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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표제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고 돼 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자신을 책망했을 때, 그때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며 쓴 시임을 알 수 있죠.
사실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오기 전까지, 와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기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처럼 행동을 했죠. 언제 나단 선지자가 와서 책망을 했습니까? 그 죄를 범한 지 1주일이 지난 때였습니까?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가 최전방에 나가 적의 칼에 죽고 난 뒤였습니까? 그도 아니면 남편이 죽은 걸 알로 밧세바를 데려와 자기 아내로 삼은 뒤였습니까? 남편 우리아가 죽고 난 뒤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은 뒤요, 밧세바가 아들을 낳은 그 직후였죠. 왜 그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놔두신 것입니까? 나단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기 전까지, 다윗 스스로 자기 죄를 뉘우치고 통회자복하길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던 것이죠. 어찌 성령님께서 그에게 그런 마음의 감동을 주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 성령님의 질책과 책망을 아무렇지 않게 내 팽개치며 살았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나단 선지자를 그때 보내서 책망케 하셨고, 그 아들조차 태어나자마자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죠.
과연 그때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다윗에게 무슨 이야기로 자기 죄악을 들여다보게 했습니까? 사무엘하 12장에 그런 내용이 나왔었죠. 왕이시여,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 집에 많은 양과 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그 옆집에는 가난한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가난한 사람 집에는 암양 새끼 단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그 어린양을 얼마나 아꼈던지, 그 새끼 양에게 자식에게 먹이는 것과 똑같은 것을 먹이며, 함께 껴안고 자며, 딸처럼 여겼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그 부잣집에 손님이 한 분 찾아왔는데, 그 부자는 자기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자신의 양과 소는 손도 안 대고, 옆집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그것을 죽여서 손님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저런 처 죽일 놈을 봤나? 대체 그 놈이 어디 산다더냐?’하고 말했죠. 그때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분명하게 말하죠. “You are the man(당신이 그 사람입니다).”(삼하12:7)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지었던 죄가 본인이 부자를 향해 말한 것처럼, 죽을 만큼 심각한 죄를 지었다는 지적을 한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놀라게 되는 게 무엇입니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본인은 아무런 양심에 거리낌이나 찔림을 받고 있지 않았나는 점입니다. 사람의 이기심이 이렇게 극에 달하면, 자기가 범하고 있는 죄에 대해 애통해하는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건 그것이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 대해 정죄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오늘의 나 자신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분명히 자백해야 할 잘못이 있는데도 어떤 경로를 통해 나의 잘못이 드러나면, 오히려 방어적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더 분노하는 모습 말이죠. 비판받아야 할 사람이 나인데도, 오히려 다른 사람의 잘못 앞에 그 허물에 분노하며 비난하는 내 모습 말이죠.
그런데 그토록 이기적인 다윗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크게 뉘우치며 회개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51편은 그런 다윗의 간절한 참회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시편 51편과 더불어, 시편 32편, 시편 38편, 시편 102편, 시편 130편, 그리고 시편 143편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사순절 때 읽은 시편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려주일이 다가오기 전 재의 수요일부터 40일 동안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악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시편이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 1-2절을 통해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사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속성을 바라보며, 죄 사함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죠. 그 분만이 인생을 비롯한 우주 만물의 주인되심을 온전히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온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지은 자기 죄가 어떠한 죄인지를 밝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소유물을 자기 마음대로 약탈하고 탈취하고 또 자기 마음대로 죽이고 짓밟아버린 죄악 중의 죄악을 범한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세 가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있죠. 1절 하반 절에서 2절까지 사용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페샤’, ‘아온’, ‘하타트’입니다. ‘페샤’는 하나님 뜻에 반역하여 행동하는 걸 말하고, ‘아온’은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행동을, 그리고 ‘하타트’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곳으로 가는 행동을 말합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이 짓은 죄가 세상 모든 죄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죄인 중의 괴수임을 자처하며 고백하는 모습이죠.
그리고 3절 이하의 고백은 자신이 죄의 영향력 아래 태어났음을, 지금도 그 영향력 아래에 살고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과 더불어 시편69:8절, 시편27:10절을 통해서 다윗이 실질적으로 배다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다윗 위로 7명의 형들이 있었는데, 그 형들은 다 이새의 본처 자식들인데, 유독 다윗만큼은 후처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치기로 내몰렸던 거죠. 물론 양치기하면서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양들을 지켜냈던 실력을 키웠죠. 훗날 골리앗 앞에 섰을 때도 당당했고,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골리앗을 쓰러트릴 때 사용한 물맷돌의 실력도 그때 배양시킨 것이었죠.
중요한 것은 그런 천출 출신의 운명 속에서 태어난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아주셨는데도, 지금 배은망덕한 죄악을 범한, 그 부분까지 다윗이 통회 자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게 하나 있지 않겠습니까? 다윗처럼 우리들도 실은 세상 속에서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망하지 않는 이유가 과연 우리 때문인가, 하는 점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오로지 주님의 은혜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값진 은혜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다는 것이죠. 죄를 짓는 순간에, 죄를 짓고 난 후에라도, 내가 망하지 않는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텐데 말입니다.
다윗은 7절부터 자기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정결케 해 달라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달라고, 그래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부터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면, 범죄한 자들에게 주님의 도를 가르칠 것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파하는 삶을 살겠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한 심령의 예배, 곧 겸손하고 정직한 자의 예배를 드리겠다고 고백을 하죠. 그래서 17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나의 모습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이라도 죄의 유혹 앞에 설 때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껏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도록 하십시다. 아울러 생각지 못한 죄악이 떠오르거든,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회개하며, 이제는 그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서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의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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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 역시 항상 죄가 내 앞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죄를 반복하며 짓고 살아가면서도 망가지지 않는 것은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를 생각한다면 끊임없이 밀려드는 죄의 유옥들을 이겨내야 할 텐데, 저희들 연약합니다. 주님의 더 크신 은혜로 모든 죄악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부지중에 지은 죄들이 있다면 온전히 회개하며 하나님만 붙들고 사는 인생으로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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