 월급도 2백5십이나 돼요.”
“남들에 비해 스펙도 막 좋은 게 아니었는데 붙었어요.”
“월급 받으면 엄마 아빠에게 좀 드릴께요.”
그때 제가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엄마 아빠에게 돈 안 보내도 돼.”
“실은 올해부터 한 달에 20만원씩 소원예물을 드리고 있어.”
“현장실습에 합격한 것도 좋지만 그 후에도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삶이면 더욱 좋겠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십일조를 드리면 좋을 것 같아.”
(깨달음)제 딸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딸도 그렇고 캘거리에 유학을 가고자 한 그 집사님과 자녀들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자들인 줄 믿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자녀들의 인생도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은혜의 법칙을 깨닫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인간의 힘과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인생은 더욱 복되고 아름다울 것이니 말입니다.
(내기도)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 힘이나 제 능력을 의지하지 않게 해 주세요.”
“오직 하나님의 힘과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살게 해 주세요.”
“지상낙원이라는 캐나다에 유학하려는 그 집사님과 자녀들도 사람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인 줄 깨달었어요.”
“제 딸아이의 인생도 IPP 현장실습의 길이 열린 게 전부가 아니라 그 후가 더욱 복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그 실은 인간을 의지하고 사람의 힘이나 지혜보다도 오직 하나님의 팔을 붙잡고 사는 길인 줄 믿어요.”
(찬양)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나 이제 주를 따라가려네 나 이제 주를 따라가려네
세상 죄길 버리고 생명길을 찾았네 나 이제 주를 따라가려네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나의 하루하루를 주를 따라가리라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전자책]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예스24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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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세상의 힘이나 사람의 방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며 살 때 그 자녀에게도 동일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애굽의 파라오만 의지한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을 때 바벨론에 패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다 백성들에게 그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도 이전에 아무리 잘 헤쳐왔다 할지라도 내 힘이나 내 방법보다도 주님의 능력과 주님을 팔을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세계 강국을 자랑하는 이집트의 파라오라 할지라도, 아무리 세계 패권을 주도하는 트럼프라 할지라도, 그 코의 호흡이 끝나는 순간 고깃덩어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직 저와 여러분들이 붙들고 매달리고 신뢰해야 할 분은 우리의 구주 하나님 아버지 뿐인 줄 믿습니다.
그런 부모의 삶을 통해 자녀들이 복을 누리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