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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시3:1~8)

by 똑똑이채널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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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은 아침의 시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극심한 어려움과 낙심가운데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평안한 잠을 자고 깨서 부르는 아침의 시말이죠. 왜냐하면 5절에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라는 구절 때문이죠. 이 아침의 시와 짝을 이루는 게 내일 살펴볼 시편 4편입니다. 이른바 밤의 시. 시편 48절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하는 구절때문이죠.

특별히 오늘 읽은 3편의 표제에 그런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라고 말이죠. 이른바 다윗이 이 시를 쓴 때가 압살롬이 일으킨 반역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다니던 때로 추정할 수 있죠. 그 상황이 사무엘하15~18장에 나와 있는데, 우리가 이미 읽은 말씀이죠. 그 당시 다윗의 삶은 매우 곤고했고, 온갖 두려움 그리고 분노에 휩쌓여 있는 상태였죠. “반역하는 일이 커 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삼하15:12~13)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도 고통스러운데, 이스라엘의 민심도 모두 다윗에게서 떠나갔다는 탄식입니다. 그래서 오늘 1절과 2절에 많은지요”,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란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윗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들이 다 등을 돌리는 것이죠. 더욱이 전장을 함께 누볐던 당대 최고의 지략가인 아히도벨마저 압살롬 편에 서서 모사가 됩니다. 다윗에게 아히도벨은 삼국지의 유비에게 제갈공명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아히도벨의 계략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으로 여길 정도였죠. 사무엘하1623절에서 그걸 밝혀주죠. 그런데 그런 친구들, 동료들, 모략가 아히도벨과 같은 사람들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축복하던 이들인데, 이제는 그들이 다 등을 돌리고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더 견디기 힘든 게 무엇입니까? 2절에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자신을 향해 모략하는 이들로 인해, 자기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우리가 전에 읽은 욥기서의 상황과 같은 격입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 앞에 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었습니다. ‘너의 곤경은 네가 저지른 죄의 대가다.’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으니 너는 회복될 수 없다는 그런 비난과 조롱이죠. 욥이 정말 고통스러웠던 것은 물질과 자녀를 잃었을 때보다도 친구들과 시작된 논쟁에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것 아니었습니까? 자신이 떳떳하면 비록 위기가 와도 자존감을 지키며 재기할 수 있지만, 친구들이 욥을 흔들어대니 더욱더 곤혹스러운 욥이었죠.

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다윗이 지금 쫓기는 마당이고, 친구들과 동료들과 모략가까지도 다 등을 올리고 자기를 죽이려는 마당인데, 그것도 힘든 상황인데, 더 힘든 게 무엇입니까? 자신을 향해 비웃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퍼져 나가는 것이죠. 저가 저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이라고 말이죠. 죄가 없으면 떳떳할 텐데 그렇지 못하는 다윗의 형국이죠. 외부에서 들려오는 조롱과 비웃음, 배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나약한 상태죠. 그야말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감이 엄습해 오는 상황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런 고난의 때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또 자책하게 됩니다. 때로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도라고 해서 고난이 피해 가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이기에 오히려 더 큰 고난과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큰 고난의 때에도 부르짖고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것,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고 간구하며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읽은 시편 3편에는 2, 4, 8절 뒷부분에 괄호가 있고 그 안에 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악적인 지시어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 뜻이 올려라’, ‘쉬어라하는 뜻으로 이해되지만 정확한 의미는 아직까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어쩌면 예배 시간에 시편 찬송을 부르다가 셀라가 나오면 찬송을 멈추고 악기소리를 높이는 것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은 전,후에 잠시 멈춤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셀라의 앞 또는 뒤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3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8절에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는 것이죠.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배신의 아픔과 절망의 고통으로 촘촘히 둘러 쌓여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멈춰서 생각해 본다면,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다는 것을 발견케 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마음의 상태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자신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 말입니다.

과연 다윗의 왕권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었습니까? 압살롬보다 더 많은 군사를 모으고, 아히도벨 보다 더 뛰어난 지략가를 구해서 승리했습니까? 그가 일어서게 된 것은 사람을 의지하며 바라봤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본 까닭입니다. 그래서 3절에 여호와여하고 하나님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한 모습이죠.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합니다. 3절에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 자신을 지켜 줄 방패’, 자신이 받을 은혜의 영광’, 그리고 끝내는 자신을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하실 분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니 방패영광이나 머리나 궁극적으로 구원이라는 말과 동의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배신이 짙게 깔려 있지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주시고, 그 모든 피곤함 가운데서도 일어나게 하시는 구원의 주님이심을 찬양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로마교황청의 사절들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보름스 의회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는 그런 고백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귀가 보름스 모든 지붕의 기왓장 수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갈 것이다. 나는 주님 위에 확고히 서 있다하고 말이죠. 그러면서 그가 불렀던 찬양이 찬송가 585장이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그처럼 루터의 담대함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실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평안과 승리였습니다. 그래서 5절에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하고 고백하죠. 시편 3편을 아침의 시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밤의 시인 시편 4편은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8)하는 말로 짝을 이룬다고 했죠.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다윗이 얼굴을 가리고 맨발로 울며 도망가는 상황을 사무엘하서1530절에 밝혀주는데, 어찌 잠을 들 수 있겠습니까? 밤새 뒤척이다 겨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아침이 오는 게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잠이 듭니다. 이유인 즉 5절 하반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 때문이죠.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지키시되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121:4)지키신다고 밝혀줍니다. 그래서 다윗도,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은혜로 새 아침을 맞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겠죠. 우리 자신이 다윗처럼 잠을 못 잘 정도로,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여러 염려와 걱정에 둘러쌓일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많고, 내게 주어진 환경이 답답할 때 말이죠.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처럼 저와 여러분들을 강건하게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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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절망과 낙심, 미움과 상처로 나의 눈이 가려지지 않게 하소서. 나의 연약함, 나의 당한 고난을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은 여호와께 있음을 믿사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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