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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64편은 다윗이 개인적인 고통에서 건져주시기를 구하는 시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라고 표제가 돼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경인물이죠. 골리앗을 넘어뜨린 자요, 민족의 영웅이 된 자요, 후에 왕위에 등극한 왕이요, 또 수많은 시를 남겼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받고 존귀함을 받은 다윗인데도, 우리가 읽은 여러 시편들을 통해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고통과 한숨의 시를 쓰지 않았습니까? 그의 시를 보면 너무나 많은 환란과 눈물과 죽음의 위협과 원수들의 조롱과 칼날과 올무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고민의 흔적들이 역력하죠.
성경에서 믿음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나님께 호평을 받은 다윗인데, 어찌 그 인생이 그렇게 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던 것입니까? 사실 다윗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도, 그 삶 자체가 이 땅에서 고난의 시간들이지 않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을 거슬러 살아가는 자들이고, 때로는 세상이 취하는 것들과 선을 긋고 살아야 할 운명이죠. 그것 자체로 세상에서 치이고 힘든 시간들과 싸워나가야 하죠.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9절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하느니라.”
죄악된 세상을 보면서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것, 그 죄 된 세상의 원리와 가치가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것, 그것이 실은 고난이며 눈물입니다.
또한 로마서 2장 23-24절이 이렇게 증언합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기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주인과는 다른 주인을 좇아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편안이나, 원하는 소원을 전부 이루고자 함이나, 혹은 남들이 우러러보는 환경과 가문을 지니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가 되는 것이죠. 그 일로 인해 이방 사람들에게 모독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8장 2-3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에 그들이 광야의 길을 행진한 그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광야의 길이 주는 의미는 너를 낮추고, 너를 훈련하며, 너의 마음이 정말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뜻이었는지,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마음이 있었는지를 알고자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만나를 주셨는데, 그 또한 만나 자체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지 테스트한 것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신앙인 말입니다.
그것은 본문 속의 다윗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윗이 고난의 길을 걷고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인생을 하나님께서 이끄신 이유도 똑같다는 것이죠. 오직 그를 낮추시고 훈련시키사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좀 편안해야 한다고 우깁니다. 먹고 살만 해야 하고, 외적인 조건이 채워져야,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의 도망자 세월을 산 다윗도, 만나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곧 하나님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시원하고 또 따뜻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조력자들을 통해 그를 먹이고 입히는 그 삶을 살게 해 주셨죠.
그렇기에 우리 자신들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또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그 모든 초점을 나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 주님에게 맞추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로 인해 자족하면서 말이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지, 우리를 연단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들 아니라고 말하죠. 고기가 있어야 하고, 먹을 빵도 떡도 충분히 채워져야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수 있다고 불평하죠. 그것을 모세를 향해, 또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한 삶이었죠. 그것도 광야 40년 내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령한 목적지에 이르는 것은 오직 만나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신령한 목적지가 아니고 부유함이고 성공이나 높은 지위를 두게 되면, 매사에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어찌 영적인 가나안 땅, 곧 천국을 소유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주일날 오후에 말씀을 드렸듯이, 사도 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 곧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네 어머니다’하는 당부를 절대적인 삶의 자리로 받들고, 살지 않았습니까? 다른 동기동창생, 곧 예수님을 따라 다닌 다른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고, 칭송과 명성이 자자한데, 고작 요한이 하는 일이라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모습이었죠. 그러나 요한은 그것이 주님께서 부여하신 절대적인 삶의 자리로 받들고 순종했을 때, 후에 마태나 마가나 누가가 기록하지 못한 그 자신만의 복음을 기록하는 영광된 도구가 되었죠.
이것이 우리들의 삶에도 필요하다는 점이죠. 배부르게 할 만한 고기덩어리나 높은 지위가 없을지라도, 또 내 동기동창생들이 다들 세상에서 한 자리씩 하며 잘 나간다 해도,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 가정의 자리, 일터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며 자족하는 삶 말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남이 듣지 못한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하실 것이고, 그것으로 훗날 믿음의 간증이 되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10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지금 다윗에게 주어진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광야요, 고통과 눈물과 한숨이 짓누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는 노래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세상이 목적이 아닌 구원받은 인생이라면, 결단코 이 세상의 일로 인해 낙담하지 않으며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살려내지 못하고, 세상이 우리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여호와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도 어떤 형편 속에서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족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동안에도, 오직 세상을 목적으로 살면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해도 고통과 근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목적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두면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부족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광야에 거한 다윗, 고통 속에 처한 다윗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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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예수님을 믿어 세상으로부터 차별되고 더 세련되고 더 성공의 삶을 살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건 복음이 아니고 기독교가 아닙니다. 진짜 수렁에서 건져진 자라는 분명한 구원에 대한 자각이 있다면 더 누리고 더 쌓지 못해도 오직 예수님만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자족하며 감사하는 자인 줄 믿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며 자족하는 삶,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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