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시편

가난한 자들이 실망치 아니하리로다(시9:1-20)

by 똑똑이채널 2022. 3. 7.
728x90
반응형
SMALL

오늘 읽은 시편 9편과 내일 살펴 볼 시편 10편은 비록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리는 찬양의 시입니다. 다윗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으니, 그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노래를 따라 부르기를 열망했겠죠.

그런데 오늘 읽은 시편 9편과 내일 읽을 10편은 히브리어 사본에는 두 편으로 나누고 있어서 우리 개신교 성경책도 두 편으로 분리하고 있죠. 하지만 70인 역을 따르는 계열의 성경에서는 9편과 10편을 하나의 시편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가톨릭 성경이 두 개의 시편을 하나의 연속적인 시편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죠. 물론 그렇게 두 개로 나누거나 하나로 묶거나,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것은 이 두 개의 시편의 각 2행의 서두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또 하나는 두 시의 주제가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각기 다른 시가 아니라 하나의 연관성을 지닌 시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오늘 읽은 시편 9편의 표제어에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라고 돼 있습니다. 뭇랍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까지도 정확한 해석은 못 내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이 시편을 예배 때 찬양으로 부를 때 사용하는 악기 연주법이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뭇랍벤아들의 죽음이나 여성의 목소리로 애도하는 고백이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압살롬의 죽음에 관한 애도, 그러나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감사, 그 사이에서 읊조리는 시라는 뜻이죠.

하지만 시편 9편을 읽을 때 압살롬을 애도하거나, 자식의 죽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분위기는 엿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세 가지 부분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죠. 첫째 부분은 1-4절을 아우르는 고백입니다. 그 중에서도 4절이 핵심입니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두 번째 부분은 9-10절 말씀인데, 이 중에 10절이 핵심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세 번째 부분은 11-20절 말씀인데, 그 중에서도 19절이 키 포인트입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그런데 이 세 고백을 들으면 도대체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지헷갈리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 속에 확실한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반복되지 않았습니까?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의 사건이 그랬죠. 또 홍해가 갈라지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였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중에 히스기야처럼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의 185천 대군이 하루아침에 죽어버리는 극적인 승리를 얻게 된 왕이 또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죠. 더욱이 이방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지만, 선지자의 명령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글 때 그 병이 낫게 된 것, 그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백하며 읊조리는 시편 9편에는 그런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만 나열해 놓고 있는 느낌이죠.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가 무엇이기에, 오늘 우리들까지 그런 하나님의 기이하신 역사에 초대하는 것일까요?

 

먼저 4절을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심판대 위에 앉으셨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 나라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심판대 위에서,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귀를 기울여 주시고, 이방 백성들에게는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9절에서는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오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백성이 압제를 당할 때 그 환란에서 지켜주시는 요새이지만, 원수들과 같은 이방 나라들 하나님과 관계성이 없는 백성들은 책망과 심판하시는 분임을 천명한 것이죠.

이것은 베드로전서 58절에서도 똑같이 고백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늘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면서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기 싫어하는 격과 똑같은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는 것 아닙니까? 연약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솔직한 기도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죠.

 

두 번째로 10절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가 무엇입니까? 주의 이름을 아는 자, 주님을 의지하는 자를 주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고백이죠.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늘 의지하고, 찾고, 의탁하는 자들, 그런 자들의 특징을 12절에서는 가난한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아무리 똑똑한다 해도 실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없는 자로서 하나님 보시기에는 교만한 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한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천국과 내세에 대한 소망도 없이 이 땅을 끝으로만 여기는 그는 가장 불쌍한 인간 중의 하나죠. 그런 자는 결코 그 심령이 가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는 찾지 않고, 만나려고도 하지 않죠.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한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탁할 수 있는 법이죠.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는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 자기 힘과 능력으로는 기름부음을 받을 수 없는 다윗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보호하심을 받은 체험이 있기에, 그는 언제 어디서나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하나님을 찾고 의탁할 수 있는 법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의 첫 번째 설교를 통해 그렇게 설파하셨던 것이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하고 말이죠.

 

19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 그 세 번째가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인생의 역전을 말하는 것이죠. 악인이 형통한 것 같지만 그 끝 날에 심판하신다는 것 말입니다. 물론 의인의 괴로움 끝에는 분명코 상급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내다볼 수 있는 법이죠. 그러나 연약한 인간들은 그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 주어지는 인생의 즐거움과 만족과 평안함과 쾌락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진정으로 행복한 인간이 누굽니까?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자기 자신이 아마다곧 흙과 같은 연약한 존재임을 망각치 않고, 언제 어디서나 에노스곧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임을 아는 것, 그 까닭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을 택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진정한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연약한 한계를 아는 인생만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다윗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속에서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임받게 된 것이죠. 지금 그것을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아, 진실로 깨달아 알지어다’, 하고 이 시를 읊조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 각자의 연약함을 알고,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북팟

www.bookpod.co.kr

 

*사랑하시는 주님.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의롭지 못한 저희들임을 고백합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하나 우리를 원수와 구별하셔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하게 하시고, 의롭다고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는 더욱더 가난한 심령으로, 내 육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욱도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방 나라와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을 의탁하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오늘도 체험케 해 주시옵소서.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