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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여호와의 소리가(시29:1-11)

by 똑똑이채널 2022.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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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6일 인도네시아 슈마트라 섬에서 발생한 8.9도의 대지진과 그 여파로 일어난 쓰나미로 인해 그 지역 일대를 초토화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통계적으로는 1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 됐는데, 실제로는 약 5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날 아침에 바닷물이 약 2km 가량 빠져나가서 넓은 해변을 만들자, 사람들이 그 광경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해변으로 구경하러 나갔다가 갑자기 참변을 당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같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도 동물들은 이미 안전한 연안으로 대피한 상태였다고 하죠. 더욱이 인도령() 안다만·니코바르 군도(群島)에 흩어져 사는 대()안다만족(Andaman Islanders)과 옹게족(Onge) 114명 전원은 해일이 오기 직전에 높은 지대로 뛰어 올라가 재난을 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의 인류학자들은 그렇게 평가했다고 하죠. “그들은 새의 날갯짓에서 날씨 변화를 감지하고 노젓는 소리로 바다의 깊이를 알아, 지진 해일이 오는 걸 미리 알고서 피했을 가능성이 있다하고 말이죠. 우리도 자연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매일매일 깨어있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자연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우리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이겠죠.

 

오늘 본문의 시편을 통해 다윗이 자연의 모습을 통해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다윗처럼, 또 인도양의 안다만족들처럼 자연 현상들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그것은 어느 한 때에 열린 눈이 아닐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반역자로 몰려 억울하게 도망 다녔지 않습니까? 어느 때는 이 산봉우리에서 저 산봉우리로, 또 다른 때는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또 이 이 광야에서 저 광야로 숱하게 피난처를 찾아 도망 다녔겠죠. 그 속에서 맞이한 천둥과 뇌성을 보면서 과연 다윗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자연 세계를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목소리가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족히 7번은 등장하고 있습니다. 천둥이 치고, 거친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모습을 곧 여호와의 목소리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모든 자연 현상들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로 다윗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그 뇌성벽력이 우르릉 쾅!”하고 소리를 발할 때 백향목이 우지직 꺾이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온 산이 천둥소리에 마치 들송아지처럼 뛰고, 뇌성 소리에 온 광야가 진동하는 모습을 다윗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그 모든 하나 하나의 자연 현상들을 통해 그 모든 세계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던 것이죠. 그만큼 우리 자신들도 자연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눈이 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본문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 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 하시도다.” 여기에서 좌정하다는 히브리어 야사브는 하나님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다”(삼하6:2, 80:1, 99:1)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거처한다(dwell)는 의미보다는 왕으로서 통치하신다(enthrone)는 뜻이 강합니다. 그래서 시편 10319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103:19)하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전 우주을 통치하시되 거친 바다와 파도까지도, 또한 그 백성까지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11절에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 역사 위에 좌정하신 왕이시며 그 통치권을 가지고 역사하시기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며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시기도 하시고 높이시기도.”(삼상2:6-7)하는 분이시죠. 한마디로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물론 당신을 의지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백성에게는 특별히 지키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와 같은 다윗의 시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이 자연 만물에 임재해 있는 하나님의 소리를 민감하게 발견했고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로마서18절에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모든 만물을 통해 당신의 능력과 임재를 분명히 나타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쩌면 우리는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온 만물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너무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와 매 순간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모든 만물을 통해 위로와 격려와 우리 삶 깊숙이 임재하여 우리의 삶을 만지시길 원하시는데, 우리는 스스로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특별한 때, 특별한 장소로 제한시켜 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주님의 임재를 날마다 경험하고 살기 원한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이미 만물에 충만하게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우리가 애써 찾지 않음으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이 시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세상의 그 어떤 신이라도, 신 중의 왕이라 불리는 바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는 몹시 떨며 도망치는 송아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 의지하고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강한 능력과 위엄을 가지신 하나님을 붙들기보다 결국 무너질 또 다른 바알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바알을 통해 안정감을 찾으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 부자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지위도 돈도 많은 젊은이였죠. 어릴 때부터 계명을 지키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고민이 있었는데, 영생에 관한 것이었죠. 그는 예수님께 찾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고 갔다고 말씀하죠.

그 청년에게 안정감은 무엇이었을까요? 물질이었습니다. 그는 물질이라는 바알로부터 안정감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 안정감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는 계명만 의무감으로 지켰지, 그 계명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뜻은 발견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성경의 문자주의에 갇힌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재물로 안정감을 찾으려 했고 그것이 바알이 되었기에, 진정으로 그것을 팔아 나누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청년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는 그 청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조록 다윗이 자연을 통해 위대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였듯이, 주님 지으신 온 우주 만물을 통해 주님을 찾고, 또 찾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고, 그분 앞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도 더욱더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서 자연 현상들을 통해서도, 또 특별계시인 성경말씀들을 통해서도 더 깊이 주님을 만나시고, 그로 인한 선한 청지기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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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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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날마다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가슴으로는 경험하지 못하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때로는 허무하게 무너질 것에 마음을 빼앗긴 채, 그것을 바알로 삼고, 그로 인해 안정감을 누리려 했던 어리석은 모습도 있습니다. 만물에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간절히 찾고 묵상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참된 안전지대가 됨을 잊지 않게 하시고, 일평생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청지기로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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