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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에스더

그날 밤에 왕이 역대 일기를 읽히더니(에6:1-14)

by 권또또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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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목사님의 성숙자반에 믿음을 6가지 신앙용어로 정립한 바 있습니다. 그걸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믿음은 순종이고 그 순종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자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믿음은 순종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한다는 것은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죠. 다만 그 용기의 출처가 자기 자신이라면 만용이 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용기였기에 진정한 용기 곧 믿음의 용기일 수 있었죠. 셋째 믿음은 그 용기를 지니기 위해서는 시선 곧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법이죠. 넷째 믿음은 컨트롤 되는 것 곧 다루시는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시선을 바라보면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겠죠. 다섯째 믿음은 신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고 컨트롤되면 그 삶이 신실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게 신실한 삶을 살게 되면 여섯째 믿음은 눈에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용어를 정립할 때 에스더에게 있었던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믿음은 곧 용기죠.

아말렉 족속의 후예인 하만이 모르드개 곧 사울 왕의 아버지인 기스의 후예이자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후예인 모르드개, 둘 사이는 대척점에 서 있었죠. 페르시아의 2인자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의 모습 때문이었죠. 그때 하만은 모르드개는 물론 유다 민족을 도륙 내고자 했죠.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127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 심지어 1차로 포로귀환한 5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살고 있고, 그로부터 30년 동안 세월이 흘렀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까지도 모조리 도륙 내겠다는 하만의 계획이죠.

그래서 하만은 왕의 환심을 사고자 왕에게 속삭였죠.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족속들 가운데 소수 민족이 있는데, 그들은 한때 패망해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인데, 그들은 특이하게도 자신들의 신만 신봉할 뿐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않는 족속이라고 말이죠. 그러니 그 족속을 다 멸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죠. 그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은 일만 달란트를 내겠다고 했죠.

그러자 왕은 소수 민족이라고 하는데, 바꿔 말해 보잘 것 없는 민족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하만에게 왕권을 부여했죠. 그때 하만은 조서를 꾸려 전국 방방곡곡에 파발을 띄웠죠. 아달월 13일에 모든 유다인들, 곧 남자나 여자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든 유다인들은 모조리 잡아 처형하도록 말이죠. 그 조서를 변개할 수 없도록 아하수에로 왕의 인장반지까지 확실하게 찍어두었죠.

 

그 사실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나갈 때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들이 알게 되었죠. 그때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수종드는 내시에게 그 사실을 알렸죠. 그러나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지만 자신의 처지가 왕에게 나아갈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죠. 하지만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하면서 왕에게 단호하게 나갈 것을 촉구했죠.

그때 에스더가 어떻게 했습니까? 에스더는 3일간 금식하면서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나아가겠다고 했죠. 그러니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유다 민족을 위해서 함께 3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자고 했죠. 그 금식이 끝나는 날에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심정으로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했죠. 바로 그 믿음 곧 죽으면 죽으리라는 그 믿음이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믿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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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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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용기 있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가 왕 앞에 나아갈 때 왕은 그녀에게 금 규 곧 금 홀을 내밀어 그녀의 접견을 허용했죠. 그때 비로소 왕을 알현하고 자기 소원을 아뢸 수 있었죠. 물론 에스더는 그 즉석에서 하만이 계획한 모략을 발설하지 않았죠. 그녀는 왕과 하만을 위한 잔치를 베풀면서 연회를 즐기도록 했지만, 그 다음날 한 번 더 잔치를 열 것이니 그때 왕과 하만이 오도록 했죠. 바로 그때 자기 소원을 아뢰겠다고 말이죠. 그만큼 그녀는 만사를 자신이 주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맡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들을 몰고 가시는 것을 지켜보며 따라간 것이죠.

그렇게 하고서 그 잔치는 끝이 났고 하만은 흥에 겨워 왕궁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목이 뻣뻣한 모르드개를 마주하게 됐죠. 그러니 기분이 좋다가도 모르드개의 얼굴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 모르드개를 죽이기로 결심하죠. 그래서 자기 집에 50규빗 곧 20미터에 달하는 장대를 높이 세우도록 하죠. 내일이면 그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처형하겠다는 뜻이었죠.

어떻습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 역사는 그렇게 권력의 2인자에 해당하는 하만의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만의 뜻대로 말이죠. 하지만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의지하며 3일간 금식하며 왕에게 나아갔던 에스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왕에게 나아갔던 그 에스더,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자기 민족의 환란을 위해 기도하던 유다 백성들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세상의 시소게임과 같은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만의 계획과 음모가 높이 치솟고 있고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이 한순간 몰락될 처지에 놓인 시소게임 말입니다. 바로 그 밤 중에 일어난 일이죠.

그날 밤 왕궁에서 잠을 자고 있는 아하수에로 왕이 잠을 설치면서 궁중의 역대일기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던 이들을 소탕하게 된 그 사기를 읽게 되었는데, 그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인물이 바로 모르드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리고는 그에게 상을 내렸는지 물어보자 아무런 상급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러자 왕은 그 밤 중에 하만을 불러 왕이 존귀하게 하고자 하는 자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었죠. 하만은 왕이 존귀하게 하는 자는 자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본문 8절 말씀처럼 왕의 옷과 왕의 말과 왕의 왕관을 그에게 씌워서 성중의 거리로 다니면서 거리를 활보하도록 하심이 좋겠다고 말하죠. 그러자 왕은 하만이 말한 대로, 대궐 문에 앉아 있는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없이 다 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죠.

이 상황을 보면 어떻습니까? 시소게임에서 하만이 모든 권력을 쥐고서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도륙 내고자 높이 치솟아 올라가고 있는 그때에 갑자기 유다 민족을 대변하는 모르드개의 권세가 서서히 올라가는 모습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죠. 이 시소게임을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하수에로가 그날 밤 궁중일기를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든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을 입고 왕의 왕권을 쓰고 왕의 말을 타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하여 그의 권세를 높이도록 한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죠. 그러나 아말렉 족속의 후예로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만은 결코 이 사실을 알 까닭이 없죠.

 

 

이상과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은 곧 용기요 용기 있는 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신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아무리 용기가 있어도 그 용기의 출처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는 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죠. 만약 에스더가 왕이 내민 금규 곧 금홀을 붙잡은 그 날에 곧바로 하만의 음모를 터트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만을 죽이고자 한 일은 무산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믿음의 용기를 갖고 왕에게 나아갔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죠. 그래서 그날 밤 왕이 잠을 설치고 궁중일기를 들여다보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것이죠.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역시도 우리의 조급함이나 성급함은 자제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그 여백을 내어드리는 삶을 사는 것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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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믿음은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 용기의 출처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내어 맡기는 믿음도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만사를 몰아붙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믿음의 여백을 갖고 하루를 살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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