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방송 사상 최장수 기록을 세운 '장학퀴즈'를 17년2개월 동안 진행하며 70-80년대를 풍미했던 문화 아이콘으로 우뚝 선 아나운서가 있죠.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중계부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실황 그리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눈이 집중된 TV 브라운관 안에서 완벽한 표준말과 중저음의 맑은 음색 그리고 빈틈없는 몸가짐으로 대중의 신뢰를 한 몸에 얻었던 방송인이죠. 바로 차인태 씨가 그입니다. 정치권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으면서도 꿈쩍하지 않아 벽창우(碧昌牛)'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고집 세고 충직한 그였는데, 65세의 나이인 2009년에 “B세포 미만성 림프종양”이라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도 “쉽게 나을 병이 아니니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라는 말을 했다고 하죠. 그때,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지만 왜, 지금의 나여야 하는가, 더욱이 구순(九旬)의 노부모를 떠올리면 심장이 비틀어지는 것 같은 괴로움이 밀려들었다고 하죠. 그 뒤로 항암치료를 9차례나 걸치면서 밤마다 울어야만 했고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서 중환자실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고 하죠. 딸들이 병원에 왔을 때는 연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 실감하게 되었고,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은 병원에 가는데, 그러면서 삶이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하죠. 아침 식사 때마다 “맨손으로 삼팔선을 넘어온 월남 피난민으로...”하고 시작하는 어머니의 기도로 자신이 이 자리까지 왔다면서 고백을 하고,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 신앙적으로 보면 내게 또 다른 소명이 있어서 이런 연단을 주시지 않았나 싶다. 내려놓음, 나눔, 섬김..., 그런 단어들을 많이 생각한다.”고 하죠.
오늘 본문의 시를 써 내려간 다윗도 엄청난 질병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몸이 성한 곳이 없다”(4, 7절), “내 뼈에 평안이 없다“(4절),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난다”(5절), “심장이 뛰고 기운이 없어졌다”(10절), “내 눈도 흐려졌다”(10절), “내가 넘어지게 되었다”(17절)고 호소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지치고 희망까지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중병으로 인한 고통도 괴로운 일인데, 가까이해야 할 친구, 친척들까지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 멀리 외면하는 모습들입니다. 소외감의 고통까지 겪는 다윗의 모습이라 할 수 있죠. 거기다가 믿었던 이웃이 원수가 되어, 온갖 중상모략으로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라, 가히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까지도 자기를 버리고 멀리하지 않는가, 하는 불안감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다윗처럼 삼중고의 괴로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삼중고(三重苦)란 ‘한꺼번에 겹쳐 치르는 세 가지 고통’을 말하죠. 원래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고통의 상황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는 시편 38편의 다윗이 그런 삼중고의 상황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먼저, 그가 겪고 있는 첫 번째 고통은 본문 3-8절에 나와 있습니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첫 번째 고통은 ‘육체적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살과 뼈가 성한 곳이 하나도 없고 상처가 곪아터져 악취가 나는’ 아주 심한 중병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기력은 다 빠진 상태이며 눈조차 빛을 잃어가는, 어쩌면 생명의 기운이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른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에게 임한 두 번째 고통이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죽을 것 같은 육체의 통증도 버거운데 그를 절망하게 하는 또 다른 고통의 상황은 병으로 인해 자신을 멀리하는, 가족·친구·친지들과의 분리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어야 할 그들이 오히려 자신을 이방인처럼 취급하며 멀리하는 상황 속에서, 오늘 시편의 기자는 어쩌면 더 큰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잔존하는 또 다른 고통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고통입니다. 이전까지의 고통이 자신의 육체와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로부터 파생되는 ‘내부로부터의 고통’이었다면 이 경우는 달랐습니다. 본문 12절과 19절의 말씀입니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대적들로부터 오는 ‘외부로부터의 고통’이었습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도 견뎌내기 힘든데, 그로 인해 가족 및 지인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정신적 고통도 참아내기 힘든데, 자신을 해치려하는 무리들이 점점 많아지고 불어나는 상황까지 맞닥뜨드리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늘 시편의 기자는 내우외환(內憂外患), 설상가상(雪上加霜), 첩첩산중(疊疊山中)의 삼중고(三重苦)를 치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오늘 시편 기자가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들은 단지 ‘그 시대’, ‘그’에게만 일어나는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아니 일어나고 있는 동일한 상황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시편 38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신앙 교훈들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는 시편 38편의 표제어는 ‘다윗의 기념하는 시’ 곧 ‘다윗에 의해 기록된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시가 시편 6편, 시편 32편, 시편 51편과 더불어 다윗의 밧세바 간음 사건과 관련된 ‘참회의 시’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실로부터 우리는 오늘 다윗이 겪고 있는 육체적 고통은 곧 그의 죄로 인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58-60절에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온갖 질병을 달라붙게 하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정의를 무시한 채 순간적인 몸의 쾌락을 좇은 결과, 다윗이 심한 질병을 앓게 된 것이죠. 수반되는 육체적 고통도 하나님의 징계였던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병이 다 죄로 인한 결과물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욥의 경우’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하는 당대의 의인이었지만, 참기 힘든 육체의 질병이 찾아왔죠.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지경을 넓혀주려는 신앙의 연단 과정이었죠. 그런 과정을 통해 귀로 듣기만 하던 하나님에 대해 욥이 직접 눈으로 뵈 온다고 말이죠. 그 과정을 통해 지식적인 앎에 머물러 있던 신앙상태가 더 깊은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었죠.
특별히 오늘 다윗이 그런 삼중고의 고통을 겪었을 때 취한 자세를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내부의 고통’도 큰데, ‘외부로부터의 고통’에 대해 다윗이 어떻게 했는가? 13절의 고백처럼 ‘침묵’했다는 점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적들로부터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침묵치 않고 해결해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고통이 찾아왔을 때, 먼저 자기 죄악을 헤아려보는 ‘성찰의 거울’로 삼고 더 나아가 신앙적인 믿음의 길로 바르게 세워주시려는 은총의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75
*사랑하시는 주님. 저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저희의 죄로 인한 결과물일 수도 있고 신앙연단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가족·친구·친지들이 저희를 멀리 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괜찮습니다. 저희 삶을 성찰하며 영혼이 정화될 수만 있다면 주님께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만 있다면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됨을 믿음으로 고백하오니 오늘이 구원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날’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시40:1-17) (0) | 2022.04.22 |
---|---|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시39:1-13) (0) | 2022.04.21 |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1-40) (0) | 2022.04.19 |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시37:1-20) (0) | 2022.04.18 |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시36:1-12) (0) | 2022.04.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