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에스더를 살펴 볼 차례입니다. 에스더서는 성경순으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 다음에 배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연대순으로 보면 에스라서 자체의 중간 부분에 위치한 책입니다. 이미 에스라서를 살펴 볼 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에스라서 1-6장까지는 제1차 포로귀환과 성전재건의 역사를, 7-10장까지는 2차 포로귀환과 심령재건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었죠. 에스더서는 전반부와 그 후반부 사이에 끼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B.C722년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죠. 남왕국 유다는 그들의 삶을 타산지석 삼아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아야 했죠. 하지만 그들은 우상숭배의 길을 걸었고,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았고,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왕은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죠. 그런 모습을 참다못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대왕을 들어 남왕국 유다를 공격하게 했죠. 제1차 공격과 더불어 유다민족을 포로로 끌고 간 때가 B.C. 605년, 그로부터 8년 뒤인 B.C.597년 제2차 공격과 함께 포로들을 끌고 갔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B.C.586에 3차 공격과 더불어 성전과 성벽을 모두 불태워버렸고 유다의 하층민만 남겨 둔 채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죠.
그런 모습만 본다면 하나님은 역사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죠. 바벨론을 들어 유다 민족을 징계하고 그 과정에서 회개하게 하고, 연단케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그리고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작정하신 70년 포로기간이 끝날 무렵, 유다 민족을 다시금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죠.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을 감동시키셔서 그 일을 진행케 하셨죠.
그때가 바로 제1차 포로귀환이 일어난 B.C.538년, 제1차 포로유수기로부터 70년이 지난 시점이었죠. 그 1차 포로귀환의 인솔자는, 우리가 에스라서 전반부를 통해 살펴 본 것처럼,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였죠. 총 4만9,897명의 사람들이 돌아왔죠. 그들이 고국에 돌아와 행한 일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죠. 방해꾼들로 인해 2년간 중단되었지만,늙은 학개 선지자와 젊은 스가랴 선지자의 독려로 23년만에 완공이 되었죠. B.C.515년의 일이었죠.
이상의 내용이 에스라서의 전반부 곧 1-6장까지 읽은 내용이었습니다. 에스라서의 후반부 곧 7-10장까지의 내용은 제2차 포로귀환과 백성들의 심령을 재건하는 일이었죠. 그 후반부의 내용이 있기 전에, 바로 오늘부터 읽어나가는 에스더서의 내용이 끼어 있다는 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제1차 포로귀환이 있은 지 80년이 지난 시점, B.C.458년에 제2차 포로귀환이 이뤄지는데 그 중간에 에스더서의 역사가 진행된 것입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이 칙령을 내려 유대 민족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했고, 그때 5만 명 가량의 유대 민족이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페르시아 땅에 남아 있는 유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세월이 흐르면서 페르시아의 대왕 고레스가 죽고 그 아들이자 폭군인 캄비세스(Cambyses)가 통치하다 죽고, 새로운 다리오(Darius I) 왕이 통치했는데 그가 죽자 그 아들 크세르크세스(Xerxes)가 통치하는데 그가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이었던 것이죠. 그의 통치기는 제1차 바벨론 포로귀환의 때로부터 56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에스더서를 누가 기록했을까요? 그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이가 없습니다. 다만 성경학자들은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나 혹은 에스라 선지자가 기록했지 않나 추측합니다.
에스더서는 크게 다섯 가지 단락으로 나눕니다. 첫째는 1장1-2장20절까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보여주고 있고, 둘째는 2장21—4장3절까지 하만의 음모를, 셋째는 4장4—9장19절까지 에스더의 개입을 보여주고 있고, 넷째는 9장20-32절까지로 유대인의 기쁨을,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는 10장을 통해 모르드개의 굳건함과 유다 민족의 굳건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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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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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1장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에스더를 예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페르시아의 통치자는 1절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대왕 아하수에로입니다. 그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127개 지방을 다스리는 왕 중의 왕입니다. 3절에 보면 3년이 지난 시점에 큰 잔치를 배설합니다. 4절에는 180일 동안, 근 6개월 동안 그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영화로움과 부함과 위험을 한껏 과시하고자 함이었죠.
그 긴 연회가 끝나갈 무렵, 5절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은 이번에는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간 성대한 잔치를 열죠. 6절에 보면 그 후원 뜰은 백색, 녹색, 청색 휘장들로 풍성하게 장식되었고 그 휘장들은 자색 가는 베 줄과 은 고리로 대리석 기둥에 고정되었고, 뜰은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으로 포장되었고, 금과 은으로 제작된 아름다운 걸상들이 그 포장된 뜰 여기저기에 놓여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포도주는 서로 모양이 다른 수많은 금잔들 안에 담겨 있죠. 그리고 왕은 참석자들이 원하는 만큼 마시도록 허락하죠. 얼마나 성대하고 화려한 잔치인지 상상이 가십니까?
9절에는 왕의 아내인 왕후 ‘와스디’가 별도의 장소에서 여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있죠.
그리고 이제 잔치의 마지막인 일곱째 날에, 왕은 술 때문에 기분이 고조된 상황에서 어전 내시 일곱 명에게 명합니다. 왕후 와스디에게 왕후의 옷을 입혀 자기 앞으로 데려오도록 말이죠.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아내 곧 왕후의 아름다움을 지방관과 백성들에게 뽐내고자 함이었죠.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의 탁월함을 과시하려는 욕망에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왕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거부해 버립니다. 왜 왕후가 이런 왕의 명령을 거부했을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성경학자들은 그렇게 추측을 합니다. 술 취한 손님들에게 자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왕후로서의 위엄에 손상이 가는 일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왕 앞에 나서지 않았다고 해석을 하죠.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굉장히 분노하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라 여긴 자신에게, 그것도 많은 지방관과 백성이 보는 앞에서 왕의 명령을 거부한 것은 자신에게 대한 일종의 모독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규례와 법률에 정통한 자들에게 물었는데, 그들이 왕에게 말하죠. 16절 이하를 보면 므무간은,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여인이 왕후의 행위에 대해 듣게 되면 그들도 왕후의 예를 따라 자기 남편을 존경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왕후는 왕에게 뿐만 아니라 지방의 관리들과 백성 모두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해석을 하죠. 그래서 다시는 왕후가 왕 앞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서를 내려 그것을 법으로 정하고, 왕후에게 속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녀의 지위도 다른 이에게 넘기라고 조언하죠. 그렇게 하는 것이 그 나라의 모든 여인이 남편을 존경하는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이죠. 결국, 그 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그 ‘므무간’의 조언에 찬성했고, 왕은 므무간의 조언에 따라 왕후의 지위를 박탈하죠.
여기까지가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만 보면 세상 역사를 읽은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의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왜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었는가? 단지 그녀의 교만함과 오만함 때문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 너머에 하나님의 예비하심 곧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유대 민족의 위기 앞에 에스더를 왕후로 등극하게 하셔서 유대민족을 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 곧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준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당신의 섭리로 예비하고 계시고, 일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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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세상 속에 진행되는 일들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침묵가운데서도 여전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주님의 섭리를 느끼지 못해 답답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손에 붙들리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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