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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주간에 맞이한 행적을 좇아 그 분이 원하시는 발자취를 따르고자 새벽묵상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이 종려주일로서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읍에 왕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보내셨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km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데, 그곳은 무화과나무가 엄청나게 많은 여리고 성읍과 인접한 곳입니다. 자연스레 베다니 그 마을 주변에도 무화과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죠.
월요일 아침 예수님은 그곳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그 베다니에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걸 보시고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가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장사치들과 성전의 환전상들의 좌판을 엎으시면서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날 늦은 시간에 성전을 떠난 예수님은 다시금 베다니로 가셔서 주무셨습니다.
화요일 아침 예수님은 베다니를 떠나서 다시금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셨는데, 월요일날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그대로 말라버린 것을 제자들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보시고서 제자들의 믿음을 바르게 일깨워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그 성전의 관계자들 이른바 성전을 둘러싼 권력자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올무에 빠트리기 위해 논쟁을 벌였는데, 마가복음 11장 중반부터 13장에 이르는 말씀이 그것이고, 그것은 어제 살펴 본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무슨 권위로 성전을 정화한 것인지 논쟁을 벌이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에 관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고, 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논쟁코자 했을 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했고, 그들이 형수취수제의 율법에 따라 일곱째 동생이 큰 형의 형수를 취했을 때 그 아내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 논쟁코자 했을 때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안가고 오직 하늘의 천사들과 같이 홀로 살게 된다고 말해 주었고, 또 어떤 계명이 큰지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죠. 그 논쟁을 끝으로 다시금 베다니로 가시는데 그 중간에 올리브 산 곧 감람산에 올라가셔서 쉼을 얻으며 제자들에게 말세에 대한 이야기와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어제까지 살펴 본 예수님의 행적이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실은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곳 베다니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저녁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그때 한 여자가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순전한 향유 옥합을 예수님께 부어드린 일이었죠. 300데나리온이란 1년 동안에 해당하는 임금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예수님을 향해 자신의 가장 고귀한 것을 쏟아 부어드렸는데, 예수님은 그녀의 행위를 자기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일도 있었지만, 그날 밤, 또 다른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유다가 남몰래 산헤드린 의원들을 만나 예수님을 팔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예수님이셨지만 아무런 말도, 아무런 소동도 일으키지 않고 그 날 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수요일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수요일 날에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복음서 기자들은 이 날에 대해 모두들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추측은 할 수 있겠죠. 가롯 유다와 산헤드린 의원들이 예수를 체포하려고 남모르게 계속 준비하듯이,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마지막 만찬을 내다보고 있지 않았겠냐는 것이죠. 그렇더라도 이날에 예수님께서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는 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보통 이 날을 ‘침묵의 날’로 여깁니다. 더욱이 성경학자들은 이 날 베다니 나사로의 집, 곧 마리아와 마르다 남동생 나사로, 즉 베다니의 삼남매가 살고 있는 그 집에 계시면서 하루를 보내셨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시 황지에 ‘예수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원은 영국 성공회 소속의 토레이 신부가 세운 수도원 공동체죠. 그야말로 기도와 말씀묵상과 섬김을 통해 믿음의 삶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수양관의 하루 일정표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죠. 이른바 ‘침묵의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입니다. 이 침묵의 시간에는 절대로 아무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시간입니다. 오직 말은 절제한 채 말씀 묵상에 매달리는 시간입니다. 그만큼 사람의 소리는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으로 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하루를 살면서 온갖 말을 듣고, 또 온갖 말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워낙 말을 많이 해서 입이 아플 정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주간의 수요일인 오늘만큼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말들을 쉬는 것은 어떠할까요? 사람들로부터 오는 말도 듣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에만 집중하는 시간으로 삼는 날 말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추격해 오는 바로의 군대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합니까? 그때 모세는 그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 대답하고 맞서는 말을 하기보다, 오직 하나의 음성을 듣고자 애를 썼습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EXODUS〉에서도 그 장면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 앞에 다다른 모세가 도저히 방법이 없자, 모래 바닥에 앉아 하나님을 향해 끙끙거리는 모습 말입니다. 그렇게 한 참을 침묵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데, 하나님께서 드디어 당신의 때에 그 홍해를 갈라주시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모세가 백성들을 향해 똑같은 방법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맞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야말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에는 역부족이지 않았을까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평하고 공박하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도를 따라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2-3절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얼마나 많은 말로 사람을 상처주고, 인격을 해롭게 할 수 있는지 잘 아는 까닭에,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살아가는 게 너 낫다는 뜻입니다.
그렇죠. 예수님께서 이 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당신 자신이 가장 믿고 신뢰했던, 그래서 돈을 관리하도록 했던 가롯 유다가 산헤드린 의원들과 함께 당신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일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똑같은 방법을 사용치 않으시고,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되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날 가롯 유다와 맞서거나 산헤드린 의원들과 맞섰다면,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오간데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실천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말을 절제하는 것 말입니다. 정말로 필요한 말만 하는 것 말입니다.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는 것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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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님. 고난주간의 수요일 날을 맞았습니다. 실은 어제 저녁에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가장 귀한 향유 옥함을 깨트린 여인도 있었지만, 그날 밤 가장 신뢰하고 믿었던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산헤드린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다 아신 예수님이셨지만, 오늘 침묵하면서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내 말을 절제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하루로 삼기 원합니다. 정말로 필요한 말만 하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말,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만 할 수 있는 오늘 하루로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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