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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시15:1-5)

by 똑똑이채널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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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이 신탁을 듣고 깜짝 놀란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자신이 자랐던 고린도와 반대 방향인 테베로 가죠. 하지만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이고 맙니다. 그 친아버지는 바로 테베의 왕이었던 라이오스였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왕을 잃은 테베 왕실에서는 테베의 골칫거리인 스핑크스를 제거하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여인의 얼굴과 가슴, 사자의 몸통과 독수리의 날개를 하고 있는 스핑크스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풀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였죠. 그래서 테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스핑크스였죠. 오이디푸스가 찾아오던 그 날도 스핑크스는 수수께기를 던졌습니다. “아침에는 네 개의 다리로 걷고,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생물이 무엇인가?”하고 말이죠. 그러자 오이디푸스는 당당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내 놓습니다. ‘인간이라고 말이죠. 그 대답에 수치를 느낀 스핑크스는 스스로 바위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신약성경을 순서대로 정리해 나가면서 고린도전서를 읽어나갈 즈음에 나눴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신화의 내용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의 답이 인간임을 알 수 있죠. 그러나 그 대답은 태어나서, 자라고, 나이 들어 죽는 인간의 외형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핑크스의 질문에 답변을 함으로써 스핑크스를 제거하기는 했지만 오이디푸스는 결국 자기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로 생을 마감했죠.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결말은 운명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수고가 덧없다는 메시지를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스핑크스의 질문은 인간의 외형적인 모습이 아닌 보다 궁극적인 문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성찰케 하는 화두입니다. 단순히 태어나서, 자라고, 또 나이들어 죽는 인간의 모습은 짐승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외형적인 모습이요, 궁극적인 인간의 모습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말이죠.

 

오늘 읽은 시편 15편 역시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는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여기에서 주의 장막주의 성산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 질문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 어떠한지를 묻는 내용처럼 들립니다. 2-5절까지 나오는 그에 상응하는 답변도 사람의 자격, 곧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그 자격 조건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격이 있어서 그 동산에서 살았던 것인지 말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자격조건이 주어져 있어서 에덴동산에 살았던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죠.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또한 우리에게 충분한 자격이 주어져 있어서가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본문의 질문은 그렇기에 자격을 묻고 있는 게 아니라 지향점을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 말이죠.

 

이에 대해 시편 기자는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거나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 모두 10가지 항목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시를 쓴 다윗은 일부러 열 가지 항목을 맞추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십계명을 떠올리게 하듯이 말이죠. 십계명은 제1-4계명까지 하나님을 위한 것, 5-10계명까지는 사람 사이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사람에 대한 계명을 나뉘는 것이죠. 그 정신을 영어의 알파벳으로 표기한다면 ‘X’의 삶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했죠. X의 윗부분에 대한 사랑과 섬김을 X의 아랫부분과 무게중심을 동일하게 두며 살아가는 것 말이죠.

그것은 곧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을 때, 주님께서 답변하신 말씀과 일치하죠.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5-4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사람에 대한 사랑 역시 무게가 동일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X의 삶이자 진정한 크리스천이 추구해야 할 삶이요, 십계명을 온전히 이루는 삶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서두에서 꺼낸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그 스핑크스의 그 수수께끼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격이었죠. 오늘 읽은 시편 기자 곧 다윗은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네 발로 기다가, 장성해서는 두 발로, 그리고 나이가 들어 지팡이에 의지해 사는 것이 인간의 일생이라면, 다윗은 그런 인생의 참된 가치는 올바른 지향점 곧 그 방향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인생의 올바른 지향점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의 결론을 다윗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5b) 인생에 대한 올바른 지향점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생로병사로 요약될 수 있지만, 올바른 지향점을 지니고 사는 인생은 결코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님을 다윗은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향점을 바라보는 인생의 종착역은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원에 있다는 것이죠.

 

이와 같은 시를 쓴 다윗도 실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골리앗을 쓰러트린 이후에 모든 백성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그 뒤에 곧장 피를 말리는 도망자 신세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왕이 된 후에도 그는 처절한 아픔과 고통의 삶도 겪어야 했죠. 그렇지만 다윗은 본문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늘 되새기곤 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전절(修殿節)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신 것도 마찬가지였죠. 수전절의 날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라 참된 성전이어야 할 유대 백성들의 심령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그런 뜻에서 우리 자신의 심령을 어떻게 수전곧 회개하는 심령으로 살 수 있다고 했습니까? 그것은 행위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본질의 변화에 있습니다. 본질의 변화 이후에 끊임없이 해바라기처럼 주님을 바라보며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이죠. 그것이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 보여준 아버지의 사랑이죠. 바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선택이나 능력에 달려 있었던 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동행해 주신 응답의 과정이죠. 다윗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지향점, 곧 방향성을 오직 하나님께 두며 해바라기처럼 살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이 그것이죠. 그때 주님의 성산 곧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안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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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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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태어나서 두 발로 걷다가 나이 들고 병들어 죽는 것이 인생일진대, 우리 인생의 끝이 어디인지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산다 할지라도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인생의 방향점을 잃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늘의 삶이 영원한 하늘 본향에 닿아 있는 삶이 되게 하시고, 그 어떤 풍랑 속에서도 주님의 충만한 임재 속에서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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