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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우리 귓가에 수없이 들려지던, 목포가 배출한 가수들이 꽤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도 남진 씨는 유명하죠. 자유시장에도 남진 야시장이 펼쳐질 정도니 말이죠. 그를 생각하면 곧잘 떠오르는 노래가 있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년 살고 싶네” 그 가사처럼 인간은 그림 같은 환경에서 한 백년을 살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제(秦始皇帝)는 만리장성을 쌓고 권력을 강화한 후에 오래 살고 싶은 욕망에 신하들에게 ‘불로장생초’(不老長生草)를 구해 오도록 했죠. 그는 의원들이 구해 준 불로초를 다려 먹고 심지어 궁궐 안에 불로초 연못까지 만들어 놓고 장수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의 나이 50살에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제파악(主題把握)을 할 줄 알아야 하죠. 인간은 자신이 영원한 신(神)이 아니라 유한한 인간(人間)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리 보약을 먹고 열심히 운동을 한다 해도 인간은 잠시 세상에 살다가 떠나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 다윗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연약함과 인간들이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연한(年限)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4절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하고 고백합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깨달은 진리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나의 생명, 인간의 생명은 ‘손 한 뼘 길이 같은 인생’이고, ‘나그네 같은 인생’이고, ‘그림자 같은 인생’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요 한계입니다. 인간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만치 않고, 허송세월하지 않고, 비록 짧은 인생이지만 가치 있는 것 의미 있는 생을 건져 올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본문 5절에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하고 말입니다. 다윗이 살아가던 시대는 인간들의 난폭한 행동들과 폭력적 언어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살려는 시인은 될 수 있으면 말하지 않으려고 입에 재갈을 물렸고, 선한 말까지 참으려 했지만, 근심만 쌓여만 갈 뿐이었죠. 결국 인간들의 행동들에 대한 울분, 쌓인 원한, 참았던 감정으로 인하여 가슴에는 불이 붙었고, 작은 소리로 울분을 토로하자,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 그렇게 울부짖습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자신의 날들의 종말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은 인간들의 행동을 꼴 보기 싫으니 빨리 죽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죠. 또한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 달라고 한탄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와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5절에 “주께서 내 날을 손 한 뼘 길이만큼 주셨습니다. 나의 일생은 주님 앞에서 없는 것 같습니다.”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손 한 뼘’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짧고 짧은 인생, 잠시 있다 돌이키면 금방 지나가고 없어질 세월들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시편 90편 4절에서는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라고 읊조렸고, 시편 90편 9절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평생이 순식간에 다’ 지나간 인생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만큼 인생들이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인간을 괴롭히며 자신의 아방궁(阿房宮)을 쌓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지나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헛된 것임을 깨달아 알라고, 5절 하반절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다”하는 것 말입니다. 진시황제처럼 적군을 막을 만리장성도 쌓고, 언덕 위에 아무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견고한 아방궁(阿房宮)을 쌓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준비했다 할지라도 그 모두 헛되다는 것입니다. 손 한 뼘 길이만큼 밖에 살지 못할 인간이 왜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헛된 일에 열을 올리는지 모를 뿐이죠.
그런 인생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다”(사40:15)고 했습니다. ‘톡’ 치면 사라져버릴 물 한 방울, ‘훅’ 불면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는 작은 티끌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인생들이 온갖 악행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서 탄식한 것이죠. 이와 같은 인생의 한계,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인생, 바람처럼, 티끌처럼, 사라져버릴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자기 주제를 알고 어리석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더더욱 깨닫게 되죠.
다윗은 그래서 6-7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헛된 일로 소란을 피우고, 헛된 재물을 쌓는데,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헛된 재물을 쌓아 올리기에 바빠하지 말고, 그 소망을 주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올바른 청지기적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재물을 쌓기보다 하늘나라의 창고에 재물을 쌓고, 이 땅에 것은 규모 있게 살아가면 족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자기 한계를 깨닫는 인생의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이죠.
두 번째로 8-11절입니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죄악으로 인해 욕을 당치 않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주님의 손으로 내리침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간구죠. 어쩌면 지금 39편의 시도, 다윗이 큰 죄를 범해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드리는 참회의 기도이지 않나 싶기도 하죠. 다윗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당한 어려움과 고통이 그 자신의 죄악을 생각나게 했다는 사실이죠. 그로 인해 지금 하나님께 채찍을 맞고 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만큼 이 땅에 사는 인생들을 향해 나처럼, 죄를 범해 하나님께 채찍을 맞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을 위한 통로요 도구됨의 삶을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어찌 죄와 짝하여 살 수 있겠느냐는, 우회적인 진술이기도 하죠.
세 번째로 12-13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그렇게 죄의 징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되고, 그때 하나님께 호소하며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때의 건강이란 육체적인 건강회복도 되겠지만, 영혼의 강건함도 포함된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나그네, 곧 거류민, 하늘 나라 본향을 향한 나그네로서, 그 길을 가기까지 자기 영혼이 강건하지 않으면 이 땅에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 하루 우리 자신들도 다윗이 고백처럼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 주님과 더불어 사는 강건한 나그네로 이 땅에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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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우리의 생명은 순식간에 날아가는 안개와 흙먼지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날이 한 뼘 길이만큼도 못 될 때가 있습니다. 이 귀중한 시간들 속에서 저희들 헛된 재물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게 하시고, 죄와 짝하여 살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늘나라를 향한 나그네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매일매일 생명과 진리를 건져 올리는 영원한 삶에 접속돼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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