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살펴볼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들 가운데 3차 포로귀환이 이뤄진 것, 그 인솔자인 느헤미야의 주도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일을 담고 있습니다. 이른바 B.C.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죠. 그로부터 117년 뒤인 B.C.605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의 통치 원년에 바벨론 제국은 남 유다를 정복하러 나섰고 그때 남왕국 유다의 제18대 왕 여호야김을 비롯한 젊은 인재들을 포로로 끌고갔죠. 그것이 제1차 바벨론 포로기였죠. 그때 다니엘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B.C.597년에 바벨론의 대왕 느부갓네살이 남왕국 유다를 공격했는데 그때 제19대 왕 여호야긴 곧 여고냐와 함께 많은 방백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때 에스겔 선지자도 끌려갔죠. 그로부터 11년 뒤인 B.C.586년 바벨론의 대왕 느부갓네살은 남왕국 유다를 3차 공격했는데 그때 예루살렘 성읍은 물론 성전과 성벽이 완전히 초토화되었죠. 한마디로 말해 남왕국 유다가 완전 멸망당한 때였죠. 그때 바벨론 제국은 남왕국 유다의 하층민만 남겨 둔 채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모든 방백과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죠. 그것이 3차 바벨론 포로 유수기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기 2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4장 28절에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하고 예언케 하셨죠.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유다 백성을 예루살렘 성읍에 다시금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한 말씀이죠. 그 말씀 그대로 페르시아 제국의 대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여 통치한 원년인 B.C.538년, 그러니까 제1차 바벨론 포로유수기인 B.C.605년으로부터 70년이 지난 시점에 제1차 포로귀환이 이뤄졌습니다. 약 5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성읍으로 귀환했죠. 그 인솔자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였고, 그들이 주로 한 일은 성전재건이었습니다. 물론 방해꾼들이 있어서 그 일은 20년 넘게 중단되었죠. 그 무렵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죽고 그 아들 캄비세스도 죽고 새로운 다리오 왕이 즉위할 때였죠. 그렇게까지 성전재건이 중단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봤던 90세의 학개 선지자와 젊은 20대의 스가랴 선지자를 불러 유다 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하도록 선포하게 했죠. 그런 과정을 통해 드디어 성전재건이 완공했는데 그때가 B.C.515년 일이었죠. 그 내용이 에스라서 전반부 제1-6장까지 나온 내용이었습니다.
에스라서 후반부 제7-10장까지는 제2차 포로귀환과 함께 그들의 무너진 심령을 말씀으로 재건하는데 초점을 맞춘 내용이었습니다. 제2차 바벨론 포로귀환의 인솔자는 에스라였죠. 그때 2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에스라와 함께 돌아왔죠. 그때는 다리오 왕이 죽고 그 아들 아하수에로 왕도 죽고 그 둘째 아들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한 B.C.458년의 일이었죠. 그 시기는 1차 포로귀환자들이 성전을 재건한 B.C.515년으로부터 57년이 지난 시점이자,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시절에 아말렉 족속의 후예였던 하만이라는 자가 유다 민족을 몰살시키려고 할 때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기치를 발휘애 유다 민족을 구원하던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때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해 아닥사스다 왕이 준 금과 은을 성전관계자에게 전달했고, 곧장 하나님께 감사제를 올려드렸죠. 문제는 제 1차 포로귀환자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잊은 채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삼아 사는 혼합주의 신앙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었죠. 그때 에스라는 그들의 죄를 유다 백성의 죄로 함께 아파하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좇아 살도록 촉구했죠. 그러자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방 여인을 다 돌려보내는 순전한 삶을 살게 되었죠. 그것이 에스라서 후반부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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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살펴 볼 느헤미야서는 역대기와 에스라서를 잇는 흐름 속에 있는 말씀입니다. 역대기가 포로귀환자들을 향한 설계도를 그린 것과 같았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실제 시공하는 장면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중에서도 에스라서의 전반부에 제1차 바벨론 포로귀환과 함께 성전재건에 초점을 맞췄다면, 에스라서 후반부는 제2차 바벨론 포로귀환과 함께 그 백성들의 심령을 말씀으로 재건하는데 초점을 맞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읽어나갈 느헤미야서는 제 3차 바벨론 포로귀환과 함께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데 초점을 맞춘 내용입니다. 그 옛날 에덴동산에 울타리가 있는 것처럼, 성막에도 울타리가 있는 것처럼, 유다 백성들의 영적인 울타리를 치는 모습이 성벽을 재건하는 격이죠.
느헤미야가 제3차 바벨론 포로귀환자들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 수는 극소수에 불과했죠. 그때는 아닥사스다가 통치할 무렵인 B.C.445년의 일로서, 에스라가 제2차 포로귀환자들을 이끌고 돌아온 때로부터 13년의 세월이 경과한 때였습니다.
느헤미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제1-7장인데 성벽재건을 담고 있고, 후반부는 8-13장까지인데 신앙개혁운동을 담고 있죠. 본문 1-3절에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헤미야는 ‘하가랴의 아들’로 소개하죠. ‘하가랴’란 ‘주님을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70년간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줄 것을 잠잠히 기다린 아버지였던 것이죠. 그만큼 느헤미야의 가정은 경건한 신앙인의 가정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거하고 있을 때, 포로귀환자들 가운데 두세 사람이 그에게 찾아왔죠. 그들이 느헤미야에게 말하죠. 3절에 보면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모두 불타버렸다고 말이죠. 제1차 포로귀환자들 가운데 예루살렘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금 바벨론 땅으로 돌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느헤미야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4-11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하죠.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6절에서는 주님께 범죄한 죄악을 자복하고 있고,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불순종한 자들에게는 이방 세력에게 흩어짐을 당할 것이지만 회개하며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늘 끝에 흩어졌을지라도 다시금 모아주신다는 사실을 고백하죠. 그리고 7-10절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죠.
그런데 11절 말씀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고백입니다. 느헤미야는 당시 아닥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인데,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직책을 맡겨주셨다는 고백입니다. 그것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그 직책을 통해 왕에게 간청할 때 왕이 즉각적으로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바로 그것을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에게 높은 직책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죠. 느헤미야 개인의 영달과 부와 권력을 주고자 함입니까? 아니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토록 하는 데 있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존귀한 직책과 직위를 맡길 때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느헤미야처럼 우리에게 세상의 지위와 직책을 부여하실 때 그 일을 통해 나 개인의 영달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느헤미야의 아버지 ‘하가랴’처럼 주님의 다시오심을 대망하며 사는 하루로 삼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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