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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의문점 앞에 멈칫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휘몰아칠 때, 달고 오묘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을 때입니다. 우리를 낙심에 빠트리거나 더이상 믿음이 성장하지 않도록 만드는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입니다.
은혜로운 수련회를 위해 비가 그치기를 기도했지만 하염없이 비가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자식의 대학입시나 취업시험을 위해 새벽제단을 쌓았지만 재수, 삼수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암에 걸린 아들의 치유를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결국 부모의 손으로 아들의 눈을 감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그토록 기도했건만 전도의 열매도 없이 쓸쓸히 철수해야 하는 선교사들도 있습니다.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지, 의심과 불신의 먹구름이 긴 장마처럼 우리를 우울하고 낙담케 할 때가 있죠. 영혼의 어두운 밤은 왜 또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말입니다. 영적 사막이 끝이 없게 느껴질 때가 있죠. 하나님께 올려드린 우리의 기도들은 과연 제대로 그분 손에 전달되기나 한 것일까? 혹시 우체통에 꽂혀있다 버려지는 전단지처럼 우리의 기도가 그렇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66편의 기자는 감격에 겨워 찬송을 그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죠. 찬송과 기도를 반복하던 기자가 마침내 그렇게 기도를 마무리하죠.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19-20절)
본문을 쓴 기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기자는 어떤 고통스러운 문제로 기도했는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3절에 보면 ‘주의 원수’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아, 어떤 원수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고, 그가 오랫동안 기도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웃 이방인들의 압제인지, 오랜 가난인지, 아니면 이웃들의 비방인지, 힘겨운 육체의 질병인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여하튼 본문의 기자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마치 ‘응답받는 기도는 이렇게 드리는 거야’ 라며 가르치고 있는 듯싶습니다. 본문에는 응답받는 기도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과연 어떤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 6절에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하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피조물에 대한 명령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죠.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홍해를 건너게 하신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기가 막히게 만든 웅덩이가 아무리 깊다 한들, 홍해보다 깊겠습니까? 우리를 우겨 싸는 상황이 아무리 세다 한들, 애굽의 바로보다 세겠습니까? 응답받는 기도의 첫 번째 단추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데서부터 비롯됩니다.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크심을 믿는 것,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습니까? 우리들의 삶에 ‘시련’이라는 것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 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시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10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때로 우리의 인생은 남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불의한 자들이 우리의 머리를 짓밟기도 합니다. 불 시련, 물 시련이 동시다발적으로 오기도 합니다. 필사적으로 구하는 기도응답이 지연되어, 인생 패배자나 낙오자 처럼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죠. 그러나 능력의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외부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정작 우리 속사람은 정금같이 단련이 되죠. 우리는 선물과 성공과 건강을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시련 속에서도 낙심치 않는 강한 내공을 주십니다. 광야 같은 인생에서도 만나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가시죠. 그만큼 우리가 구할 때 하나님은 다른 것을 채워주시는 방식으로 응답하셨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죠.
그래서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틀린 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보는 눈이 없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크신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분을 향한 신뢰를 결단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연단하시는 하나님이시죠. 반드시 우리 시련을 풍부로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능력과 구원의 하나님께 그리스도인들이 반응해야 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고난 중에 하나님 앞에 서약한 것들이 있다면 반드시 지키는 자세죠. 13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게 갚으리니” 다급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결심한 것들 중에 우리가 그것들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간이든, 물질이든, 자기 생명이든 아까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 앞에, 우리 삶을 산 제물로 드린다 한들 그 사랑을 우리가 다 갚기나 하겠습니까?
둘째로 두 마음을 품고 기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8절에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악한 마음을 숨기고, 멋진 표현으로 기도해봐야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우리의 탐욕을 위한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기적인 기도만 하는 이에게는 기도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때론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속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정직’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간구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더 깊은 기도, 더 높은 기도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선물보다도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외적인 것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항상 응답을 받게 되죠. 그것은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도 마찬가지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는 주님 앞에 간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아뢰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정작 더 깊이 있게 기도해야 할 바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켜나가면 심화시킬수록, 우리의 외적인 것은 주님께서 아시고 하나씩 그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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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는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게 해 주시옵소서. 혹여 시험이 온다 하더라도, 응답이 지연된다 하더라도 우리를 연단케 하여 하나님나라의 일꾼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단련임을 믿고 인내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 우리 삶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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