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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다윗이 이 시를 지었을 때 그의 상황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2절에서 “내 마음이 약해질 때”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우리말 ‘약해질 때’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타프’(עָטַף)는 ‘쇠약해지다’ ‘실패하다’ ‘압도당하다’(overwhelmed)는 뜻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쇠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생, 노, 병, 사,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것은 인간이 지은 죄의 결과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런 상태에 있는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시는 과정이기도 하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사에는 언제나 처절한 실패와 절망이 있습니다. 실패를 비껴가는 인생은 아무도 없죠.
또한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풍의 한 복판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맞게 되면 우리의 인생이 압도당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죠.
다윗은 그의 몸으로 낳은 아들 압살롬과 사랑하는 친구이자 책사였던 아히도벨의 배신을 통해 그의 표현 그대로 ‘아타프’, 약해질 때로 약해졌습니다. 그의 육신과 정신은 쇠약해졌습니다. 누가 봐도 그의 왕국은 이제 끝나버린 것 같고, 그 일련의 과정과 환경 속에 그의 인생은 압도당하는 모습이죠. 우리가 그런 경우에 처했다면 우리 역시도 다윗처럼 ‘아타프’ 곧 약함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약함의 때를 지날 때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조언은 두 가지가 있겠죠. 하나는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이죠. 실패와 환경에 함몰되지 말고 자신의 자아를 더욱 굳세게 하여 그 상황을 돌파해 나가라는 것 말입니다. 한계를 두지 말고 도전하고 극복하라는 것이죠.
또 다른 하나의 조언은 실패와 그 환경을 잊어버릴 만한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실패에서 오는 두려움을 상쇄할 만한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해 그 어려운 상황을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회피와 같죠.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은 ‘아타프’, 인생의 약함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이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죄인 된 인간은 자아의 강화를 통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약함의 때를 극복하기 위해서 즐거움과 쾌락을 찾는 노력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잠시의 즐거움이 지나면 더 큰 두려움과 공허함이 밀려올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인생의 약함의 때 ‘아타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속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다윗은 그 해답이 바로 우리 인생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죠. 그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하고 말이죠.
우리의 약함은 오직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우리 인생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약함의 때에 우리 자신을 강화하거나 그 상황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죠. 하나님께 우리 인생의 약함을 전적으로 의탁하며 나아가야 하는 법이죠.
본문에서 다윗은 우리의 인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네 가지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3-4절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 망대 장막 그리고 날개라고 표현하죠. 그리고 그 하나님께로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그 하나님 안에 머물라고 권면하죠. 그래야 하는 이유를 5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하나님께서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얻을 기업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5절을 시작하는 첫 단어가 이유 접속사인 ‘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타프’, 약함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이죠. 다윗은 그만큼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인생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죠. 그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그의 통치하심을 따르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업’(heritage)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하죠.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기업 곧 유업이란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서부터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죠. 그곳은 풍요의 상징이며 넉넉함의 상징이죠. 물과 포도주가 넘쳐나고, 무화과와 석류 열매가 풍성한 땅이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그 풍요함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에게 가나안 땅은 영적인 풍요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풍요의 땅을 허락해 주시죠. 그 땅에서 우리는 광야에서는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물과 포도주를 마시게 됩니다. 험난한 사막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무화과와 석류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비록 연약한 때를 지난다 할지라도 영적인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아닐지라도, 영적인 든든함과 영적인 체험들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영적인 이스라엘과 같은 우리 자신들이 주님께 더욱 의탁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다윗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찬양으로 그 시를 마무리 합니다. 간절한 부르짖음, 간구의 기도로 시작한 그의 입술 속에서, 어느새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의지적인 결단을 하죠.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하나님의 기업, 영적 풍성함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이행하겠다고 다짐을 하죠. 그만큼 주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죠.
그렇기에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윗과 같이 인생의 연약한 때를 지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다면, 무엇을 붙잡고 의지해야 할지 분명해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일을 내 힘과 내 능력으로만 더 밀어붙여 나갈 것도 아니고, 그것을 회피하고자 또 다른 괘락을 추구할 것도 아니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더 의탁하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법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장막이시자 피난처시며 진정한 날개 되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 하나님은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와 지하 음부의 세계를 통틀어 주관하시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 인생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자들의 기도를 어찌 듣지 않겠으며, 어찌 당신의 방법으로 응답해 주지 않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주님께 우리의 속사정을 아뢰며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때 영적인 풍요로움을 체험케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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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우리 모두도 다윗과 같이 ‘아타프’, 인생의 약함의 때를 지나게 됩니다. 주님, 그때에 우리 자아를 강화하거나 그 상황을 도피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대신 우리의 인생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측량할 수 없는 영적 풍성함을 경험케 하듯이, 이 땅에서 저희도 영적인 풍성함을 체험케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전날의 한 숨과 괴로움이 변하여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진정 딴 근심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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