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즉위 20년 기슬르월에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산 궁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페르시아에서 자란 사람이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1, 2, 3차에 걸쳐 공격을 받았고 3차 공격 때 완전히 멸망당해 성전도 무너졌고 성벽도 허물어졌고 하층민만 남겨 둔 채 모든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갔죠. 그러나 그 바벨론도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에 의해 멸망당했죠. 그러니 바벨론 땅에 살고 있는 유다 민족은 자연스레 페르시아의 속국민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페르시아의 노예민족으로 살고 있는 유다의 부모 밑에 태어난 이가 느헤미야였습니다. 한 마디로 느헤미야는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유대 사회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그저 말로만 듣고 자란 세대였죠. 다만 아버지 ‘하가랴’처럼 하나님을 은혜를 기다리는 자였죠.
그런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에 살고 있었죠. 그때 바벨론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포로 귀환한 자들 가운데 자기 친동생 하나니와 몇몇 사람들이 수산 궁에 들러 느헤미야에게 고국의 상황을 전해주었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졌고 성문도 불탔고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이죠.
그런 이야기를 듣는 느헤미야는 어땠겠습니까? 억장이 무너졌겠죠. 그로 인해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과연 내 조국, 내 민족, 내 고향 예루살렘 성읍이 무너졌고, 성벽도 무너져 있는데, 내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말이죠. 물론 느헤미야는 그때 자기 한탄 자기 무능함을 아뢰는 기도를 한 게 아니었죠.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떠올리며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언약을 떠올리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비록 죄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하며 돌아서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쫓겨나고 추방당한 백성들이 다시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면 하늘 끝에서도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기도를 드렸죠. 그만큼 페르시아 땅에 태어나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그의 마음 속에 품고 살았던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1장 11절 마지막 부분을 통해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요셉이 감옥 속에 있을 때 바로 왕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을 만나 그들의 꿈 해몽을 통해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맡은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죠. 그처럼 느헤미야가 술 맡은 관원이 되었다는 것은 페르시아의 대왕 아닥스사다에게 엄청난 총애를 입게 된 것이죠.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직책이죠.
그만큼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 전반에 능통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그런 직책을 자신에게 수여한 것은 단순히 그의 결정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하나님께서 그런 복을 주신 것이란 사실을 말이죠. 더욱이 그 직책은 개인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함이 아니라 유대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기 위해 그 직책을 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가 그와 같은 은총을 입기까지 어떻게 했냐는 점이죠. 1장 1절의 기슬르 월, 곧 12월 달부터 오늘 본문 1절의 “니산 월”까지 곧 4월개월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잠잠히 기다려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술 맡은 관원이 되었고 왕 앞에 서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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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장으로 이어지는데 본문 1-3절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느헤미야가 왕 앞에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상들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폐하고 성문도 불타 버렸다고 말하죠. 그러자 4절에 왕은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말하고, 4절 하반절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묵도하고” 다시 말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5절을 통해 말하죠.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거든, 유대 땅 내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가서 그 성문을 건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죠. 그러자 왕은 6절을 통해 그 일이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말하죠. 느헤미야는 내가 기한을 정해 그 성벽을 완성하고 돌아오겠사오니,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가 유다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칙령을 내려주시고, 또 성전에 속한 문과 성벽에 쓰일 재목들을 벨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을 하죠.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느헤미야와 아닥사스다 대왕이 나눈 그 대화가 그대로 성취되도록 하나님께 은총을 베풀어 주시죠. 8절 하반절에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그래서 군대 장관과 마병까지 함께 동행하게 되고, 왕이 써 준 조서를 그 총독들에게 보여주고, 드디어 유다 땅으로 들어가게 되죠.
물론 그때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는 느헤미야와 함께 유다 땅으로 들어온 3차 귀환자들을 결코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죠.
어찌됐든 느헤미야는 3차 포로귀환자들 곧 극소수에 달한 유다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읍에 돌아오게 되죠. 그때 선조의 땅을 밟았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워 했겠습니까? 그리고 3일간 쉼을 얻은 후에, 제 4일째 되는 날에 느헤미야가 무엇을 합니까?
본문 12-16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를 올린 뒤에, 몇몇 사람들과 짐승 곧 나귀를 타고 무너진 성벽을 돌아보고 왔죠. 그때 귀족들이 어디를 그렇게 다녀온 것이냐고 물었죠. 그러자 느헤미야는 17-18절을 통해 지금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있어서 우리가 수치를 당하고 있는데, 이제라도 성벽을 재건하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수치가 없도록 하십시다, 우리가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분명코 도움의 손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죠. 그러자 모두가 감동을 받아 성벽을 재건하자고 말하죠.
물론 그때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었죠. 이전에 느헤미야와 3차 귀환자들이 들어올 때 달가워하지 않던 이들 곧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그랬고 이제는 아라비아 사람 게셈까지 가세하여 그 일을 비웃기 시작했죠. 너희가 성벽을 재건코자 한 것은 아닥스사다 대왕을 배반하려는 일이라고, 엄포까지 놓고 있죠.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느헤미야의 자세를 하나님께서 본받도록 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산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때가 임하기까지 기도하며 기다렸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때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실행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고 하면서 기도만 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신비주의나 도피주의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는 하지 않고 자기 계획만 세운다면 그는 하나님과 무관한 자기 능력만 믿는 세속적인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좇아 기도하고 간구하되, 구체적인 계획까지 준비하여 실행에 옮기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느헤미야가 3차 포로귀환자들을 인솔해 예루살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벽을 재건코자 함이었습니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숱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까지 기도하는 자였고, 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던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계획만 난무한 교만한 삶도 문제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바라고 기도하며 삶 속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신실하게 책임감을 감당케 하시옵소서. 그런 저희들에게 만남의 복과 능력의 복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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