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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에스라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스7:1-28)

by 권또또 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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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서를 처음 살펴볼 때 두 가지 흐름을 말씀드렸죠. 하나는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도구, 다시 말해 남왕국 유다를 징계한 하나님의 도구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사용하셨다면, 그 남 왕국 유다의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은총의 도구로 사용하신 게 바사 곧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이었다는 것 말이죠.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는데,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70년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걸어서 4개월가량 걸리는 1500km가 넘는 그 거리를, 그때 한꺼번에 돌아오지 않고, 포로로 끌려갈 때처럼 제1, 2, 3차에 걸쳐 포로귀환이 이뤄졌다는 점이었죠. 1차 포로귀환은 페르시아의 대왕 고레스가 바벨론 제국을 점령하여 통치하기 시작하던 원년 곧 B.C.538년에 진행됐죠. 1차 포로귀환의 인솔자는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였죠. 49,897명을 이끌고 포로귀환을 이루었는데, 그 귀환자들은 고향 땅에서 안식과 쉼을 얻은 후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곳에 모여 하나님께 속죄제와 감사제를 드렸고, 곧장 성전재건의 기초석을 놓고자 했죠. 그때가 B.C.536년의 일이었죠. 그런데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과 여러 인접한 사람들이 반대공작을 펼쳤죠. 그 무렵 고레스 대왕이 죽고 그 아들이자 폭군 캄비세스도 왕위를 이어받다가 아하수에로 왕이 등극했죠. 그 때가 에스더가 활약할 때였는데, 그 무렵 하만이 유대 민족을 몰살코자 한 일도 있었죠. 그런 과정이었으니 성전 재건은 더욱 힘든 상황이지 않았겠습니까? 그 후 다리오 왕이 새롭게 등극하는데 그때 성전재건을 하려는데 또다시 방해공작을 펼쳤는데 그로 인해 2년간 또 중단되었죠. 그때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재건을 다시금 독려했죠. 그러자 유다 방백들이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써 보냈죠. ‘우리가 성전을 재건코자 한 것은 왕과 대척점을 지고자 함이 아니라 당신의 선왕인 고레스 대왕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허락한 일이요, 분명코 고레스 선 왕의 기록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하고 말이죠. 그래서 다리오 왕이 그 조서를 바벨론의 보물창고에서 발견하여 다시금 성전공사가 진행되죠. 그런 과정을 통해 드디어 성전재건이 중단된지 20년만에 완공이 되었죠. 그때가 B.C.515년의 일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재건을 완공하고 유월절을 지킬 때 모두가 감격스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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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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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이 실은 에스라 제1-6장까지 나온 말씀이죠. 그리고 오늘부터 살펴볼 제7-10장까지는 제2차 포로귀환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때가 B.C.458년에 일어난 일이고, 페르시아의 대왕은 아닥스사다 대왕으로 바뀐 상태죠. 세상 용어로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죠. 이때 포로귀환의 인솔자는 에스라서를 쓴 기록자요 역대기의 기록자로 알려진 에스라입니다. 그리고 미리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죠. 3차 포로귀환은 아닥스사다 대왕의 통치 시절인 B.C.445년의 일이고, 이때 인솔자는 에스라서 다음에 나오는 느헤미야였습니다.

1차 포로귀환자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를 중심으로 성전재전에 힘을 쏟았죠. 2차 포로귀환자들 곧 그들을 대표하는 에스라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것을 이제 제7-10장까지 살펴보면 알 수 있겠죠. 그렇다면 제3차 포로귀환자들 그리고 그 인솔자인 느헤미야는 무엇을 했을까요?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던 인물입니다.

오늘 읽은 71-5절에 드디어 에스라의 신분이 나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 아론의 제16대손입니다. 물론 에스라의 존재감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죠. 본문 6절에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에스라 선지자는 아론의 16대손자임과 동시에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 곧 서기관이었다고 밝혀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자였다하는 부분이죠. 한 마디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에스라요, 페르시아의 대왕 아닥사스다의 총애를 받은 자였다는 점입니다. 바꿔 말하면 페르시아의 대왕으로부터 귀한 직책까지 누리고 있는 자로서 상당한 직위를 지닌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위치, 이런 신분, 이런 총애를 받고 있던 에스라가 7장이 시작될 무렵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던 그가 드디어 길을 나서는 모습이죠. 본문7-9절에 아닥사스다 왕 제 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 칠년 다섯째 달이라.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는 제2차 포로귀환자들을 이끌고 첫째달 초하루에 출발해서 다섯째 달 초하루 곧 4개월의 기간에 걸쳐 예루살렘 땅을 밟게 된 것입니다.

여태까지 잠잠하고 있던 그가 왜 이때서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된 걸일까요? 그냥 바벨론 땅에 살고 있어도 아닥스사다 왕의 총애를 받고 직위를 누리고 대접을 받을 텐데, 괜히 고향 땅 예루살렘에 돌아가 봤자 고생길이 환할 텐데, 그냥 눌러 앉아 있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본문 10절에 따르면 그 결심때문입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본래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던 레위인인데 그 정체성을 그가 깨닫고 길을 나서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1-26절을 보면 그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더욱 분명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아닥스사다 대왕의 조서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더 확고히 알 수 있죠. 아닥사스다 왕은 그의 조서를 통해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낸 두 가지 이유를 밝히죠.

하나는 하나님께 드림에 있었습니다. 왕이 하나님께 자기 은금과 제물을 통해 소제와 전제의 물품을 사서 드리도록, 그릇도 모자라는 부분도 궁중창고를 열어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드리돌고 명령하죠. 이방 나라의 왕도 그렇게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도록 하라는데, 어찌 에스더가 가만히 죽치고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또 다른 하나는 본문 25절에 나옵니다.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왕이 나서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 그것이 그들의 삶이 되게 하라고 독촉하는데, 어찌 에스더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고레스 대왕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제1차 포로귀환이 이뤄지게 한 것처럼, 지금은 하나님께서 아닥스사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으니, 에스라로서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 선지자는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보고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죠. 자신이 아론의 십육대손으로 태어난 것, 페르시아의 제국에서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살아야 했던 것, 자신이 아닥사스다의 총애를 받고 남이 갖지 못한 귀중한 직책까지 누리게 된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 때를 위함이라는 점을 깨닫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포로 된 백성들이 귀환할 때에도, 성전이 재건되다가 중단될 때에도, 다시금 20년에 걸쳐 완성이 되어 그들이 유월절이 지킬 때에도, 자기 나라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페르시아에 눌러 있었지만, 드디어 자기 자신의 때를 위한 실타래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조명 속에서 그 결심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에스라서 제1-6장까지 에스라가 나오지 않았다고 에스라가 나오지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3:1)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도 에스러처럼 비록 무명으로 또 평범한 일상의 반복으로 그칠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시고 실타래를 풀어주시고 빛으로 조명하듯이, 우리 인생에도 그럴 날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묵묵히 각자의 삶의 무게를 담담하게 감당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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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10장뿐인 에스라서가 6장에 이르도록 에스라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무명의 여섯 장을 준비하셨고, 바로 이 때를 위함이셨습니다. 인생의 가려진 6막이 있을 수 있지만 드러나게 하시는 7막의 때도 분명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우리 각자의 삶의 무게를 담담하게 감당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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