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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67편 1절은 민수기 6장 24-26절의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민수기6장24-26절은 저도 그렇지만, 목사님들이 축도할 때 기도문으로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이렇게 축복하라’라고 주신 말씀 말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하는 말씀 말이죠. 그것이 곧 그 당시의 제사장의 역할이기도 했죠. 제사장의 역할은 그렇게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한없는 축복으로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그 놀라운 복이 백성들에게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 뜻은 출애굽기 19:5-6절에서 더 확대됩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고, 온 세계에 대한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민수기6장24-26절에서 말씀하신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온 세계가 구원의 복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라는 큰 사명을 주신 것이죠.
그래서 본문 1-2절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주의 도를 땅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이 구절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기도에서 ‘복을 주다’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지속적인 도움, 자손의 번성, 농사의 복, 그리고 전쟁에서의 승리 등이죠.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에게 그러한 복들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은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얼굴빛 즉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복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단순한 이스라엘의 번영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2절 말씀은 1절의 기도의 목적이 “도”와 “구원”을 만방에 알리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방식과 구원하시는 방법이 온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이 받는 복이 하나님의 통치방식과 연결된다는 것이죠. 본문 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3절과 5절의 후렴구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 동일한 두 절은 4절을 둘러싸서 강조하고 있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주시는 복으로 인해서, 단순히 만방이 주의 구원을 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게 하는 것, 그를 통해 모든 민족과 열방이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그처럼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위의 나라들을 인도하실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부르는 찬송의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라는 점이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방법과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오직 주님의 공의와 긍휼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비참한 백성들을 구원해내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본다면, 다른 모든 민족들도 그런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다스리심을 저절로 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복주시고 다스리시는가는, 앞으로 온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를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복을 비는”기도 속에서 그런 사명과 목적을 표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촉구한 것이죠. 이스라엘은 그래서 기도할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들을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기 때문에 말이죠.
본문 6-7절입니다.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구체적인 실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이 내는 풍성한 소출에 관한 것이죠. 여기의 “땅의 풍성한 농산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가장 전형적인 결과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복의 산물”을 붙들고, 이스라엘은 또 다시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복을 주셔야만 하는 이유를 그렇게 덧붙이죠.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2절과 3,4,5절에서 이미 표현된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그분께로 나아와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과 복에 대해 온 세계인들이 알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짧은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과 사명을 밝혀 주고 있죠. 그것은 만방에 하나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는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 주심”이 필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자신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복 주심을 비는 기도”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오셨습니다. 아니 예수님 자신이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과 복이셨습니다. 그분의 삶과 사역과 부활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복은 오직 모든 민족을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온 세상을 의롭게 통치하시는 왕이심을 모든 민족이 깨닫고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그 복을 온 세상에 전달해야 하는 사명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복과 주의 도를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복, 가족과 건강, 그리고 자녀들의 복, 물질을 비롯해 은사적인 측면의 복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들을 헤아린다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그와 같은 복을 주신 것일까요?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그 복이 내게 머물러 있는 종착역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 것은, 거기에서 멈춰버리도록 함이 아니라 세계 이방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도록,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복을 받는 것들은 내 안에서 끝나버리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들어가고, 그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점이죠. 그래서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시대에 영적인 제사장 나라로 당신의 소유로 삼아 주시고 축복의 통로로 품어 주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축복의 통로가 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통치하심을 만방에 펼쳐 보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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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고 주님의 도와 구원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구원과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며, 모든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고 땅위의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신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복을 더하사, 우리 자신이 복의 종착역이 되지 않게 하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흘러가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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