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지의 과학란에 “슬픈 인간의 불행은 습관의 문제다”(Sad people are unhappy as matter of habit.)라는 제목으로 최근 정신의학계와 심리학자들의 연구 내용이 소개되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 길슨(Mark Gilson)은 자신의 실험 결과를 그렇게 전했습니다. 상자 안에 슬픈 얼굴을 한 사람의 그림과 웃는 얼굴을 한 사람의 그림을 넣고, 사람들로 하여금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오른쪽과 왼쪽 눈을 대고 상자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슬픈 얼굴이 보인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웃는 얼굴이 보인다”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실 상자 속에는 두 장의 그림이 나란히 있는데 오른쪽 그림은 오른 눈으로, 왼쪽 그림은 왼쪽 눈으로 보게 돼 있다고 하죠. 그래서 오른쪽 눈으로만 보는 사람은 웃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슬픈 얼굴의 그림만 보는 것이고, 왼쪽 눈으로 보는 사람은 슬픈 얼굴은 보이지 않고 웃는 얼굴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길슨 박사는 그것을 ‘인식의 차단’(cognitive blockade)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보는 삶의 태도에 따라 어느 쪽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지를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슬프고 가련하게 보는 사람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슬픈 얼굴의 그림만 들어오게 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며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은 웃는 얼굴의 그림이 눈에 더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태도와 습관이 환경적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현재 자신이 당하고 있는 환경과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 시각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죠. 같은 환경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나쁜 것들만 눈에 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태도와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돼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4편의 표제가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돼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받아 도망 다니다가 가드왕 아기스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자 두려움에 빠진 다윗은 갑자기 미친체하면서 침을 흘리고 어기적거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치광이로 취급받아 그 앞에서 쫓겨나 위기를 모면하여 아둘람 굴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때 부른 찬송과 기도가 오늘 읽은 말씀입니다.
본문 1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하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항상 찬송하고 기뻐할 뿐 아니라 자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보편적인 사람들 같으면 이런 상황에 처하면 낙심하고 절망하기가 쉽죠.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한 환경에 내몰고 미친 짓까지 하게 하십니까?’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존심 상하는 처량한 처지 앞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에게 닥친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환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다윗의 마음과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태도로 보면 모든 것이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긍정적인 자세로 바라보면 주어진 여건 속에서도 더 밝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다윗이 미친 짓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자를 도와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4-7절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여기에서 ‘간구하다’, ‘앙망하다’, ‘부르짖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위태한 생활, 미친 짓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했던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도와주실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다윗이 미친 짓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도 왜 하나님을 찬양을 하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8-10절에 나와 있는 고백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에서 8절에 나온 ‘선하심’이나 10절에 나온 ‘좋은 것’은 모두 히브리어로 ‘토브’(טוב)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천지창조 기사에서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선하심, 당신의 온전하심을 좇아 복되고 아름답게 그 인생을 펼쳐주신다는 뜻입니다. ‘맛보아 알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선하신 은총을 체험하고 친히 목도(目睹)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흑암으로 가득한 세상을 밝음으로 바꾸어 주셨고, 혼돈을 질서정연하게, 공허했던 세상을 좋은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טוב)을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목자로 삼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걱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도 지금 쫓기고, 미친 체 하고, 굶어 죽는 인생의 환경 속에서도 그렇게 고백한 것 아닙니까?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떻게 원기 왕성한 젊은 사자가 궁핍하여 주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젊은 사자가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고 의지하는 자는 결코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은총을 경험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윗이 미친 짓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도 왜 하나님을 찬양을 하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의인의 삶을 인정해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11-22절에 나온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별히 15절에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고 하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사람을 대적하시고, 그 발자취를 땅에서 끊어버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나온 ‘의인’은 히브리어로 ‘짜디킴’(צדיקים)인데,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자 하는 사람, 그것을 주일날 낮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은 신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과 같은 맥락이죠. 신의 성품, 곧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들 말입니다. 그런 자들이 진정한 의인이요,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와 ‘중심에 통회하는 자’는 의인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항상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런 자를 어찌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앞에 펼쳐진 고난과 역경의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태도와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모든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그 속에서 더 기쁘신 뜻을 좇아 살아가고, 그 속에서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으로 삼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사랑하시는 주님. 다윗이 적군에게 잡혀 미친 체를 하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도움이시고 구원자이심을 체험한 까닭입니다. 젊은 사자가 주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여호와를 찾고 의지하는 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새벽묵상DewSermon >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시36:1-12) (0) | 2022.04.17 |
---|---|
내 영혼이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시35:1-28절) (0) | 2022.04.08 |
여호와를 찬송하라(시33:1-22) (0) | 2022.04.06 |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시32:1-11) (0) | 2022.04.05 |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시31:1-24) (0) | 2022.04.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