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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시47:1-9)

by 똑똑이채널 202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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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430일에 네덜란드의 빌럼 알렉산더르 왕세자가 자신의 나라 국왕으로 즉위한 바 있습니다. 그 즉위식에는 세계 18개 나라의 왕족들과, 세계 여러 나라의 축하사절들이 초대되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100만 명의 축하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알렉산더르 국왕이 온 힘을 다해 국토를 지키고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며,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복지를 유지하고 후원할 것을 맹세한 후, 국민들 앞에 섰을 때, 온 국민들이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새로 즉위한 왕을 연호하며 환호했습니다. 그런 즉위식의 모습은 비단 그 날의 네덜란드만의 풍경은 아닐 것입니다. 왕이 되었든 대통령이나 수상이 되었든,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국민들의 지지와 환호 속에서 즉위할 때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또 어느 나라나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47편은 마치 왕의 즉위식을 연상케 하는 시입니다. 본문 5-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이 모습은 단순히 세상의 왕, 이스라엘의 다윗 왕을 연상케 하는 싯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곧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통해 성전의 중심인 그의 보좌에 올라가 좌정하실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노래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성들은 손뼉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외치며,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죠. 그들의 환호와 찬송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은 우리 왕이시며, 우리는 당신의 백성입니다.’하는 언약의 재확인이자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폭력 군주도 아니고,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이기적인 왕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만 왕의 왕으로 모시고 찬양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3-4절에 그렇게 밝혀줍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이 구절은 출애굽과 가나안 땅의 입성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며 억압과 가난 속에서 희망 없이 살던 그들을 선택해 주시고,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구원의 드라마를 연출해 주셨고, 40년이 지나 끝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죠. 이 사실은 시편의 백성들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결단코 잊을 수 없는 그들의 존립기반이죠. 자기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기준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원한 찬양의 주제이자,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원토록 고백해야 할 찬양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왕이시며, 우리들은 그의 사랑받는 백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전적으로 선택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대속해 주시고, 죽음을 깨트리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 그 구원의 드라마를 잊지 않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수호신이나, 부귀영화의 신통력을 지닌 분으로 믿는 게 아니라, 나의 생명의 주님으로 믿는 것 말입니다.

그런 믿음 속에 거하는 자는 자신의 상황에 눌리고, 감정에 지배를 받는 일이 생긴다 해도, 결코 하나님을 찬양할 힘이나 이유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만약 자기 상황이 힘들고 감정의 지배를 받는 일이 생겨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주일날 낮에 말씀드린 신통력 때문에, 표적이나 기적 때문에 주님을 믿는 것이지, 결코 생명의 주관자로서 주님을 믿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왕으로 섬기는 이유는 표적이나 기적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백성임을 기뻐하며 찬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8-9절입니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비전이기도 합니다.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비전과 목적은 세상 모든 군왕들, 민족들, 나라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아브라함을 찾았고 선택했으며, 그와 언약을 맺으신 것이었죠.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찾았고 선택했으며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온 세계를 향한 축복의 통로이자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자,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부활케 하셔서 당신을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족속들을 통해 그 일을 대신하게 하셨죠. 돌감람나무와 같은 우리들조차 그 분에게 접붙임을 받게 하셔서, 그 원대한 계획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시는 것 말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194개국의 국가가 존재한다고 하죠. 모든 통치자들과 그 모든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려는 그 원대한 비전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비전에 대한 소망을 의심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 됨을 여전히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나라와 민족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죠.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드는 척하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재물을 숭배하는 위선적인 나라와 민족과 백성들도 많죠. 더욱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칭송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나라와 민족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맘몬과 군사력과 또 다른 우상숭배를 앉혀 놓고 사는 민족들도 허다하죠.

그런 현실들이 우리로 하여금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위기와 의심은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실은 내부에도 찾아오죠. 믿는 자들에게도 찾아오는 재난도 그렇고, 자아와 돈을 숭배하도록 부추기는 욕망들도 그렇죠. 그런가 하면 거짓 선지자들과 미혹케 하는 이단 사이비들의 가르침들도 무섭게 침투해 들어오죠. 더욱이 믿는 자들의 삶이 영광보다는 조롱과 멸시 가운데 놓여있는 경우도 그렇죠.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런 부분들 때문에 우리의 신앙심을 내 팽개친다면, 그런 위협이나 그런 멸시 때문에 우리의 신앙심을 놓친다면, 결코 참된 믿음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조롱하는 그 어떤 세력들이 있다 해도,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기는 이유는 그 분만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만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재물삼아 나의 죄를 대신 짊어주셨고, 그 분이 죄와 사망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신 분임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편 47편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승천일을 기념할 때마다 부른 노래였다고 하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부활하신 그 분의 부활 승천일을 기념하는 노래로 말입니다. 얼마나 의미심장한 시편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쩌면 보잘것없는 삶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명으로, 소박한 모습으로, 이름을 드러낼 만한 것도 없이 말이죠. 우리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다 해도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 줄 만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를 선택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걸 말입니다. 그 왕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살펴주시고, 모든 민족이 당신의 백성이 될 때까지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삼아주고 계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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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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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지금 이곳에,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여 주시고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주님 뜻이 아니면 멈춰 서게 하옵소서. 오직 왕이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노래요, 우리의 찬송이 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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