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시편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시65:1-13)

by 똑똑이채널 2022. 5. 25.
728x90
반응형
SMALL

세계 고대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가을이 되면 한해의 농사를 짓고 수확을 거둔 뒤 하늘의 신께 감사예식을 드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그런 제천(祭天)행사는 주로 하늘의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가 끝나면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음식을 나누어 먹었죠.

전라남도 진도를 중심으로 해안지방에서 널리 행하던 ‘강강술래’도 바로 마한시대의 제천의식이라 할 수 있는 ‘농공시필기’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남편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나간 후에 남아 있던 여인들이 달 밝은 밤에 풍요로운 농사와 남편들이 많은 고기를 잡아 만선(滿船)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 제사의식 말입니다. 그런 기원으로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려가면서 춤을 추는데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이 후렴구로 ‘강강술래’를 불렀다고 하죠.

그처럼 고대 인간들조차 하늘의 신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인간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65편은 보편적으로 다른 시편들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이른바 시편의 많은 시들을 읽어봤지만, 대부분 고통 속에서 탄식하거나, 원수에 대해 저주해 달라는 내용들이 이어졌는데, 오늘 읽은 시편은 다릅니다. 오직 하나님을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5절)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가을 추수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농사를 짓고 수확을 거둔 뒤에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듯한 분위기는 이 시의 후반부에 가득한 느낌입니다. 이른바 본문 9-13절의 말씀 말입니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주님께서 그 땅을 돌보시고,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고,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 주시고, 단비를 주셔서, 그 싹에 복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기름 방울이 넘치고, 초장에 가득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풍족한 가을걷이, 넘치는 곡식을 거둬들이게 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다윗에게, 그리고 다윗과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까?

본문 1절에 그 핵심적인 이유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이 부분의 표준새번역이 이렇습니다. 하나님, 시온에서 주님을 찬양함이 마땅한 일이니, 우리가 주님께 한 서원을 지키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에서 주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을 향한 서원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과연 무슨 서원을 이행한다는 것이겠습니까? 과거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민족의 자유를 주신 것, 광야 40년간 그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것, 여호수아와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하나님의 언약 전쟁을 치르기 위해 수고하고 땀 흘리며 피를 흘리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신 것, 그리고 지금 다윗과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왕정을 세우고 이방 세력들을 차례로 물리칠 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셔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하신 그 역사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나아가는 과정이죠. 그리고 그 중심이 시온 곧 예루살렘 땅에서 펼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시온에서, 곧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그런 과정 속에서 그들이 사는 가나안 땅, 곧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터전 위에 풍성한 포도와 석류가 넘치도록 채워주셨으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다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처소이자 온 우주의 중심인 성전, 곧 시온에서 지녀야 할 세 가지 태도를 오늘 본문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다윗이 쓴 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는 아직 성전이 지어지지 않는 때죠. 성막 시절입니다. 솔로몬 시대에나 성전이 세워졌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서는 성전을 언급하고 있죠.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아마도 성막을 성전으로 다윗이 바라봤거나, 혹은 시편도 바벨론 포로 이후의 작품이기 때문에 편집하면서 성전으로 표기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다윗의 시대에는 성막의 시대였죠.

그 성막이 서 있는 예루살렘 땅, 곧 시온 땅에서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태도가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잠잠히 묵상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갈망하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1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하고 말이죠. 시온을 찾는 자들, 성전을 찾는 자들, 주님의 임재를 모시고 예배하는 자들은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 자들 아닙니까? 우리가 예배 때 지녀야 할 자세가 바로 그런 마음과 자세죠.

둘째로 하나님을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순간,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자세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도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하고 고백하는 것이죠.

셋째로 시온에 설 때, 곧 성전에 설 때, 다시 말해 주님의 임재를 모실 때 취해야 할 자세는 ‘참회하는 자세’입니다. 3절에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내 죄악을 주님 앞에 비추며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는 모습입니다.

왜 우리가 그런 마음과 자세로 주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까? 본문 9-10절에 나온 말씀처럼 주님께서 땅과 만물을 돌보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특별히 땅을 돌본다는 히브리어 ‘파카드’(פקד)는 ‘보러온다’(to come to see)는 뜻으로 책임을 지고 맡는다는 뜻입니다.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까지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어디 자연 만물뿐이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까지도, 곧 천상과 지상과 음부의 세계까지도 온전히 주관하시는 분이시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주님은 당신의 언약을 지키사, 풍성케 하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해주셨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던 것처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인 우리들에게도 영적인 가나안 땅 곧 천국을 선물로 주시사, 훗날 그곳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다만 그곳은 죽어서만 갈 곳으로 생각지 마시고, 이 땅에 살아 있는 날 동안 이 땅에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일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 길은 내가 있는 곳을 성전으로, 더 나아가 내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여기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자, 그곳에서 죄악을 이겨내는 자의 삶을 살 때에 가능한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런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성전된 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679116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www.aladin.co.kr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을 감사와 기쁨으로 채우는 것은 소유의 풍성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며 친밀감을 드러낼 때 가능한 줄 믿습니다. 매일매일 천국을 일구게 하시고, 우리의 몸이 성전된 몸이 되게 하시사, 주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때 영적인 풍성함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