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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19-20)

by 똑똑이채널 202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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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발췌) 김홍양 목사의 부흥으로 역전하라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래전에 서울에서 개척할 때 잠실효성교회 김홍양 목사님과 교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렸을 때 말더듬이였다가 주님의 은혜로 고침받고 은행원이 되었다가 주님께 부름받아 목회자가 된 분이었죠.

그분이 잠실 지하상가에서 4명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부흥을 해서 하남으로 이사를 가서 교회 예배당을 짓게 된 분이었죠.

그토록 어렵고 힘든 지하상가교회 시절에 정말로 신실한 집사님이 있었는데, 그 분의 삶을 책에 옮겨서 쓰기도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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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사님은 15년 전까지 불교신자였습니다.

김홍양 목사님이 2년을 좇아다니며 전도하다보니까 당신이 섬기는 교회에 나오게 되었죠.

그때부터 그 분은 10년 동안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니 어땠을까요?

10년간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넘쳐났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쫄딱 망했습니다.

시아버지는 중풍으로 돌아가시고, 남편은 실적이 없다고 보험회사에서 정리해고되었고, 자녀들은 방황하게 되었죠.

결국 남은 재산을 정리해서 3-4천만원하는 인천의 달동네로 이사해 가셨습니다.

 

그런데 인천에서 잠실까지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면서까지 그 분은 그 뒤로도 3-4년을 열심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 가운데서도 믿음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그 결과는 암이었습니다.

14년의 신앙생활 가운데 남은 것이라고는 암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런 암울한 상황인데도 그 분은 더욱더 열심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그 후에 건강을 되찾게 되었고, 남편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자녀들은 엄청나게 성공을 했다고 하죠.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그 집사님이 좋은 결실을 거두게 된 것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까닭도 있지만 늘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고 알아주신다는 신앙고백이 그 집사님의 심령 속에 살아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당시에 56세가 된 그 집사님은 암수술 이후에 무려 36kg이나 빠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너무나도 안쓰러워서 그 목사님이 가까운 교회에 나가라고 해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죠.

목사님. 한 번 만난 목사님은 영원한 목사님이고, 한 번 만난 교회는 영원한 교회예요.”하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가 끝난 후에는 항상 그 목사님께 기도를 받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그 집사님이 그렇게 고백을 했다고 하죠.

목사님, 저 이제 다 나았어요. 목사님. 이제 다 나았어요.”

몸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그 집사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회복케 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중심의 신앙고백, 교회 중심의 신앙고백, 감사하는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본인은 물론 가정과 자녀들의 삶까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간증입니다.

 

(적용) 어떻습니까?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 자신의 신앙생활은 어떤지 돌아보게 되지 않습니까?

나도 하나님의 중심의 신앙고백으로, 교회중심의 신앙고백으로, 감사중심으로 신앙고백을 갖고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은 형편이 좀더 펴지고, 건강이 더 나아지고, 자녀들이 승승장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돌아가실지라도, 남편이 실직을 당할지라도, 자식들이 방황할지라도, 그런 형편 속에서도 감사하는 게 진정한 감사의 삶이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자신의 몸에 암이 발병하여 매일매일 살이 쭉쭉 빠져가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 중심의 신앙고백을 놓지 않고 감사하며 사는 것 말입니다.

 

오늘 나에게도 그런 감사의 삶이 있는지 우리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추수감사주일인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찬양) 별빛 속을 걸으며 주의 은혜 헤어보니

수많은 별보다 더욱 크신 은혜라

저 별빛보다도 따뜻한 은혜

저 달빛보다도 애달픈 그 사랑

주님 내게 값없이 이 사랑 주셨으니

이젠 빚진 자로서 더욱 주만 사랑하리

 

(역배)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25만이 살고 있는 항구도시로서 세계 곳곳의 무역상들이 드나들던 그곳에서 말이죠.

그곳 에베소에는 24개의 유방이 달린 아르테미스 신상이 우뚝 세워져 있었는데, 세계 곳곳의 무역상들이 그곳에서 빌고 또 빌었죠.

무역상들이 사업번창을 위해 비는 모습 앞에 에베소의 구리세공업자들은 부적용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돈벌이를 했죠.

 

그런 에베소에 들어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부부와 함께 평일엔 천막을 만들고 안식일엔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죠.

3개월간 그렇게 복음을 전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거부했고, 그때부터 2년기간은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했죠.

그때 천막을 만들 때 사용하던 앞치마 격의 보자기와 땀을 닦을 때 사용하던 천조각을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에게 얹을 때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났죠.

그 일로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왔는데, 그 무렵 마술사들이 엄청난 책값에 달하는 마술책까지 불태우는 일들 앞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겠다고 나왔죠.

 

그런데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구리세공업자들은 자신들의 돈벌이가 끊길 것을 걱정해 수많은 시민들을 끌고 에베소 연극장에 달려갔죠.

그곳에서 바울의 추종자 곧 주님의 제자 2명을 앞에 세우면서, 그들은 모두 에베소의 아데미 신이시여하고 2시간 동안 열광했죠.

다행히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던 연극장의 서기장이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그들의 집회를 모두 해산시켜버렸죠.

그때 그곳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바울은 배를 타고 마게도냐를 거쳐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에베소에서부터 바울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엉뚱한 일로 바울을 고소한 사건이 터졌죠.

그 일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가이샤라로 끌려가 구금되었고, 로마의 네로 황제의 법정에 상소해서 로마까지 갔죠.

그때 바울은 로마의 자기 셋집을 얻어 구금된 상태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에베소서를 비롯해 4개의 편지를 써 보냈죠.

 

바울이 그렇게 셋집에 감금된 상태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에베소서를 써 보낼 때 어떤 목적을 갖고 써 보냈다고 했나요?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 곧 하나님의 선택하심의 은혜였다는 것이었죠.

그러니 그 구원에 대해 서로들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앞에 감사하며 교회의 몸을 세우도록 하라고 권면을 했죠.

 

그것이 에베소서의 전반부 내용이었다면, 후반부는 구원받은 성도의 합당한 삶에 관한 권면을 써 보냈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3주 동안 읽었던 에베소서 5장 말씀은 큰 틀에서 빛의 자녀답게 살라는 권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둠 속에서 빛의 자녀로 부름받게 되었다면 마땅히 세상의 어둠과 구별된 빛의 자녀답게 살라는 것이죠.

그런데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은 세상의 신이나 권력이나 세상 흐름에 떠밀려 죽은 자로 사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 있는 자로 사는 자들이라고 했죠.

지난 시간에는 술취하지말고 성령에 충만함 속에 사는 자들이 빛가운데 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술은 단지 술만 말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것에 집착하고 푹 빠져 분별력조차 잃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죠.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 것에 취하면 방탕하게 될 뿐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살아야 한다고 했죠.

 

(본문) 오늘 본문 15절은 5장 전반부의 마지막 단락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원해) 이 말씀은 감사하며가 맨 나중에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은 감사하라는 말이 맨 먼저 나옵니다.

감사하라는 헬라어 유카리스테오’(εχαριστω)는 문자적으로 은혜를 말하다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사는 신앙인이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명령형입니다.

더욱이 항상그리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죠.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셔서 빛의 자녀로 불러주신 은혜를 새기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원성) 이것은 마치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서 317-8절에 그런 고백을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게 없는 상태가 어떤 상태입니까?

우릿간에 양도 없고 외양간에 소도 없는 상태가 어떤 상태입니까?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의 침략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되고 약탈당한 상태라,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 아닙니까?

 

그런데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이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하고 고백을 합니다.

왜죠?

감사란 나의 외적인 형편이나 상황과는 무관하게, 나를 구원해주시고 나를 기억해주는 주님이 계심을 알기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감사하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형편이나 바울을 바라보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형편이 뭔가 안전하고 넉넉한 상태의 형편인가요?

그렇지 않죠.

오히려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 갇혀서 바깥을 나서지 못한 채 2년간 감금된 상태에서 이 편지를 써 보낸 형편입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정조 곧 이산이 왕으로 있던 1801년에 정약전이 천주교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흑산도에 유배된 것과 같은 형국이죠.

바울도 지금 유대인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로마의 네로 황제 법정에 상소하다가 자기 셋집에 감금당한 상태였죠.

더욱이 로마의 셋집에 감금돼 있다는 바울의 소식을 전해 들은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동일한 형편 아닙니까?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몸은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아데미 신과 로마 황제와 유대인들의 눈총을 받으며 살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죠.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그런 상황임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권면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김홍양 목사님이 섬기는 그 교회 집사님의 모습과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를 믿다가 교회에 발을 내딛게 되었는데, 10년간 축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가정이 힘들어지는 상황 말입니다.

시아버지 죽고 남편 실직하고 자식들마저 고통에 처하는 그 모습 말입니다.

더욱이 그 집사님도 암이 걸려 36kg이나 빠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할 처지였습니까?

그렇지만 그 집사님은 한 번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으로, 한 번 목사님은 영원한 목사님으로, 한 번 교회는 영원한 교회로,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고백, 감사중심의 신앙고백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갔습니다.

 

어떻습니까?

바로 그것이 진정한 감사중심 신앙고백 아닙니까?

내 형편과 처지가 어떻든지간에 나를 구원해주시고, 나를 바라보시고, 나를 인정해주시는 주님 앞에 흔들림 없이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 말입니다.

 

(주문) 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 주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형편에 처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고 사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것이죠.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으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바울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택연금에 처했는데, 주님께 그 형편과 처지를 모르겠느냐?”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세상의 신과 로마의 권력과 유대인들의 질시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주님께서 그걸 모르겠느냐?”

정약전이 1801년에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흑산도에 유배당한 걸 왜 주님께서 모르겠느냐?”

그 주님은 네 삶의 형편과 처지도 아시고, 네가 지금 주님을 믿는 상황 가운데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알지 않겠느냐?”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유다 왕국의 백성들도 포로로 끌려가고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그 상태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하지 않더냐?”

바로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감사하며 사는 삶이지 않겠느냐?”

잠실효성교회 그 집사님도 주님을 믿는 일로 힘들어지고 몸에 암이 생겼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감사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더냐?”

너도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때로 손해보고 고통을 겪는다해도 매사에 하나님 중심으로 감사의 삶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의 빛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 낙엽 위를 걸으며 주의 은혜 헤어보니

수많은 잎보다 더욱 많은 은혜라

황금빛보다도 소중한 은혜

노을빛보다도 포근한 그 사랑

주님 내게 값없이 이 사랑 주셨으니

이젠 빚진 자로서 더욱 주만 사랑하리

 

(예화) 강충원의 감사진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강충원 씨는 1978년 당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설계부장이었습니다.

그 무렵 취미로 증권시장에서 증권을 사고파는 일에 재미를 붙였죠.

그러다가 옵션 상품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 나온 증권들을 점검하던 중에 4-5개 종목이 내일이면 급등할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때 5,000달러 이상, 그 당시 가치로 80평 규모의 집 한 채 값을 증권에 투자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는 그 증권들의 옵션 가격을 예상하고 곧장 중개상에 전화를 걸었죠.

내일 그 종목들을 각각 말한 액수에 사 주세요.”

그런데 다음날 느닷없이 회사로부터 캘리포니아 출장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온통 증권에 쏠려 있었으므로 정말로 달갑지 않는 일이었죠.

 

캘리포니아로 떠난 다음날, 오전 회의를 앞두고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주식에 대한 생각을 꽉 차 있었습니다.

애가 탔지만 그 당시에는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없던 터라 연락이 쉽지 않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오전 회의를 마치자마자 그는 방문한 회사에 전화를 빌려 증권 중개상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그는 흥분해서 말했죠.

당신이 예상한 대로 오늘 증권시장은 대단했습니다. 모든 증권들이 상한가를 쳤거든요.”

그렇다면 내가 사라고 한 증권 옵션은 구입했겠죠?”

그러나 온종을 당신을 찾았다는 말과 함께 연락이 되지 않아 구입하지 못했다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수만 달러의 돈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오후 회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지만 바쁜 일이 있다며 거절해버렸습니다.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캄캄한 호텔 방안에서 한참 동안 멍하게 서 있었죠.

그러다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음성이 울렸습니다.

감사하라. 감사하라.”

지금 바닷가에 나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고함을 지른다고 해서, 아침에 깬다고 해서, 네 마음이 가벼워지겠느냐?”

그때서야 그는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고백이 터져 나왔고 눈물이 쏟아졌죠.

그것은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답답했던 마음이 출구를 찾는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그가 이제 뉴욕에 살 때 누나의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 와서 살게 된 대학 후배 부부를 밤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배는 매형을 죽이고 한국으로 도망갈 생각이라고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던 후배의 매형은 술만 먹으면 난폭해져서 자기 누나를 심하게 때린다고 하는 것이었죠.

그 당시는 한미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라 마음만 먹으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었죠.

하지만 그는 그 후배의 마음을 한시라도 삘리 진정시키는 게 급해 보였습니다.

그때 번뜩이는 게 바로 감감축이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축복하는 것이 그것이었죠.

그래서 자신에게 좋은 방법이 있다고 말해줬고, 그것이 후배가 살고 누님 가족이 사는 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후배의 눈이 반짝 빛나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그 후배에게 감감축의 카드를 내밀었죠.

그런데 그 후배는 말도 안되는 것이라면서 일어서려고 하죠.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그 후배를 달래듯이 설명하며 감감축을 하도록 이끌어냈습니다.

 

그러자 그 후배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으면서 따라하듯이 기도했습니다.

김 아무개 씨가 나의 매형이어서 감사합니다.”

매형이 누님을 심하게 때렸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매형에게 복을 주셔서 장수하고 사업도 잘하고 크게 성공하게 해 주세요.”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배는 용수철처럼 튕겨 오르듯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화를 냈습니다.

그것만은 못하겠습니다.”하고 말이죠.

갑자기 기도가 중단되었지만, 감사는 매형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아무리 감사하더라도 네가 축복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매형을 용서하는 게 아니라고 말이죠.

결국 그 후배는 다시 앉아서 그의 기도를 따라서 했습니다.

매형을 축복해주셔서 사업에 성공하고 장수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 타이른 그는 그때서야 그 후배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그 후배는 그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자기 매형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누나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누나의 가족이 평화를 되찾았다고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감감축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딸이 아버지인 그분에게 쓴 편지입니다.

 

아빠.

로스쿨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기 전 여름에 인턴으로 근무하기 위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답니다.

제일 먼저 연락이 온 곳은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로펌이었어요.

기업 업무를 전문으로 하고 신생 기업드로가도 일을 하는데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분야였어요.

 

하지만 그 인턴십을 얻지 못했어요.

결국엔 세 번째로 원했던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로펌 사람들 모두와 꽤 친하게 되었죠.

여름 동안 일한 결과도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로스쿨을 졸업한 뒤 다시 그 로펌으로 와서 일해 달라는 채용 제안을 받지는 못했어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많이 당황했지만 저는 전화를 받는 내내 그런 마음을 품었어요.

내가 인턴으로 일했던 로펌에서 나를 채용할 생각이 없다고 해서 많이 속상하지만 감사합니다.”하고 말예요.

 

더욱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 줄 거라 생각한다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지요.

그리고 나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제 앞길을 좋은 길로 인도하실 거라는 생각에 감사가 차올랐어요.

나를 채용할 생각이 없다는 소식을 전해 준 그 파트너에게도 감사할 수 있었답니다.

그는 저를 보고 정말로 품위 있는 여인이라고 칭찬했죠.

전화를 끊는 즉시 그 로펌에서 여름 인턴십을 했던 것도 감사하고, 그곳에서 나를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감사했죠.

그 로펌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감감축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빠.

20015월 로스쿨을 졸업할 즈음에 닷컴열풍이 꺼지고 있었어요.

많은 기업들이 도산에 이르고 경제 거품은 꺼지고 있었죠.

그 바람에 쇼크를 받은 많은 로펌들이 사라지게 되었고요.

제가 그 전 여름에 인턴십을 하고 싶었던 그 로펌도 몇 몇 소송 전문 변호사들만 남기고 나머지 변호사들을 해고해야 했어요.

그때 저는 그 로펌에서 인턴십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또 감사했어요.

정말로 하나님은 미래에 제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계셨던가 봐요.

 

그리고 그해 7월에 변호사 시험을 치르고 난 몇 달 후 911테러가 발생했어요.

전 세계 경제가 더욱 힘들어지고 채용 경기는 얼어붙었지요.

최고의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1년을 실직 상태로 보내게 되었답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끊임없이 인내하며 감사를 자꾸했고,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놀랄만한 뭔가를 해 주실 거라는 믿음과 기대가 생겼어요.

그리고 마침내 20027월 변호사 시험을 보고 정확하게 1년이 지난 뒤에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중소 로펌으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았어요.

거기서 훌륭한 상사 변호사들과 동료 변호사들을 만났고 제 법률 비서에게도 복음을 전했답니다.

그녀는 결국 제가 다니는 교회에 나와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어요.

 

아빠.

지금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그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어요.

지금껏 모든 면에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바르게 살아 왔는데,

예를 들어 열심히 노력하여 적성에 맞는 좋은 학교를 졸업도 하고 또 온 힘을 다해 기술과 학문을 배우고 익혔는데도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무조건 더욱 감사하라고,

끊임없이 감사하며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또 최선을 다하라고 말예요.

그러면 더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긍정적인 기대가 생길 테니까요.

저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끊임없이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을 명확하게 알려 주신다는 그 믿음 말예요.

 

(깨달음) 어떻습니까?

이런 일들은 우리의 자녀들도 그렇고, 또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들 아닙니까?

직장 상관 때문에,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감감축이죠.

하나님,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분과 일하는 동안 그 일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그분이 더욱더 그 일을 잘 해 낼 수 있도록 하나님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적용) 그와 같은 감사진법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유대 민족의 마음 속에도,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속에서 불어넣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의 가택연금상태에 처한 바울에게도, 세상의 어둠을 이겨내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불어넣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죠.

잠실효성교회의 그 집사님이 암으로 죽을 고생할 때도 주님께서 불어넣고자 하신 감감축의 마음인 줄 믿습니다.

 

(내음성) 그러니 우리가 주님 앞에 어떤 목소리로 기도해야 할지 잘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감감축의 감사진법을 잃지 않게 살게 해 주세요.”

주님. 내 곁에는 다 천사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를 서운케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도 주님,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으로 감사하며 살게 해 주세요.”

더욱이 그 사람이 뭔가 오해하여 나를 힘들게 할 때도 그때도 더욱 감사하며 살게 해 주세요.”

그 사람이 직장이나 일터나 모든 면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복을 내려주세요.”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 사람도 주님의 자녀인 줄 믿사오니, 그런 마음으로 제가 감사하며 늘 살게 해 주세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께서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인 줄 믿어요.”

 

(찬양)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2021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추수감사주일인 오늘 뭔가 결실한 게 많고 풍족하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어도,

그런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감옥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고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녹녹치 않는 형편이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잠실효성교회 집사님도 주님을 믿기로 다짐했지만 10년간 고생하며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진법을 잃지 않았습니다.

강충원 집사님도 대기업의 경쟁자들 속에서 감사진법을 잃지 않았고 로스쿨에 다니던 그 분의 딸도 감감축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를 잃지 않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 안에서 더욱 선한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그와 같은 감사의 주인공들,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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