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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느헤미야

십이 년 동안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느5:1-19)

by 권또또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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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가 자기 친동생과 동포들로부터 고국의 상황을 전해 들었죠. 예루살렘 성읍은 황폐화되었고, 성벽과 성문이 다 무너져 내렸다고 말이죠. 그때 왕 앞에 서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4개월이 지날 때 드디어 왕 앞에 술맡은 관원이 되어 알현할 수가 있었죠. 그때 느헤미야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아닥사스다 왕 앞에 섰고, 왕이 필요를 묻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왕에게 자기 계획을 이야기했죠. 말미를 주시면 자기 고국에 돌아가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고 돌아오겠다고 말이죠. 대신에 바벨론 지역의 강을 건너 유다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주시고, 또 성벽과 성문을 재건할 나무 벌목허가증까지 주라고 요청했죠. 그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드디어 유다 땅을 밟게 되었죠. 그리고 몇 몇 사람들과 함께 잠행에 나서 무너진 성벽과 성문들을 둘러본 다음에 유다 방백들에게 우리의 수치를 면하도록 하기 위해 힘을 모아 성벽과 성문을 재건토록 하자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감동을 주셔서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이야기했죠. 그러자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뜻을 모아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기 사작했죠. 각각 자기들이 사는 지역의 성벽과 성문을 할당된 대로 세워나가기 시작했죠. 물론 그 성벽과 성문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었죠. 외부 세력의 약탈과 유혹에 방비하여 자신의 신앙심을 굳게 지키는 것,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의 심령을 굳게 세우는, 그런 영적 울타리와 다를 바 없었죠.

하지만 그런 선한 일을 추진해 나가는데 방해세력들이 있었죠. 이전에 느헤미야가 3차 포로 인솔자들을 데리고 유다 땅을 밟을 때도 좋지 않게 여긴 이들, 이른바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예루살렘 성읍을 치겠다며, 반대하며 음해공작을 펼치고 나섰죠.

그때 느헤미야가 어떻게 합니까? 느헤미야는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고 있는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을 향해 선포하죠.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들이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세력들은 육신의 힘이지만, 우리를 돕는 이는 천지를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들의 꾀를 폐할 것이고, 대신에 우리의 형제와 자녀들과 집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실 것이라고 독려하죠. 그때부터 유다 방백들과 온 백성들은 반쯤 나눠서 그 일에 대응했죠. 한 쪽 부류의 사람들은 동이 틀 때부터 별이 날 때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칼을 차며 적들을 대비하고 있고, 또 한 쪽 부류의 사람들은 성벽과 성문을 세우며 건축하는 일에 매진했죠. 그 일들을 교대로 하며 철저하게 행해나가는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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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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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그렇게 열심히 진행하는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려는 그 외적인 세력들의 반대가 아닌, 유대 백성들의 내부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성벽재건 공사에 동원되느라 생계를 위한 곡식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히게 된 것이죠.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백성들의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아 돈을 빌려주었고, 돈을 갚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집을 빼앗게 되는 형국이죠. 심지어는 빚진 돈 때문에 자기 자녀들이 그들의 종으로 팔리는 형국이 된 거죠.

그렇듯 느헤미야 5장은 유대 내부의 문제, 곧 유대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으로 문제가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원성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상황이죠.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 힘이 없도다 하더라.”

가난한 자들이 자기 자녀들을 종으로 파는 형국인데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부자들은 그만큼 그들을 동족으로 보기는 하지만 철저한 거래관계로 바라본 것이었죠. 형제 된 동족들의 상황과 처지는 안중에 없었고, 오직 원금과 이자 회수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죠. 형제가 생계의 근간을 상실하고 고통을 당해도, 부자들은 그 고통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형제가 돈이 없어 자녀를 상실하고 부르짖어도, 그들의 부르짖음과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오직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가난한 형제는 쓸모없고 무능한 존재라고 치부했던 거죠.

 

그때 느헤미야가 어떻게 합니까?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방백들 곧 지도자들과 부한 자들을 향해 꾸짖습니다. 본문 8-9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느헤미야는, 성전을 재건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임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이죠. 그래서 정말로 방백들 곧 지도자들과 부한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동족들, 곧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 민족들, 그 중 가난한 자들을 거래의 대상, 부를 축적하는 대상이 아닌 형제애로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진정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면, 하나님께서 형제로 살게 하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 따른 구체적인 경외 방법을 느헤미야가 제시하죠. 본문 10-11절을 통해 밝힙니다.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느헤미야는 가난한 동족들이 집과 전토를 잃고 자식들까지 종으로 팔려나간 그 현실의 해결책으로, 그들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꾸어준 돈과 양식과 포도주와 기름도 백분의 일을 돌려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최소한의 살길을 서로가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백성들에게만 느헤미야가 그런 요구를 했다면, 바궈 말해 느헤미야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느헤미야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기에 과감하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본문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자신이 유대의 총독으로 지내는 12년 기간 동안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이 길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데 많은 비용과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부터 그 녹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방백들과 부자들에게 그런 요구를 할 때 기꺼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란 내 주변의 동료들, 혈육들, 교우들, 가난한 자들의 삶을 외면치 않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듯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베푸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죠. 내가 그 삶에 본을 보이면 나를 아는 사람들도 따라 행할 것이요, 내 자녀들도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죠. 아무쪼록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곧 내 형제와 이웃의 아픔에 손을 내밀며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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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하나님을 경외하되 추상적인 경외에서 벗어나 내 형제 내 교우 내 이웃의 아픔에 손을 내미는 경외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듯 아래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느헤미야가 그 삶을 솔선수범했기에 유다 방백들도 그 삶을 따랐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동굴집 객실이 없어서 우릿간 구유통에 누이셨는데, 그런 집이라도 있다면 내어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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