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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 둘째 날 화요일은 ‘변론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어제 월요일에 행하신 것은 ‘성전정화’의 사건과 더불어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었죠. 그 사건을 통해 우리도 매일매일 성전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나아가야 주님을 향한 초심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고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회복과 더불어 내 삶 속에서도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때에만 언제나도 주님이 재림하셔도, 언제라도 우리를 천국에 부르셔도 주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화요일인데, 이때 예수님께서 제일 많이 하신 것은 교권을 쥔 자들과 나눈 변론이었습니다. 왜 하필 성전을 정화시킨 그 다음날인 오늘 많은 변론들을 행하셨겠습니까? 이른바 예수님께서 성전의 교권을 쥔 사람들의 밥그릇을 건드렸기 때문에, 그들이 가만히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과 논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올무에 걸릴만한 질문들을 예수님께 많이 던졌고, 예수님은 그때마다 당신의 관점으로 그들에게 답하고 변론해 주셨습니다.
1. 마가복음 11장 27-28절이 이렇습니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예수님께서 어제 성전을 정화한 사건을 두고,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벌이는지, 성전을 둘러싼 정치권력자들이 예수님께 질문공세를 퍼 붓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그 유명한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변론해 주셨습니다. 그게 막복음 12장 1-1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다 와서 한 종을 보내 그 소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 농부들이 그 종을 때리고 죽였는데, 또 다른 종을 보내자 마찬가지로 똑같이 행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안 되겠다 싶은 주인이 자기 종을 보냈는데, 상속자인 그 아들마저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주인이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죠. 그 농부들을 모두 진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겠냐는 것인데, 바로 그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아들은 곧 예수님이시고, 그 농부들은 성전을 둘러싼 정치권력자들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2. 마가복음 12장 13-14절입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올무에 빠트리려고 질문을 던졌죠. 가이사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게 옳은지 그른지 하고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런 답변으로 그들의 논쟁거리를 잠재우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세상에 두 발을 내 딛고 살기에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도 중요하고, 하늘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책임과 의무도 성실히 감당하라는 뜻의 말씀이었습니다.
3. 마가복음 12장 18-23절입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는데, 첫째가 혼인하여 살다가 죽었는데 둘째가 살다가 죽었고, 셋째도 넷째도 다섯째도 여섯째도 죽고 일곱째가 맏형의 형수를 아내로 삼아 자식을 낳아 살아가는, 구약의 율법을 따라 형수취수제를 지키며 그 씨를 이어가도록 하는 아름다운 제도인데, 그렇다면 부활 때에 그 아내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나이까 하고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25절의 말씀처럼 천국에서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하고 답을 해 주셨습니다.
4. 이제는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논쟁에 불러들였습니다. 마가복음 12장 28절입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예수님과 논쟁하는 자들이 없었다고 마가복음 12장 34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변론에 종지부를 찍으신 주님께서 이제 성전에 나가 가르치시는데, 그때 가난한 한 과부가 두 렙돈, 곧 우리식으로 말하면 500원에 해당하는 고드란트를 넣는 모습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해 주셨죠. 마가복음 12장 43-4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생활비 전부와 다름없는 헌금을 드린 그 과부를 ‘최고’라며 격려해 주신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민망하기 짝이 없는 그 500원짜리 동전을 그녀는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주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드렸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는 그걸 최고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건물로서의 그 성전을 향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막13:2)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제자들과 감람산으로 올라가셨을 때 제자들이 어느 때에 성전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대 환란이 임할지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세와 관한 징조들을 쭉 설명해 주시면서 마지막으로 마가복음 13장 35절을 통해 이렇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른바 세상의 멸망이 언제 일어날지, 예수님이 언제 구름을 타고 재림할지, 그 날과 그 시는 천사들도 아들 곧 성자 하나님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곧 성부 하나님만 아신다고 답하시면서, 그렇기에 그 날과 그 시에 목을 매달지 말고 너희들의 삶의 현장 속에 늘 깨어 있는 자로 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깨어 있으라’는 뜻은 잠을 자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를 이 세상 욕심과 탐욕에 두고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관심사를 두고 살라는 뜻입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질문과 예수님의 변론이 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전을 둘러싼 정치권력자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당신의 답변으로 변론하신 이 날은 그렇기에 가장 긴 하루였을지 모릅니다. 물론 예수님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로 질문세례를 퍼붓던 그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공격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참된 말씀으로 답변해주셨습니다. 더욱이 그 변론이 종말의 때를 설명해 주시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죠.
그렇다면 오늘 이 새벽에 주님께서 맞이하신 변론의 날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누군가 나를 올무에 빠트리고자 질문하고 공세를 퍼부을 때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할 때 똑같이 공격의 자세로 맞설 게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도록,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답변이라야 그 당사자의 영혼을 살리고 내 영혼도 살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하루도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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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님. 오늘 화요일 변론의 날에 예수님께서는 가장 피곤한 하루를 보냈을지 모릅니다. 성전과 관계된 정치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빠트리고자 수많은 질문세례를 퍼부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침착하게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관점으로 답변해 주셨습니다. 그 변론이 종말을 내다보게 하는 것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매일 매일을 종말의 날로 삼는다면 어찌 모든 사람들과의 논쟁 속에 하나님의 의를 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그런 날로 삼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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