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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똑똑이’라는 말이 있죠. 지식이 많거나 말을 아주 잘하면서도 어쩔 때 상식에 못 미치는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지혜롭지 못하게 처신하는 이를 가리켜 하는 말이죠. 똑똑한 것 같은데 정말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실 나 자신부터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헛똑똑이 짓을 할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로버트 스텐버그(Robert Stenberg)를 비롯해 10명이 쓴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라는 책도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38세 된 정 모씨가 1998년 10월에 한 후배와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후배를 흉기로 살해하고 도주해 버렸습니다. 그는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피생활을 하다가 동생의 여권을 이용해 해외로 출국을 했죠. 중국과 브라질을 떠돌면서 살인의 공소시효 7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7년이 지나면 살인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법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7년 6개월이 되었을 때 귀국했고, 종로경찰서를 찾아가, 당당하게 자수를 했습니다. 이른바 “살인의 추억”을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는 살인의 추억을 털기는커녕 오히려 쇠고랑을 차고 수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해외도피 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당당하게 경찰서를 찾았지만 그는 헛똑똑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모르면서 잡다한 것들을 많이 아는 사람을 우리는 헛똑똑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죠. 보편적으로 헛똑똑이들은 음식을 먹어야 육신의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심령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모르는 사람을 실은 헛똑똑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잘 알면서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말입니다.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는 세상살이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49편에서도 헛똑똑이같은 사람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자신이 가장 똑똑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가장 멍청한 사람들의 모습을 말입니다. 자신은 가장 잘 낫다고 어떤 상황에서도 걱정 없다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 재물만 있으면 만사오케이라고 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어리석은 헛똑똑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지혜자는 외칩니다. 세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 만민들은 강한 자의 자손이든, 약한 자의 자손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다 나와서 지혜자의 말을 들으라고 말입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결코 헛똑똑이같은 인생을 살지 말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헛똑똑이 같은 사람들을 일깨워줍니까? 본문 6절과 11절, 그리고 16-17절을 보면, 재물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헛똑똑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6절에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 11절에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그리고 16-17절에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자기 재산과 집과 전토만 있으면 모든 것이 만사오케이라고 생각하는 헛똑똑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도 그렇습니다. ‘황금만능의 시대’, 황금을 신으로 섬기는 맘몬니즘(mammonism)의 시대인 게 분명하죠. 신문 사회면에는 매일 같이 돈에 관련된 부정부패와 온갖 비리에 관한 기사로 매워지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부(富)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기며 사는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지혜자는 사람이 재물을 의지하고 그 풍부함의 자만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자임을 일깨워줍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 많은 재물과 소유물로 사치와 영화를 누린다 해도, 한 때 한 순간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어떤 재물과 물질 속에서도 오히려 겸손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 그렇게 권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살라고 말이죠. 재물은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되며, 재물이 풍부해졌다고 자만(自慢)하거나 스스로 안위함 속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 오히려 그 재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게 진정한 정함이 있는 재물이요, 곧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일임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사는 자가 헛똑똑이가 아니라 진정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자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믿고 행동하면 그가 곧 헛똑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9-10절을 보면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세상 사람들 중에 자신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그가 가려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이치”라고 했는데,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온갖 악행과 거짓을 자행하며, 아귀다툼을 벌이며, 이웃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가장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떠나가야 하는 나그네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왜 사람들이 헛똑똑이로 산다고 합니까? 자신의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게 똑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그 재물로는 사람의 생명을 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 우리를 생명의 위기에서 건질 수 있고, 잠시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유익한 환경을 만들어 줄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본문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인간은 죽음뿐만 아니라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永遠)을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靈魂)은 영원세계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 ‘스올의 권세’란 음부의 권세, 또는 죽음의 세력을 말합니다. 이는 영원한 멸망의 세력으로 지옥을 말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육체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구하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너무나 인색하고 관심도 없는 실정이죠. 아무리 세상에서 잘 살았다 할지라도, 영혼이 구속받지 못한다면, 그는 우주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결론으로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죠.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하고 말이죠.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 시편 49편이 제2권에 나오는 ‘고라자손의 마지막 시’라는 것입니다. 총 7편이 등장하는데, 이 시가 마지막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고라 자손들이 이 시를 마지막으로 고백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들의 선조인 고라의 반역 곧 물질과 권력을 탐하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 사건을 후대의 사람들이 분명히 기억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 때문이죠. 바꿔 말해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이 세상에서 물질과 권력만을 탐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심판받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선조인 고라가 그런 삶을 산 것은 짐승보다 못한 삶으로서, 너희 후손들아, 그리고 오늘의 신앙인들아, 너희들은 결코 그런 헛똑똑이로 살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에서죠.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도 그들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고, 이 세상에서 한 눈으로는 이 세상을 살피며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전하게 살면서, 또 다른 눈으로 저 영원한 세상을 내다보며 살 수 있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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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유함과 권력만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은 모두 어리석으며, 멸망하는 짐승과 같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모인 저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헛된 인생이 아닌 영생의 복을 누리며 사는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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