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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슬픔이 변하여 춤이(시30:1-12)

by 똑똑이채널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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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마라’(mara)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괴롭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로 들어가 보니,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먹을 수 있는 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껏 찾은 물이 있었지만 그 물마저 써서 마실 수 없었죠. 그래서 이름 붙인 것이 ‘마라’였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4절에 이렇게 설명돼 있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그 ‘마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이후에 첫 번째로 원망과 불평을 터드렸던 장소입니다. 그만큼 쓴 물로 인해 고통이 가중됐음을 토로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나뭇가지를 하나 가리키셔서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쓴 물이 변하여 단 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마라’에서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 하나를 소개해 주시죠. 출애굽기 15장 26절의 말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여호와 라파’라는 이름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편, 룻기서 1장 20절을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느니라 ‘희락’이라는 이름을 지닌 나오미가 남편과 함께 기근을 피하고자 유대 땅 베들레헴을 벗어나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10년간 열심히 살았지만, 남편을 잃게 되었고, 이후에 두 아들까지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두 며느리 중에 첫째 며느리인 룻과 함께 자기 고향 땅 베들레헴에 돌아오게 되었죠. 그때 그녀를 본 성읍사람들이 나오미냐”하고 불렀죠.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아니요, 이제 나를 나오미, 희락이라 부르지 말고, 마라 곧 괴로움, 슬픔이라 불러주세요하고 대답을 합니다. 희락 곧 큰 소망을 품고 고향 땅을 박차고 떠났지만, 지금 돌아오는 내 모습은 오히려 괴로움과 쓴 물만 안고 돌아온 상태입니다, 하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주시고, 끝내는 다시금 그녀가 지닌 이름의 뜻 곧 ‘희락’이라는 그 이름의 뜻을 회복시켜 주시죠. 그렇기에 ‘마라’는 단지 ‘괴로움’과 ‘쓴물’을 경험하는 장소만이 아닙니다. 그 ‘마라’는 비로소 인간의 마음과 시선을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기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중심과 시선을 하나님께 두면 바로 그 ‘마라’에서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30편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라’를 경험한 다윗이 그 상태 속에서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하나님께 시선을 두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것 말입니다.

1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하고 미래형으로 고백하는데, 나머지 구절은 과거 시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에 나를 고치셨나이다 또 3절에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이 모든 고백은 과거시제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고쳐주셨는지, 또 스올에서 어떻게 건져 주셨는지를 고백하는 시입니다.

이어 다윗은 4-5절을 통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이 4-5절에 나타난 찬양의 두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아’ 즉 복수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것을 선포하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저녁은 울음으로 시작하나 아침에는 반드시 기쁨으로 마무리 될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게 그것입니다.

이후 다윗은 6-10절을 통해 다시금 과거 시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6절에 “내가 형통할 때에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또 7절에 주의 얼굴을 가라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6-7절에 다윗이 바라던 자신의 부귀와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얼굴이 가리워진 때요, 근심의 때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윗의 중심과 시선을 하나님께 향할 수 있는 때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내가 내 중심과 내 시선을 온통 나에게 두면, 나 중심으로 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이 더 혼란스러울 뿐이고, 더 미궁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때에 내 중심과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기면 뭔가 답이 보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나 자신으로부터 다시 하나님께로 마음과 시선을 옮기고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되고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슬픔이 변하게 되는 것, 죽음을 상징하는 베옷이 벗겨지고, 결국 기쁨의 옷으로 갈아입게 되는 걸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4-5절처럼 저녁은 슬픔일 지라도 아침이 오면 기쁨으로 바뀔 것이란 걸, 다시금 다른 싯구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2절에 다윗은 찬송시를 마무리하며 다시금 시제를 미래형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내 영광으로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다윗은 시편 30편을 통해 성전에 올라가며 내려올 때 맞이할 환희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에서 반복되는 ‘마라’를 안고 성전에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 품게 될 ‘회복과 기쁨’을 미리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져 반신반의 하며 두려움과 걱정하고 있던 모든 이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함께 그곳에 계심으로, 그곳에 물로 된 포도주를 채워주신 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흥겨워할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지만, 그런 마라의 상태였지만, 그곳에 예수님께서 계심으로 인해 포도주가 다시금 가득 차 오르는 풍성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근심과 괴로움이 변하여 슬픔과 희락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맞이한 인생의 마라가 곧 목자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진정한 희락을 맞이하게 됐다는 고백입니다.

그것은 다윗만, 또 가나의 혼인잔치를 맞이한 그 집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마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은 분명 아프고 괴롭고 쓰디쓴 눈물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목이 타들어가는 상태처럼 입술에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기근을 해결하고자 모압 땅까지 이주해 들어갔지만 돌아온 것이라곤 남편과 두 아들마저 죽게 된 그녀의 상태 역시 ‘마라’로 가득찼습니다. 하지만 그 ‘마라’의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던 나오미가 자기 자신을 극진히 모신 며느리 룻을 통해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선물받는 상황, 곧 마라가 변하여 진정한 희락을 맞이하게 되는 그런 은총을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로 인해 나오미는 이스라엘 중에 유명한 여인으로 칭송을 받게 되죠.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마라’의 상황을 맞이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도 어둠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온 것처럼, 인생의 쓴 마라를 맞이했을 때 그 중심과 시선을 하나님께 두었을 때 하나님께 해결해주시는 기쁨과 희락을 맞이한 것처럼, 나오미가 마라의 상태 속에서 그 중심과 시선을 하나님께 두었을 때 마라가 변하여 진정한 나오미가 된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중심과 시선을 하나님께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더 올라운 희락과 기쁨을 맞이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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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인생의 마라를 맞이했을 때 그로 인해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그 상태 속에서 그 중심과 시선을 하나님께 두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아픔이 변하여 치유가 되는 놀라운 희락을 맞이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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