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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회개하지 아니하면(시7:1~17)

by 똑똑이채널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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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그렇게 붙어 있습니다.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이 표제어는 본문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식가욘이란 탄식 또는 애가를 뜻합니다. 그만큼 고통과 위로가 함께 녹아 있는 고백입니다.

 

본문에 등장한 다윗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모습입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사자 같은 원수들에 의해 둘러 쌓여 있고, 찢김을 당할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한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로 인해 그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소서, 건져 내소서.’하고 탄식하며 간구하는 모습이죠.

왜 다윗이 위기 속에서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능히 그런 힘과 권능을 지닌 분임을 다윗이 삶 속에서 체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육척장신을 물맷돌로도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사건을 경험한 것 말이죠.

그만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죠.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요한복음 1010절에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되, 더 풍성하게 얻도록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죠. 우리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들이 근심하거나 고생하는 게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다윗도 그 하나님께 지금 위기 상황속에서 간구하며 도움을 호소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3~5절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셀라).” 다윗은 지금 내가 당하는 억압과 고통과 원수들의 포위망이 내 죄의 원인이라면 기꺼이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다. 힘없는 자들을 까닭 없이 빼앗았거나 억압했다면, 연약한 자들을 짓밟았다면, 모두가 나의 죄로 인함이니, 기꺼이 지금의 고통과 억압을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지금 고통과 억압의 상황 속에서 회개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죄로 인해 내가 지금 고통을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관점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닥친 삶의 문제를 타인에게 돌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았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자세라 할 수 있죠.

 

2007년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도 그때 참석한 바 있었는데, 10만 명의 성도가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모였습니다. 그날 설교를 맡은 고 옥한흠 목사님은 그 많은 인파들을 향해 회개하도록 설교했습니다. 그 분은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며 고백했습니다. 단순히 목청만 높인 게 아니라, 거의 절규에 가깝게 회중을 향하여 회개하도록 강조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유례 없이 성장하는 그 동력을 모두가 축복, 형통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왔는데, 실은 제자의 삶이 없다며 탄식했던 것이죠. 그런 삶이 없음에 대해 회개하도록 촉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목회하는 동안 가장 강조한 게 제자를 삼는 일이었는데, 머리만 제자일 뿐 손과 발에서 주님의 참된 제자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 바로 그에 대한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그 목사님이 먼저 고백한 바 있었습니다.

어떤가요? 저와 여러분은 뭔가 일이 뒤틀리고 안 될 때, 누구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경향입니까?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먼저 내 탓으로 돌리는 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취하는 자세이겠죠. 다윗도 지금 그렇고, 옥한음 목사님도 그때 그런 모습을 한국교회 성도들에 보여줬던 것이죠.

 

최근에 주일날 예배 전에 부르는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시선이란 찬양이 그것입니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네.” 우리가 모든 상황의 초점을 하나님께 두고 나아가면, 그때 그 모든 역사는 주님의 역사가 된다는 찬양의 고백입니다. 그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아무쪼록 뭔가 어려운 상황과 여건이 닥쳐왔을 때 먼저 우리 자신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다윗처럼 돌아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또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회개하면, 그 은혜의 풍성함을 허락하시는 분임을 말입니다. 우리를 고생케 하시려는 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제 무엇을 고백합니까? 하나님 앞에 바른 회개의 모습을 갖춘 이후에는 그렇게 간구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본문 6~10절에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자기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먼저 돌아 본 다윗,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주님 앞에 회개한 다윗은, 이제 자신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 세력들을 진압해 주시도록, 악인의 악을 끊어버리고, 의인을 세우도록 간구하며 나아갑니다.

왜 그런 기도를 드립니까?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다윗이 체험했기 때문에 그렇죠. 바꿔 말해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자기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자, 정직한 자들은 주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시고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죠.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은 어떻게 하길 요청합니까? 바꿔 말해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패역한 자들이 어떻게 되길 바랍니까? 12~13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회개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가신다고, 심판의 화살을 당기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1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아니한 악한 자들과 회개한 자기 자신은 그와 같은 은혜와 심판으로 갈리는 차원의 삶을 살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언젠가 주일오후 시간에 회개에 대해서 배웠죠.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촉구했지만 소리치고 들래며 말했지만 대부분은 자백하는 수준에서 그쳐버렸죠. 하지만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 부자 요셉 유대 관원 니고데모, 세리장 삭개오, 백부장, 로마 군인, 십자가 상의 오른편 강도 등은 회개의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인격적으로 자신들을 품어주시는 주님을 깊이 만난 까닭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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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다윗은 단순히 자기 대적들을 진멸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과 그들을 감찰하시는 의로운 재판장 앞에 회개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저희들도 이 아침에 하나님 앞에 저희의 삶을 겸비할 때, 저희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열어주실 줄 믿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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