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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의 목요일날 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만찬을 가지셨습니다. 그 직전에 주님께서는 ‘이 중에 나를 팔 자가 있을 것이라’고, ‘차라리 그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하고 이야기하셨는데, 다들 ‘나는 아니지요’. ‘나는 아니지요’, 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떡과 잔 곧 살과 피를 나누어주셨는데, 그 때라도 가롯 유다가 “주님 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하고 회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어쩌면 그 시간까지 마지막 기회를 주시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그렇게 하질 못했죠. 그에게는 주님의 생명보다 이 세상의 돈의 가치, 자기 욕망의 가치 가 훨씬 더 크게 보였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데리고 감람산으로 가셨는데..
고난주간의 수요일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 베다의 문둥병 환자 시몬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때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두 사람이 있었죠.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순전한 나드 향유, 당시 노동자의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린 마리아가 있었고, 반대로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가롯 유다가 있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까? 개인적인 주님의 은혜를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지났는데도 그런 오라버니를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받은 바 있고, 또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가르칠 때 맨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받은 체험이 있는 신앙인이죠. 반대로 가롯 유다는 주님을 3년씩이나 따라다녔고, 주님께서 갖가지 기적..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때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바닥에 깔고 예수님을 환호하고 열광했죠. 이제 드디어 예수님께서 다윗의 그 옛 왕위를 세울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지만 왕으로서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전을 한 번 둘러보신 다음에는 베다니 마을로 나가셨죠. 이튿날 주님께서는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고 가 봤는데, 아무런 열매가 없자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무화과나무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망이자 탄식이셨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장사치들의 ..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곧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 높이는 열왕기상 7장 5절을 보면 각각 18규빗입니다. 18규빗이란 본체만 그 높이에 해당되는 것이고, 머리 부분이 5규빗, 기둥 본체가 18규빗, 그리고 받침이 12규빗입니다. 총 30규빗에 해당되는 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미터로 환산하면 1규빗이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하기 때문에, 1규빗을 45cm로 쳤을 때, 솔로몬 성전의 총 높이는 13미터 정도 되는 셈입니다. 13미터란 요즘 아파트 건물의 3층 높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야 그 높이가 그리 높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2천900여년 전의 건물 높이라면 대단한 높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던 솔로몬 성전이 B.C.586년의 바벨론..
고난주간의 수요일날 예수님께서는 계속되는 논쟁과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사두개인들이 칠형제가 아내를 취하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 물었을 때, 주님은 부활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의 천사와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인간의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그 영혼은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 하나가 나와도 어느 계명이 큰지 물었을 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곧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도 이 땅에 두 발을 내 딛고 살지만 영원하신 저 천국을 소망하는 자로 살..
종려주일 곧 고난주간의 수요일날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서 세금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대적했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명시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위한 세금도 납부하지만 더 큰 하나님의 나라 곧 영생의 나라를 위한 선한 청지기의 삶도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 말씀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현실세계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나라이기에 이 세상을 위한 세금은 물론이요 정치현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살라는 뜻이요, 더 나아가 이 세상의 현실세계를 허락하신 더 큰 영원한 천국의 세계도 놓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이 땅을 향한 시선과 저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시선, 두 개의 분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