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때는 대궐 문 성루에 ‘신문고’라는 북을 달아 두었습니다.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임금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죠. 그러나 신문고를 두드린 사람들은 실제로는 소수에 불과했고, 이용을 하더라도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죠.
오늘날에도 국무총리 산하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국민신문고’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해 두고 있습니다. 저도 한 번 그 국민신문고를 이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교통사고로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에서 분쇄골절 수술을 했는데, 수술과 치료 후 합의서를 작성했었죠, 그 뒤에 후유증이 생겨 그 담당 의사에게 진단서를 써 달라고 했지만, 의사는 그것이 교통사고와 관련된 후유증이 아닌 단순 비구순 파열이라고 이야기해서, 그때 그 분의 억울함을 대변코자 글을 작성해 국민신문고에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수술담당 의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급기야 그 담당 의사가 다시금 진단서를 끊어주게 되어, 후유증까지도 다시금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국민신문고 제도는 그만큼 억울한 일을 가급적 줄여보겠다는 정부의 의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도 신문고 제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신문고를 두드리는 이들은 누구든지 왕이신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고,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죠. 뿐만 아니라 공정한 재판까지 약속해 주시는 하늘나라 신문고 제도죠. 이른바 ‘기도’라는 신문고 제도입니다. 시편을 히브리어로 ‘테힐림’(Tehillim)이라고 부르는데, ‘찬양의 노래들’이죠. 그러나 이 시편을 또 다른 말로 부르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테필롯’ 곧 ‘기도의 시’라는 게 그것이라고 했죠. 이른바 하나님 나라의 신문고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의 시가 바로 시편입니다.
본문 2절에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께 호소합니까?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편 5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시편 4편은 ‘저녁의 시’이고, 시편 3편은 ‘아침의 시’라고 했습니다 저녁 제사를 드리며 평안한 밤을 기원하며 잠을 청한 다윗이, 시편 5편에서 지난밤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그것조차 생략한 채, 아침 제사 때부터 곧장 신문고를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다윗이 다급하게 하나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8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원수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왕의 신문고를 두드리게 만든 원수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다윗이 가는 길마다 엎드려 숨어 있다가 다윗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원수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원수들은 다름 아닌, 중상모략과 거짓 증거를 일삼는 자들, 음모와 모략과 술수와 아첨에 능한 사람들이죠. 그야말로 거짓말이 입에 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다윗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간 증인들 주변에는 그렇게 중상모략과 거짓 증거를 일삼는 자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왕에게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온갖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학사 에스라와 총독 느헤미야도 성벽재건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일 때 북쪽에서 내려와 유대지도자들을 돈을 매수한 산발랏과 도비야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 때문에 유대 법정과 이방 법정에 설 때마다 사악한 위증을 일삼는 이들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산헤드린 법정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음모와 모략과 술수와 아첨하는 이들에 의해 무고하게 사형선고를 언도받고 십자가형으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때 온갖 중상모략 하는 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물러설 필요는 없습니다. 다윗은 왕이자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올바르게 판단해 주실 뿐만 아니라, 악인을 정죄하시고, 죄인을 의인의 나라에서 쫓아내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신문고 소리를 듣고 호소에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향해 ‘나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에는 하나님의 두 얼굴이 등장합니다. 4절을 보면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하나님의 첫 번째 얼굴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는 분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은 행악자를 미워하시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겠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기도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또 다른 얼굴은 11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물로 허락하시는 분이시죠.
그러니까 시편 5편 속에 나타난 다윗의 기도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인애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또한 의로우신 분으로,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악인을 정죄하시는 분입니다. 더욱이 거짓 증거하는 자들은 당신의 목전에서 쫓아내시는 분입니다. 다윗이 신문고 제도를 통해 하나님께 고백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인애와 공의의 하나님께서 분명코 내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말이죠.
2012년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무고죄로 접수된 사건이 6044건이었고, 2009년에는 7104건, 2011년에는 6489건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허위진술을 해 위증죄로 기소된 경우도 2007년 1648건, 2011년 1335건이었다고 하죠. 이것은 한 해 평균 우리나라 인구 1만 명 당 고소 및 고발이 80건 가량으로, 비슷한 사법체계를 가진 일본의 인구 1만 명 당 1.3건에 비하면 60배가 넘는 수치라고 합니다. 무고죄나 위증죄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하죠. 거짓말을 해도 별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높은 부패지수, 그리고 낮은 행복지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 거짓과 중상모략이 통할 리가 없고, 인애와 공의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품으시기 때문에, 그런 거짓 증인들과 중상모략자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되겠죠.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로몬의 행각의 예수님처럼 진리의 삶 신실한 삶을 살게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요, 우리의 후손들이 그 삶을 본받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하늘나라 신문고 제도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밤이 물러가고 낮을 맞이하는 이른 아침 시간에, 주님께 우리의 심정을 아뢰고 기도합니다.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주님, 주님은 거짓을 미워하시며 속임수를 싫어하십니다. 주님, 주님의 풍성한 사랑에서만 힘을 얻고, 주님의 말씀만을 방패로 삼아, 오늘 하루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혹여 거짓말의 포화가 쏟아지면 즉시 주님 품으로 피하게 하시고, 인애와 공평의 하나님의 이름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을 더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주님의 나라가 되기까지 인애와 공평의 하나님의 얼굴빛을 구하며 기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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