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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사이트/고난주간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마21:12-22)_고난주간 첫째날 월요일

by 똑똑이채널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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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고난주간 한 주 동안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어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이른바 오늘부터 고난주간의 첫 날이 되는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월요일 날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청결케 하셨고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속에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이 내용은 공생애 사역초기에도 했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칫집에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들어주는 표적을 베푸신 이후에 유월절에 맞춰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내 좇으셨습니다. 또 환전상들의 좌판도 다 엎으시면서 성전을 청결하게 한 사건을 보여주셨죠. 물론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한 일은 건물로서의 성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머잖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째 다시 살아나실 부활체로서의 당신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때에 성전을 정화한 사건과 오늘 본문의 시점은 3년이라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는 사건입니다. 그때는 공생애 첫 사역의 시작점이고, 오늘 본문의 성전정화사건은 공생애 마지막 사역의 끝 지점입니다. 바꿔 말해 성전 정화는 한 때 한 순간의 상황에서만 정화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우리의 몸,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우리의 몸을 정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본문의 성전정화사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욕심을 못 이겨 타락하게 되는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정화시켜 나가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것도 곧 초심을 잃어버린 요인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실을 강조하시고자, 공생애 초기 사역 때에도, 또 공생애 마무리 사역 때에도 성전을 정화하셨던 것이고,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의문을 제기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하필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이 있었는지, 왜 하필 성전에 환전상들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그저 자기 집에서 키우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가지고 와서 성전에 재물로 태워드리면 될 일이고, 또 가지 재물을 주님께 가져와 드리면 될 일인데 왜 하필 그런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이 판을 쳤냐고 말입니다.

그것은 먼 거리에 사는 이들이 그 짐승들을 끌고 오려면 번거롭고 또 귀찮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성전에서 파는 장사치들을 통해 짐승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또 타국에서 오는 사람들 위해 성전에서 통용하는 화폐로 환전해서 사용토록 했던 것이죠. 문제는 그것을 통해 많은 이문을 남기면서 그 이문의 일부를 성전의 제사장들과 정치 권력자들의 부패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정화시키길 원하셨던 게 바로 그들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패한 마음, 곧 탐욕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교회는 2천 년 전 본문의 상황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부패한 고리들로 연결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에 언론기사에 등장한 연예인 클라라의 광고주인 일광그룹의 대표 이규태 회장이 그 비자금을 우리교단의 본교회 교회통장에 넣었다는 게 기정사실화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교단의 해외선교위원회에서는 몇 년 전에 페이퍼컴퍼니처럼 유령의 땅을 사서 매입한 조건으로 6억원의 돈을 지불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게 어디 우리 교단뿐이겠습니까? 전병욱 목사를 교단에서 제명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교단 고위층 관계자들이 손도 못댈 정도입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본문의 등장하는 성전의 브로커들처럼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부정결탁 때문입니다.

이런 부패한 탐욕은 겉으로 드러난 일이고, 또 사회적으로 교단적으로 이슈가 된 일이라 확연하게 눈에 드러나지만, 문제는 오늘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작은 탐욕들은 나 혼자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내 속에 남이 모르는 탐욕이 깃들어 있다면, 본문을 통해 보여주신 주님의 모습처럼, 성전된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주간의 월요일에 행한 첫 번째 사건이라면, 두 번째 사건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베다니 길목을 가시면서 배가 고팠는지 무화과 열매를 찾으셨는데,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 없는 무과화나무를 보고 주님께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실 것이라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해서 말라 죽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요? 무화과 나무는 그냥 나무인 것 뿐인데, 죽이실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 아무리 배가 고프시다고 할지라도 함부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실 분은 아닌데 말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원하신 묵시가 담겨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무화과 나무와 같았습니다. 겉모양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 같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겉모양은 영락없는 무화과 나무이지만, 그 속에 열매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까닭에 그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버린 것처럼,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고통속에 처한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한 그들이 사울 왕과 다윗 왕 이후 솔로몬 시대에 접어들어 이방의 우상들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라가 두 동강이 났고, 그 뒤에도 많은 선지자를 보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끝까지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이 멸망당해 나라를 잃어버렸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만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페르시아에 또 헬라제국에 또 로마제국의 압제를 받으며 2000년 동안 메마르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들이 주님의 은혜로 1948년에 독립하여 지금까지 이스라엘 나라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독립을 이루며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을 등에 업고 가장 호왕을 누리고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모시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그것의 역설적인 묵시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 말라 죽게 된 이스라엘 땅에 다시금 무화과 나무의 잎이 피고 열매가 맺을 때가 있다는 것 말입니다. 바로 그때가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부흥,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물결이 이스라엘 전체에 흘러갈 것이고, 바로 그때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와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그 무화과나무를 단순히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오늘 나의 삶에 지경에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언제라도 내게 오신다면 기쁨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열매 맺는 신앙인, 깨어 있는 신앙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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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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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님. 오늘날의 교회들이 많이 타락해 있습니다. 2천년 전 성전을 정화시킬 때의 그 모습보다 몇 배는 더 타락한 온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 있는 교회의 모습보다 우리 자신의 속마음은 어떠합니까? 우리 속에 혹여라도 욕망이나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면 그 또한 정화시켜 나가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베다니 길을 가시면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그것은 곧 이스라엘 나라의 영적상태를 질타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희들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하시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들도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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