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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읽은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연약하여 때로는 사탄의 영향력에 휩쓸릴 때도 있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제자들처럼 감정적인 신앙생활에 치우칠 때도 있고, 세상 염려와 물질의 탐욕에 이끌릴 때도 많다는 점 말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환경과 상황에 지배받고 살아가는 연약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은혜로 품어주셔서 일하는 제자들로 살 수 있게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곧 길가, 돌밭, 가시밭과 같은 우리들의 심령이지만, 주님은 그런 심령들을 부드러운 심령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곧 옥토와 같은 심령으로 변화시켜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그 크신 긍휼과 사랑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등불의 비유, 자라는 씨의 비유, 또 겨자씨의 비유가 나오고..
오늘 읽은 말씀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3-8절을 보면 네 가지의 씨앗이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먼저 4절을 보면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라고 말씀하고 있고, 5절에서는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또 7절에서는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그리고 8절에서는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실한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기에, 네 가지의 씨앗 중 하나만 결실된 것 같죠. 그러나 우리말 성경과 헬라어 원문은 다릅니다. 우리말은 똑같이 ‘더러는’ 영어로는 ‘some’ 곧 ‘어떤 것은’으로 돼 있지만 원문은 다릅니다. 원문의 4절과 5절과 7절의 “더러는” 하나의 씨앗을 뜻하는 ‘단수’로 돼 있고, 8절의 ‘더러는’ 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능력이 있고, 세례 모든 민족 가운데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수효가 다른 민족보다 훨씬 적고, 더 연약했을 뿐이죠. 그런데도 그들이 선택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신 것도 마찬가지였죠. 그들이 능력있고, 지혜가 뛰어나고, 믿음이 출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고 초라할지라도 주님의 선택과 긍휼하심 때문에 제자가 된 것이었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의 일꾼, 주님의 둘로스요 휘페레테스로 삼으신 것도 똑같다고 했습니다. 전적인 주님의 선택과 긍휼하신 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데 대해 그 집안 식구들 곧 친족들과 예루살렘의..
어제 읽은 말씀을 통해 종교적인 형식에 따라 금식하며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그래서 우리의 내면 안에 있는 낡은 부분이 있다면 주님을 모시기에 온전한 심령으로 변화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안식일에 주님의 제자들이 벼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두고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다윗과 그 부하 장수들이 성막의 진설병 떡을 먹은 것을 이야기하시면서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듯이, 율법의 형식적인 관점에 치우치지 말고 그 의미와 내용을 되새김질하면서 살도록 하고, 인자는 안식일뿐만 아니라 모든 날의 주관자이심을 천명하셨습니다. 바꿔 말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들이 실은 주님의 날이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선한 청지..
어제 읽은 중풍병자의 사건과, 세리 레위를 주님의 제자 마태로 부르신 장면을 통해 그와 같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을 지라도 그 난관을 극복하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 우리도 그 사람처럼, 그 친구들처럼 주님께 간절히 의탁하고 나아가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죄인들을 부르시며 소외된 자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시고 영혼의 치료자가 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도 세상의 죄악 속에 빠져 있는 그 누구라도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품고 사는 자들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사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크게 두 가지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금식에 대한 논쟁이 그 첫 번째 사건이요, 또 ..
어제는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는 능력의 예수님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종의 관점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차린 귀신들에게도 결코 드러내지 말도록,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기 사명을 다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봤었죠. 주님께서는 그렇게 갈릴리 지역의 수많은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셨고,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당신이 누구신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말 하지 말라고 해도, 당신이 큰 능력을 가지셨다는 소문이 그 지역 전체에 널리 퍼지게 되었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늘 묵상할 본문 말씀에 두 가지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1-12절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나와 있고, 13-17절에는 세관으로 일하고 있는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