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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63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보면 다윗이 광야로 내 몰렸던 때는 크게 세 차례가 있었죠. 자신의 장인이자 최고 통치자인 ‘사울’ 왕이 다윗을 정치적인 적으로 생각하여 수천 명의 군사를 동원해 잡으러 다닐 때, 가나안 땅에 인접한 적대국가 블레셋 땅으로 도망칠 때, 그리고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인해 쫓겨 갈 때였죠.
사실 ‘광야에 있을 때에’라는 의미는 다윗이 더이상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는 살 수가 없고, 지금까지 맺어 왔던 좋은 관계들을 다 정리해야만 하고,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으로 내 몰린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나라 땅에서는 광야를 보기기 쉽지 않죠. 어디를 가도 산이 있고, 들판에 놓여 있기 때문에 확 트인 광야를 좀체 볼 수가 없죠. 그런데 이스라엘의 유대 땅을 밟았을 때 그때 그곳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자라기 어려운 형국이었죠. 보이는 것이라고는 붉은 사막과 바위산 뿐이었죠. 그런 이스라엘과 우리나라 땅을 비교하면 정말로 ‘금수강산’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입니다.
유다 광야는 뜨거운 햇볕을 피할 곳도 없고, 가도 가도 길을 찾기 어렵고, 옆을 봐도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바울도 광야에서 3년간 경건훈련을 거쳤고, 그리고 본문의 다윗도 그 곳에 내 몰렸죠.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고, 숨어 찾아들어갈 곳이 없었죠.
그런 상황이었으니, 다윗이 누구에게 소망을 두고,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상황에 내몰린 다윗이었기에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붙잡고 나갔던 것이죠. 본문 1절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이 유대 광야를 헤맬 때 물이 없고, 황폐한 그곳에서 오직 주님을 앙모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3절에서는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물이 없고 황폐한 광야를 거닐고 있으니, 자기 생명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며, 언제 자기 목숨이 끝날지 모르는 처지임을 절감한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인자하심이 없으면 한시라도 버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자신의 처지가 다윗처럼 광야로 내 몰린 삶이라면, 우리 자신도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 더더욱 명확해집니다. 오직 생명의 주관자요,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붙잡고, 주님의 인자하심을 구하는 것 말입니다.
본문 4-6절입니다.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다윗은 평생 주님을 송축하겠다고 결단합니다. 믿음이란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으며, 어느 상황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광야에서 그는 평생 주님을 송축하는 인생이 되고 싶다고 결단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손을 들고, 내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만족하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결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광야의 황폐한 상황속에서도, 본문을 통해 긍정적인 표현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손을 들겠다”, 곧 하나님께 경배하고 의지하는 모습이죠. 또 5절에서는 “골수와 기름진 것”, 곧 먹을 것이 없는 중에서도 풍요로운 음식을 찾아내고, 궁핍한 가운데서도 맛있는 것을 찾아내는 지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절에서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그리고 “기쁜 입술로 즐겁게 찬송”하겠다고 표현하죠. 지금 손에 잡힌 것이 없고, 눈에 만족스런 상황이 아닌, 불모지 광야, 황폐하기 짝이 없는 그 상태에 처했는데도, 어떻게 그런 만족할만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그가 확신했기 때문이죠.
다윗의 이런 표현들은 풍요로운 현대인들, 다시 말해 금수강산과도 같은 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때때로 불평하고 불만족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인생의 광야가 닥쳐왔을 때, 다윗처럼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앙망하면,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며, 자족하며, 만족할만한 영혼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여기에서 ‘침상에서’란 말은 잠자리에 들 때를 나타내는 것이죠. 그리고 “새벽에 주의 말씀을 읊조릴 때에”는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말씀을 듣는 여러분과 같은 상태를 일컫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다시 말해 하루 종일, 시시때때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찬양하겠다는 다윗의 고백은 궁극적으로 주님이 승리자이시며,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7-10절을 통해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와 즐거운 기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지이지 않습니까? 그곳에 어찌 날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 어찌 칼의 세력들로부터 지켜 줄 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을 향한 날개가 되어 주시고, 주님께서 오른 손으로 노략질하는 승냥이들로부터 자기 목숨을 지켜주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즐거이 부르리이다.”하고 고백하는 것이죠. 그리고 8절 말씀처럼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겠다고, 주님을 더욱더 사모하고, 앙망하며, 주님을 가까이 따르는 사람처럼 자신도 함께 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이죠.
그렇듯 다윗은 유대 광야의 쫓기는 신세 속에서도,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 없는 불모지의 상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과 함께하겠다는 굳은 결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의 결단 속에서 광야 8년을 지냈을 때,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명실상부한 왕이 될 수 있었고, 또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광야로 쫓겨났을 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그의 모든 신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의 믿음 아니겠습니까? 어떤 형편 속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함 없이,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믿음 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광야를 맞이했을 때 하나님과 교제하는 걸 더더욱 놓치지 말고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 변함없으심을 찬양하고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죠. 그때 그 광야의 터널을 지나 하나님께서 또다른 새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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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다윗이 유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모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만 앙망하는 믿음을 허락하시옵소서. 광야같이 힘든 현실 속에서 끝까지 감사하는 성숙한 믿음을 주시고,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며, 평생에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매순간 생활 속에 만족함을 발견하는 지혜를 주시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가까이 따르게 하셔서, 주의 오른손으로 붙드심을 삶 속에서 체험케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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