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시편 12편을 통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신으로 인해 참담한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 심정이 답답했는지, 1절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사실 타락한 이 세상을 보고 또 타락한 이 세상의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낙심하고 시험 들 수밖에 없죠. 진실하면 살아갈 수 없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시키죠.
그래서 타락한 시대의 특징이 있는데, 두 가지 특징을 오늘 읽은 시편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2절 말씀처럼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이른바 타락한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거짓말을 쉽게 하고, 아첨하고, 두 마음을 품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말로 범죄를 저지르는 시대라는 뜻이죠.
다윗은 이미 3천년 전에 그런 시대의 모습을 경험한 바 있기에, 지적하고 있는 것이죠. 진실성이 없는 시대, 그 타락한 시대는 거짓말이 난무한 시대라고 말이죠. 타락한 시대는 서로 속고 속이는 세상을 산다고 말이죠. 진실을 말해주면 그것조차도 이용하는 시대라고 말이죠. 특별히 경쟁관계 속에 있는 직장과 사업장에서는 더더욱 그런 시대죠.
그런데 가정에서는 어떠합니까? 가정에서는 아내가 힘들면 남편도 힘들다고 생각을 해야 하죠. 남편이 힘들면 아내도 힘들다고 생각을 해야 하고요. 그만큼 서로 이해해주고 믿어주고, 도와주어야 서로를 북돋아 줄 수 있죠. 마찬가지로 교인이 힘들면 목회자도 힘든 법이죠. 목회자가 힘들면 교우들의 심령도 힘들어지죠. 그렇기에 힘겨운 이 세상에서 누군가 힘들면 서로 믿어주고 격려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말로 상처를 받고,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에, 부모와 자식 지간에, 직장의 선후배간에, 목회자와 교우지간에, 서로가 믿어주고 격려가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이 제일 먼저 가져다 준 게 무엇이었습니까? 의심이었습니다. 말로써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이었죠. 하나님께서는 그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다’ 했는데, 사탄은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것이다, 고 불신을 불어넣었죠,. 그만큼 사람 사이에 불신을 심어주는 것,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하는 것, 거기서부터 사람 사이에 자존심에 상처를 주게 되죠. 그로부터 속고 속이는 관계로 전락하게 되고, 그 일로 분열과 다툼이 생기는 법이죠
그래서 3절이 이렇게 읊조리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사람들이 말로 범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겠다고 하시죠. 그것은 마태복음 12장 3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입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 또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죠.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벧전4:11)
과연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말을 할 때 주님께 하듯이 하라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예의를 갖추듯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통틀어 혀를 어디에 사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혀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이죠. 그래야 죄가 되지 않고, 심판을 받지 않고, 더욱이 불의하고 거짓이 난무한 시대에서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둘째로 타락한 시대의 특징이 무엇인가? 4절에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그야말로 내 혀로 내가 말한다는데 누가 감히 감놔라 배 놔라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지극히 인본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혀를 조심하지 않고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잘될 수가 없습니다. 바른 말을 해야 할 때 바른 말을 하고, 말을 아껴야 할 때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인본주의 곧 자기 생각, 자기 열심, 자기 주관대로만 사는 자들은 모든 말들을 생각나는 데로 함부로 내 뱉어버리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하루 하루를 살면서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치유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로부터 파송 받은 세상의 치유자들 말입니다. 그 혀를 통해 위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아래로 나와 함께 하는 식구들, 자녀들, 일터의 동료들의 기를 살리고 힘을 북돋는 말을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언젠가도 수요일 저녁에 말했지만, 일본의 어느 수도원에 심겨져 있는 나무들이 12제자 나무였는데, 가롯 유다의 나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는데, 그 원인이 결국은 참배객들이, 순례객들이 저주의 말을 쏟아놓기 때문에 그 나무가 죽어갔다고 말이죠.
식물도 그럴 진데,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더 심하겠습니까? 그러니 혀의 권세를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반전을 고백합니다. 5절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여기에서 말하는 “가련한 자, 궁핍한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일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언제까지나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시간표가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흔들리지 말고 신실한 하나님을 의탁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거짓되어도, 거짓말이 난무한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실족하거나 낙망치 말고,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6절에서 이렇게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고난을 맞이할지라도 변질되지 않는 은과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친히 이끄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마치 욥기서에 나온 고백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고난의 길을 통해 내 믿음이 정금과 같이, 순금과 같이 나아가게 하신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생의 풍파와 역경과 고난이 점철돼 있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10년간 사울의 칼날에 쫓겨 다녀야 했고, 또 30대 초반에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40대에 명실상부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적들을 물리쳐야 했는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이 도와주셨는지 깨달았는데, 그의 인생 안정기에 접어들 50대 초반에 큰 죄악을 범했고, 그로 인해 근 10년간 집안에 회오리바람과 풍파가 불어 닥쳤고, 그리고 60대에 접어들어 근 10년간 그 모든 인생의 황혼기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준비했던 다윗으로, 7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존경하고 부러워했지만, 자기 가족사는 그리 순탄치 못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죠. 그러나 그 모든 인생의 과정 속에서 겪었던 역풍과 고난들이 실은 다윗을 은처럼 단련시키고자 하신 하나님의 과정들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 속에 불어 닥치는 고난과 역경들, 심지어 인본주의에 빠져 거짓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로 인해 당하는 고통들, 그 속에서도 오직 불로 연단할 순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통의 끝에 승리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칠 때에도 주께 구하며 의탁했습니다. 저희들에게 닥쳐오는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의탁하길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 가운데 낙심치 않게 하시고 소망 중에 거하시는 주님을 붙잡길 원합니다. 특별히 말로 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내 곁의 사람들을 세워가는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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