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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시편4:1~8)

by 똑똑이채널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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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4편은 어제 읽은 시편 3편과 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시편 3편은 아침의 시이고 시편 4편은 밤의 시라고 했죠. 어제 읽은 시편 3편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피해 다닐 때에 쓴 시로 제목이 나와 있지만, 오늘 읽은 시편 4, 곧 밤의 시로 알려진 이 시편은, 표제가 뭐라고 돼 있습니까?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라고 돼 있습니다. 이른바 이 시편은 예배 때 찬양대원들의 찬양에 따라 부른 노래였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5절에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하고 읊조린 것일 수 있죠.

어떤 책을 보니 오늘날 직장인 10명중 7명이 잠을 못 이룬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만 불면증을 이루는 게 아니라, 현대인들도 여러 원인들로 인해 불면증을 겪고 있는 상태죠. 그렇다면 과연 누가 평안히 눕고 잠을 청할 수 있을까요? 본문 1~2절에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셀라).” 다윗이 제사를 드리는 중에 찬양대원들과 함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이때 다윗은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게 무엇입니까? 일종의 회개를 청하고 있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꿔서 욕되게 하고,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한다는 게 그것이죠. 이 고백을 보면 마치 전도서 1장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해 아래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하는 고백입니다.

오래 전에 포스코 계열사 임원이 오후에 인천에서 미국 LA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의 비즈니스 석에 탑승했다가 기내식을 문제 삼아 여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죠. 무려 5번이나 기내식을 퇴짜 놓은 뒤에 기내식 주방인 갤리에 들어가 여승무원을 폭행한 것이죠. 그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죠. ‘웨이터법칙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하는 것 말이죠. 그 말은 웨이터뿐만 아니라 경비원과 청소부 등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죠. 그 포스코 임원이 현재의 자리까지 오르도록 얼마나 열심히 살았겠습니까? 그렇게 남들과 경쟁해서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상위 1%에 올랐는데, 그 자리에서 군림하는 모습으로 승무원을 폭행했으니, 그가 누리고 쌓아 올린 게 뭐가 되겠습니까? 헛될 수 밖에 없죠.

만약 자신이 소유한 것을 그들처럼 교만하게 사용한다면, 해 아래에서 수고한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 그런 사람을 결코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교만한 사람이 나보다 지위가 높다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지 모르지만, 뒤돌아서면 그 사람을 욕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서도 그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여기서 말한 경건한 자란, 곧 겸손한 자요,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고 섬기듯이 내 곁의 사람들, 지휘고하가 어떻든지 간에,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아끼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 어지 듣지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경건한 자는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지도자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가셨는데, 초대받은 손님들이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걸 보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죠. “누가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가서 앉지 마라. 혹시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또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주인이 와서 너에게 이 분에게 자리를 내어드리게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무안하게도 맨 끝자리로 내려앉아야 할 것이다. 너는 초대를 받거든 오히려 맨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 여보게 저 윗자리로 올라앉게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모든 손님들의 눈에 너는 영예롭게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14:7-11)”

바리새파 지도자들 곧 교만한 자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겸손하게 살라는 주문이죠. 겸손할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죠. 세상을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갈등은 겸손치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죠. 내가 상대보다 더 똑똑한데, 내가 상대보다 많은 경험을 했는데, 내가 상대보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재능을 가졌는데,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 모든 갈등의 원인에는 항상 자기 교만함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교만을 버리고 진정으로 겸손하라고, 곧 경건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그런데 4절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떨며 범죄하지 말라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여기에서 떨다는 각주 1)에 나온 것처럼 분내어입니다. 무서워서 떤다는 말이 아니라, 화를 참지 못해 부르르 떤다는 뜻입니다. 부르르 떨 정도로, 자신의 화를 절제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화 난 상태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감정만 남게 됩니다. 인간에게서 이성이 사라지고 감정만 남게 되면 그 사람은 짐승처럼 변하죠. 감정 조절이 안 되면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떨며 범죄하지 말라, 그럴 바에는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하고 말하는 것이죠. 부르르 떨 정도로 화가 나면 대화 하려고 말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중지하고 잠을 자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시편이 제사를 드릴 때 부르는 찬송이라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지 않습니까? 가인과 아벨이죠.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죠. 그 그런데 그때 가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45절에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했습니다. 가인이 분했다는 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부르르 떨 정도로 이성을 상실했다는 뜻이죠. 그런 상태라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을 한 숨 자고 생각을 해야 했죠. 왜 하나님께서 나의 제사와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 하고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면 될 일이었죠.본문 5절처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하면 될 일이죠. 그러나 가인에게는 그런 게 없이 분을 내고 부르르 떨면서 자기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죄로 연결했죠. 그러니 그런 지위와 신분 속에서 얼마나 헛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인마저 표를 주시고, 지켜주시겠다고 언약의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인만 그랬는가? 다윗도 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도 그런 범죄의 상태에 직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악을 저질렀고, 또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 적의 칼에 죽게 만드는 살인죄까지 저질렀죠. 그런데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지적하기 전까지,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안식일이 되면 어엿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과연 그의 제사를 하나님께 기뻐 받으셨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속으로는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하고, 그로 인해 잠을 설쳤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죠. 급기야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죄를 지적할 때, 다윗의 놀라운 점, 곧 그 앞에서 통회자복하는 모습을 갖췄다는 것이죠. 바로 그 뒤에 하나님 앞에 의의 제사를 드렸고, 그로 인해 본문 8절에서 고백하듯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다.”하고 고백했던 것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다윗처럼, 어떤 실수나 허물로 인해 또 다른 상황의 분노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일이 있다면, 정말로 하나님 앞에 의의 제사, 곧 삶 속에서 화평의 길을 좇았으면 합니다. 그때는 직장인들 10명 중 7명이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한 잠에 취하게 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1272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하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의의 제사를 드리는 자는 삶 속에서 화평을 추구하는 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 자의 제사가 바로 살아 있는 영적 제사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북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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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초조로 인해, 또 죄악으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는데, 저희들 모두 주님께 사랑받는 자로서 의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삶과 화평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오늘이 바로 그 기쁨과 감사, 화평이 충만한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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