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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시31:1-24)

by 똑똑이채널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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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뱃보가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뱃보가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뱃보는 그 스스로에게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삶의 환경과 역경 속에서 배양 되는 것이죠.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믿음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믿음을 지닌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그 믿음의 출처 역시 배 보처럼 그 당사자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큰 믿음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31편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시인을 발견케 됩니다. 환경적으로는 주변의 악인들 때문에 온갖 모욕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신체적으로는 질병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친구와 이웃에게 버림을 받아 홀로 외로움에 시달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처절한 환경 속에서도 다윗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의탁하며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해 나의 반석과 산성이라고 고백한 것, 그런 큰 믿음을 지닌 다윗 역시 자기 자신에게서 그 믿음이 비롯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어 닥친 인생의 크고 작은 역경들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맞서 싸워나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요, 곧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있는 믿음도 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는다는 게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작다, 혹은 믿음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마태복음 630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또 마태복음826절에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런가 하면 마태복음 1717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그렇게 믿음이 적다고, 또 믿음이 아예 없다고 제자들에게까지 예수님이 호통을 치고 꾸짖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왜 그들이 큰 믿음을 지니기가 어려운지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이해되고 판단이 가능한 상황에서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상식이라고 말하죠. 믿음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황에서 이해가 되지 않고 한치 앞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믿는 것,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 그것을 믿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해 주시기 위해 때로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순종과 연단의 과정을 거쳐, 큰 믿음의 사람들로 승화시켜 주십니다.

 

시편의 모든 고백들은 사실 믿음의 고백들입니다. 새벽마다 매일 묵상하는 시편이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시로 고백된 시편의 믿음은 한 마디로 믿음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난, 눈물, 아픔, 위기, 상처 등의 어려운 상황도 믿음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로 인해 기쁨, 감격, 승리, 구원, 행복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것들을 믿음의 상황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으니, 그것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삶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고백이 아닐 수 없죠.

물론 그런 믿음의 고백들을 읽고 새길 때마다 느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저런 위대한 고백들은 이 땅에서의 현실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하늘나라에서나 가능한 고백이지 않겠냐는 점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다윗의 시편들을 많이 읽어나가고 있는데, 그 다윗의 시편들은 뜬구름 잡는 고백이 아니라, 그저 사상누각의 고백이 아니라, 그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고통과 역경의 상황들을 통과하면서 쓴 현실의 고백이라는 점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 어렵고 암담한 아둘람 동굴 속에서의 고백, 아들 압살롬에게 피해 다니면서 쓴 고백, 사울의 칼날을 피해 다니면서 쓴 고백들, 그 숱한 고백들은 이상 속에서 쓴 머릿속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실제 고백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31편도 다윗이 평안하고 만족할 때 쓴 시가 아닙니다. 지금 다윗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원수들이 거짓 모함과 간계로 다윗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특별히 본문 11-13절의 고백입니다.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다윗은 무수히 많은 원수들 앞에서 무척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 현실 자체가 무척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자신을 깨진 그릇 같다고 표현하고 있고, 그로 인해 영적인 자존감도 무너진 상태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도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으로, 위급한 상황에 내몰린 모습이죠.

평안한 상황이라면 그저 감사하며 보낼 수 있는 그 상황에서, 다윗은 고통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그처럼 위급하고 암담한 상황을 맞이한 다윗이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매우 고매한 철학적 사고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다윗의 고난을 표현한 부분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 본다면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9-10절에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다윗은 지금 뼈가 녹고 살이 마르는 고통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한 상태입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마치 요셉에 형들의 음모에 의해 물 없는 웅덩이에 던져진 상황과 같은 격입니다. 무엇하나 붙잡을 게 없고,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는 그런 상황에 직면한 모습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요즘의 청년들이 패배주의에 빠져 낙심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죠. 자신보다 세상적인 면에서 앞서 있는 이들을 보면서 좌절감을 느끼고,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 때문에 인생 자체를 포기하며 사는 이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시선을 늘 자신보다 앞선 세상의 누군가를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편재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만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믿음의 사람들의 바라봐야 할 대상,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모든 고난과 역경도 능히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떤 고난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은 그냥 떠지는 법이 없습니다. 나에게 찾아오는 일상의 모든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거듭해야만 그때 비로소 믿음의 눈이 떠지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다윗이 다윗일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믿음의 훈련을 잘 감당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의 훈련을 통해 오늘 읽은 시편 31편을 통해 그 위대한 고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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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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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내게 힘들고 무거운 역경이 찾아오면 혼자만 짊어진 것처럼 가혹하다고 불평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그 모든 것을 내가 지고 가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그런 믿음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며 사는 하루의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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