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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 동네에 소를 키운 집들이 몇 있었다. 소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치니 재산 목록 1호였다. 소로 쟁기질하던 아버지에게 처음 그걸 배울 때 두려웠다. 그 소가 뒷발질로 날 차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까닭이다. 그 소로 달구지를 끌 때면 이젠 나도 다 컸나 싶어 우쭐했다. 그 소가 어쩌다 줄에 꼬여 왼쪽으로 드러눕는 걸 보면 아버지는 숨 막힐 정도로 뛰어가 소를 일으켰다. ‘그의 소는 민족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피투성이인 그의 몸부림이었다.’ 최열의 〈이중섭, 편지화〉를 읽고 든 생각이다. 이중섭은 유학 때 만난 마사코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했다. 1950년 부산을 거쳐 제주도 서귀포 쪽방에서 살았다. 1952년 생활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냈고 1년 후 ‘제주도 ..
그 시절엔 하루해가 너무나도 길었다. 1997년도 전주에서 자취할 때다. 새벽녘부터 인력공사에 나가 낮에는 허드렛일을 했고 밤에는 전주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 대부분 졸음 반 수업반이었다. 낮에는 아파트 공사현장이나 물탱크 청소에 투입되거나 소가죽 염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일당이 5만 원이었다. 인력공사 소개비 5천 원을 떼고 4만 5천 원을 받았지만 너무 감사했다. 벌써 27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그 시절을 견디며 소망하며 살았을까? “현실을 바꿀 순 없지만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김새해의 〈무엇이든 잘 풀리는 인생〉에 나온 감동적인 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20대 시절 사업에 실패한 부모님 때문에 4번이나 거주 국가를 옮긴 그녀다. 워킹비자가 없어 일..
그때 그 뜻을 받아 준 일로 지금껏 연이 닿고 있다.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분이 부인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신앙의 갈등 탓이었다. 그때 한 집 살림의 묘수를 나와 함께 고민했다. 적지 않는 돈도 빌려줬다. 그 제안에 통 큰 믿음으로 결단했다. 힘든 중에도 매달 십일조를 드렸고 아내에게 보내던 생활비는 10분의 1로 줄였다. 그로부터 두 달 만에 한집 살림을 차렸다. 그걸 기반으로 지금껏 행복하게 산다. 그 은덕을 잊지 못해 명절 때 선물을 보낸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한 은혜의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결핍을 성장의 재료로 쓰신다.’ 염미솔의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를 읽고 든 생각이다. 부모님의 빚 독촉으로 고등학생 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 생각하며 절망과 한탄 속에..
어느 교회의 설교시간에 맨 앞에서 졸고 있는 분이 있었다. 매번 그러니 너무나 신경 쓰인 목사님이 그 교우의 집에 찾아가 왜 그런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목사님, 뭐라 말씀드리기가 송구해요. 실은 제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상하게 목사님 설교시간만 되면 잠이 쏟아지네요.” 그 이후부터 그 목사님은 예배시간에 조는 분들이 눈에 띄면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단다. 지금 하나님께서 불면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라고. ‘육아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 최다희의 〈친절한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를 읽고 깨달은 생각이다.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둘째를 제왕절개로 낳았고 셋째 때는 군인 남편이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파병갔다. 코로나로 셋 다 집에서 보육할 땐 너무 힘들었단다. 첫..
부화한 병아리 한 마리가 죽었다. 못 먹어서 그랬을까? 어미 닭에 밟혀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아침엔 또 한 마리가 부화했다. 한꺼번에 쑥쑥 나왔으면 좋겠는데 가뭄에 콩나듯 한다. 그 녀석을 재빨리 꺼내 종이 상자에 담았다. 종이컵을 잘라 물을 줬고 사료도 넣어줬다. 병아리 한 마리를 살려내는 게 쉽지 않은데 새우를 키우는 조〇균은 얼마나 노심초사할까 싶다. 점심 무렵엔 말벗이 필요한 형님을 만나 밥을 먹었다. 커피도 마시면서 그렇게 권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밖을 나가 땀을 흘리고 피곤한 몸을 만들라고. 황창연 신부도 그랬다. 나이 들어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우울증과 치매를 부른다고. 늙으면 매일같이 집 밖을 나돌아다니고 그러다 지쳐 잠들다 죽는 게 좋은 거란다. 병아리를 돌보든..
오랜만에 보이차를 마셨다. 목포 시립도서관 아래 ‘다예향’에서다. 예전 박○수 집사님이 준 보이차 맛 이후 처음이다. 이번엔 목사님 두 분과 마셨다. 그곳 운영자는 3시간에 걸쳐 33잔을 마시는 게 좋다고 했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의 중국 친구도 차를 마실 땐 가득 채우지 않는 게 예의라 했다. 천천히 마시면서 독소를 빼내고 상대의 마음을 채우는 거라고. 보이차를 마신 뒤 교회 텃밭에 있는 보리수를 대접했다. 기침 가래 천식에 좋은 게 그거다. 보리수나무란 보리가 익을 무렵 꽃이 피고 열매가 익는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자로 호퇴목(虎頹木)이다. 잔가지와 열매가 호랑이 무늬와 닮은 얼룩점이 있어서 붙였단다. 35세의 싯타르타는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다 도를 깨달았고. ‘종교란 제나를 버리고 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