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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전주태평교회 전도사 시절에 가르쳤던 제자 하나가 지금은 집사님이 되었는데, 거기서 산 지 7년이 넘습니다.
7년 넘게 살면 가장 원하는 무엇일까요? 시민권과 영주권을 받는 것이죠.
그래야 미국에 살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법령이 바뀐다 해도 추방당할 일이 없기 때문이죠.
그만큼 미국의 시민권과 영주권은 초일류 국가 미국의 보호를 받는 면에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한 때 우리나라 고위층 자녀들을 출산할 때 원정출산한 경우가 많았죠.
그곳에서 자녀를 출산하면 나면서부터 미국 국적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훗날 우리나라의 국방의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는 셈이 되는 것이죠.
물론 원정출산까지 하면서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게 법적으로는 자유할지 모르지만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일이죠.
미국 국적으로 갖고 태어났으면서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의 법에 대해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면 얼마나 이중적인 모습일까요?
(깨달음)“아브라함과 다위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아브라함부터 시작해 예수 그리스도를 잇는 족보에 관한 말씀이죠.
본래 아브라함은 천국시민의 족보를 얻지 못한 자였죠.
아버지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 땅에 살다가 아버지가 죽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죠.
그때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창12:1)고 말씀하셨죠.
그것은 지리적인 것, 장소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죠.
장소를 떠나고 그 지리를 떠나라는 말씀이었다면 나중에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을 본토로 보내서 며느리를 삼게 하지 않았겠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한 것은 ‘본토 친척 아버지 집’, 곧 ‘아브라함이 의지하는 것들’로부터 떠나 하나님만 붙잡고 살라는 것이죠.
만일 아브라함에게 장소와 지리를 떠나서 가나안 땅에 살 때만 천국시민권자가 되게 해 주신다면 우리도 대한민국을 떠나 가나안 땅 곧 지금의 이스라엘 땅으로 다 떠나야 하겠죠.
작년엔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면서 자기 성도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떠나도록 한 여자 목사님이 있었죠.
그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입니까?
물론 아브라함을 천국시민권자로 삼으신 것은 ‘아브라함이 의지하는 것만 떠나라고 해서’ 된 게 아니었죠.
“너의 독자, 네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도 있었죠.
그 말씀도 네가 소유하고 있고, 네가 의지하고,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나야만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이삭을 바쳤을 때 놀라운 족보 축복의 족보요 가문의 족보요, 예수 그리스도를 잇는 구원의 족보를 이루게 됐죠.
그것이 바로 천국시민권자의 모습입니다.
(적용)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이 땅에 살아도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명의 주인으로 모실 때 가능한 것이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지니고 살지만 천국의 시민권자로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 자신도 아브라함처럼 내가 의지하고 기대는 것들로부터 떠나야 하고, 내가 사모하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족보, 축복의 족보, 천국시민의 족보,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의 족보를 써 나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시민권자 자격을 얻게 되었다면 천국시민권자답게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시민권과 영주권을 받았는데, 우리나라 땅에 와서 범죄와 마약을 즐겨한다면, 결코 올바른 모습이 아니듯이 말이죠.
우리가 천국의 시민권자라는 자격을 받았다면 그만큼 천국의 시민권자답게 살아가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원하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주시기를 원하는 천국의 시민권자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역배)바울이 자신을 조롱하고 모함하고 폭행을 저지른 유대인들에게 동족 히브리 사람이라면서 복음을 전했죠.
자신은 율법주의자요 누구보다도 교회를 박해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는데 앞잡이였다고 했죠.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정오의 태양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눈은 떠지만 거꾸러졌죠.
그때 주님께서는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를 통해 두 눈을 뜨게 주셨죠.
그 다메섹에서 아라비아 광야로 3년간 경건훈련을 거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누구도 반겨주지 않았죠.
그때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데 황홀한 환상으로 주님께서 “이곳을 떠나가라. 이방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죠.
그와 같은 이야기를 바울은 자신을 모함하고 폭행한 동족 유대인들에게 전했죠.
그것은 그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모셔들여 하나님의 진정한 양자가 되도록 하라는 뜻이었죠.
비록 겉모습만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되게 따르는 자들이 영적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주님의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어찌 반응했습니까?
그들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소리쳤죠.
“저런 자는 없애버리는 게 마땅하다.” “저런 자는 살려둬서는 안 된다.”하고 말이죠.
그래서 그들의 특유의 관습대로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날리면서까지 바울을 죽이려 들었죠.
(깨달음)왜 그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싫어한 것이었습니까?
그들은 여태껏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을 쳐서 복종시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저 나면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태어날때부터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지 복음을 통해서 거듭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양자가 되었다면 말씀 앞에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거죠.
그렇게 나를 쳐서 주님께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유대인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는 이들과 똑같기 때문이죠.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에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축복의 주인공들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거부한채 다들 옷을 날리고 티끌을 날리며 바울에게 달려들어 죽이려는 모습 앞에 천부장 루시아가 나섭니다.
몇 시간 전에도 그 유대인들이 바울을 짓이기고 폭행하면서 질질 끌고 가는 걸을 막아서 바울에게 쇠고랑을 채워 들고 갔죠.
그때 바울이 부탁해서 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이 말하는 히브리말을 모르죠.
그는 로마 사람으로서 헬라어만 할 뿐 히브리말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좀전까지만 해도 바울이란 자가 자객 4천명을 거느리고 폭동을 일으킨 자라 유대인들이 짓밟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죠.
그런데 지금은 히브리말로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자신은 아무 말도 못 알아듣는데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또다시 바울을 죽이려 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이란 자를 채찍질하면서 심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을 안토니아 요새로 끌고 가서 채찍질하고 심문하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그 부분이 본문 24절 말씀인데, 이때 바울이 보인 반응을 본문 25절에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천부장 루시아는 자기 밑의 백부장에게 바울을 끌고 가서 채찍질하고 심문하도록 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나온 채찍질은 철납이 박혀 있는 채찍으로, 그것으로 때리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채찍이죠.
만약 바울이 그것으로 맞았다면 어쩌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로마에까지 가지 못한 채 죽었을지 모릅니다.
그때 놀랍게도 바울이 생각 난 게 있었으니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는 그 당시 누구도 함부로 가둬둘 수도, 채찍질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정식 재판을 열어서 죄가 있으면 그때 그 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돼 있죠.
바울은 바로 그 로마 시민권자라는 게 떠올랐던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주님께서 떠오르게 해 준 생각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고 말해야만 함부로 채찍질하지 않을 수 있고, 정식 재판을 통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히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바울을 심문하려는 백부장이 그 즉시 천부장에게 가서 그 사실을 다 고하죠.
이때 천부장이 와서 바울과 주고 받은 말이 본문 27-29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어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깨달음)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히자 바울을 심문한 백부장은 물론이고 천부장도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다가와 “네가 정말로 로마 시민권자냐”하고 물어본 것이고, 바울은 “그렇다”고 대답했죠.
그러자 천부장은 “나는 돈을 많이 내고 로마 시민권을 샀다”고 밝히고,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라고 말하죠.
그러자 바울을 심문하려는 자들도 물러가고, 혹시라도 바울을 결박한 것 때문에 화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죠.
(적용)중이 당시 로마 시민권을 얻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로마에 공적을 올려서 로마 시민권을 얻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뇌물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얻는 경우죠.
물론 로마 시민권은 자손 대대로 계승이 됩니다.
유대인 출신인 바울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면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 대에서 로마에 공적을 올렸거나 돈으로 로마 시민권을 샀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지금 천부장은 자기 당대에 자기가 뇌물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산 것이고,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자였다는 거죠.
그러니 천부장은 바울이 자신보다 훨씬 먼저 로마 시민권을 누리고 있었기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는 점이죠.
더욱이 천부장 루시아는 자기 성공과 자기 출세를 위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와 성공과 출세를 위함이 아니라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힌 것이죠.
(예화)이재철 목사님이 오래전 이해인 수녀님과 주고받은 문자가 있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하루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목구멍에 가시가 돋는다고 생각하는 술꾼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존경하는 은사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는 밤을 새워 그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술이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 극약인지 상세히 기술돼 있었다.
술꾼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깊이 결심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책을 읽지 않겠노라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술꾼에게는 술이, 오늘 본문이 언급하고 있는 로마 시민권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은사님이 보내 준 책의 내용에 충격을 받은 그 술꾼이 술을 백해무익한 배설물로 여겼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 이후에는 술독에 빠져 자기 삶을 낭비하지 않았겠죠.
오히려 다른 동료들에게 술을 먹지 말라고 했고, 그들에게 생명을 건져 올리는 전도자가 되었겠죠.
(적용)우리 자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의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나 대에서 천국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요, 내 자녀와 후손들은 나를 통해서 천국의 시민권자가 되겠죠.
중요한 것은 천국의 시민권자 답게 나를 향하신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드리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천국의 시민권자답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주인공으로 사는 은혜를 베푸시는 거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진정한 천국의 시민권자로 살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가 의지하고 기대던 것들을 다 떠나보내고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살지 않았더냐?”
“그 아들 독자 이삭을 바칠때도 그 사랑하는 것, 그가 아끼는 것까지 주님께 바치면서 주님께 떠나보내지 않았더냐?”
“그를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윗의 자손이 되는 복된 가문과 후손의 복을 누리지 않았더냐?”
“그것보다 더 귀한 천국시민권자가 어디에 있겠느냐?”
“본문속 루시아는 돈으로 사서 로마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루시아는 로마시민권으로 돈과 명예와 권력을 누리고자 했고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이 땅의 천국시민권자답게 바울처럼 하나님나라의 증인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너도 천국시민권자답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드리는 천국시민권자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도 천국의 시민권자들임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양자된 아들 딸로 삼아주신 천국의 시민권자들이죠.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이 땅에서 부와 명예와 권력과 성공과 출세를 위함보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으로 사는 천국시민권자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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