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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5:15-18)

by 똑똑이채널 202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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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 지금도 북한이나 중국에는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지하교회란 지상교회와 반대되는 말이죠.

지하교회는 북한 노동당이나 중국의 공산당 체제를 피해 음지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모임을 말합니다.

 

북한에는 지상교회조차 말살하고 있지만 중국은 외교력차원에서 지상교회를 허용하고 있지만 다 허울 뿐인 교회가 많죠.

중국의 지상교회는 겉으로 보면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지만 실은 중국정부의 통체와 감시 속에 있는 교회죠.

 

그런 지상의 교회에는 자유롭게 성령의 역사를 모실 수도 없고, 성령의 역사에 순종할 수도 없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중국이나 북한에선 지하교회 모임을 통해 성령님의 충만함을 간구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받들고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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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그런 뜻에서 볼 때 우리가 너무나도 자유롭게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죠.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모임에도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예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주체가 되거나, 인간의 제도나 통치가 주인이 되는 그런 예배는 기뻐 받지 않는 분이시죠.

오직 성령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성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예물을 드리는 그런 예배를 기뻐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만큼 성령님의 임재를 소망하며 예배드리길 원한다면 예배 전에 나와 사모하며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겠죠.

북한이나 중국의 지하교회는 2-3시간씩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를 사모하고 준비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발췌) 그런데 성령님은 예배 가운데에만 임재하시는 분이 아니시죠.

하나님의 자녀들 곧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도 친히 역사하시고 주도하시고 섭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예배가 삶이 되도록 견인하시고 삶이 예배가 되도록 이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죠.

 

마크 배터슨의 올인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100여 년 전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필라델피아교회에는 두 쌍의 부부를 아프리카 콩고에 선교사로 파송했죠.

데이비드 플러드와 스베아 플러드, 그리고 조엘 에릭슨과 버서 에릭슨 부부를 보낸 것입니다.

그들 두 부부는 정글을 헤치고 들어가서 원주민 마을에 선교 본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사역 첫 해에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를 못했죠.

원주민들은 자기 부족의 신()들이 화를 낼까 무서워서 복음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도 예수님 신() 믿는다면 조상신이 화를 낸다면서 거부한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베아는 매일 그녀의 집 뒷문으로 신선한 달걀을 배달해주는 5살짜리 원주민 꼬마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죠.

 

그런데 그 스베아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했는데, 임신기간 내내 말라리아와 싸우며 병상에 지냈습니다.

결국 1923413일날, 그녀는 아이나라는 예쁜 딸아이를 낳고서 17일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그녀의 남편 데이비드는 마을 전경이 보이는 산중턱에 아내를 묻고 슬픔에 젖었습니다.

곧이어 남편 데이비드는 하나님을 원망한 채 갓난아기 아이나를 에릭슨 부부에게 맡기고 스웨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부터 에릭슨 부부는 그 아이를 잘 키웠는데, 어느날 에릭슨 부부마저 사흘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원주민들이 그 부부를 독살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 에니아는 미국인 선교사 부부 아서 버그와 안나 버그에게 보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양한 딸 아이나의 이름을 아그네스로 지었고 애칭으로 애기’(Aggie)라고 불렀습니다.

버그 부부는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목회하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기는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위치한 노스 센트럴 성경대학에 들어가 남편을 만났습니다.

훗날 애기의 남편 듀이 허스트는 노스 센트럴 성경대학의 총장이 되었고, 결혼 25주년 선물로 학교측에서 스웨덴 여행을 보내줬죠.

그러니 애기에게 그 여행은 여행이나 휴가보다도 50년 전 자기를 버린 친아버지를 찾는 게 목적이 됐습니다.

하지만 5일 동은 수소문해도 찾을 길이 없었고, 급기야 미국으로 돌아기 전날에 아버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건물 3층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그 애기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아이나예요.”

그렇게 자기 딸이 말하자, 아버지 데이비드는 회한이 가득한 말 한 마디를 했습니다.

너를 버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애기는 50년간 가슴에 남아 있던 상처가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톡홀름을 떠나 미국의 시애틀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죠.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만난 것으로 끝나게 된 것도 참으로 기가막힌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닙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 애기와 듀이 부부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게오순절총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1만 명의 대표들이 모였는데, 첫날 밤 연사로 나선 사람은 아프리카 콩고의 오순절교회의 감독 루히기타 온다고라였죠.

애기는 루히기타가 그녀의 부모가 반세기 전에 선교사로 사역했던 콩고 출신이라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이제 루히기타의 연설이 끝난 뒤에 애기는 통역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애기는 루히기타에게 플러드라는 이름의 선교사 부부를 아느냐고 물어봤죠.

그러자 루히기타는 정말로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알다마다요. 제가 매일 아침 스베아 플러드 선교사님의 집 뒷문에 달걀 바구니를 배달했는걸요.”

선교사님은 제게 예수님에 대해 말씀해주시곤 했어요.”

그런데 스베아 선교사님은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직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남편 분은 고국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분에게 아이나라는 이름의 아이가 하나 있었죠.”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늘 궁금했어요.”

그때 애기는 자신이 바로 그 아이나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생이별을 한 오누이처럼 부둥켜안고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깨달음) 이와 같은 사실을 어떻게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오직 성령님의 섭리 속에 성취하신 일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죠.

애기의 부모님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복음의 씨를 뿌렸지만 한 명도 거두지 못한 채 엄마도 죽고 아버지마저 떠나버렸죠.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슬픔속에서도 50년이 흐르는 동안 어린 생명 루히기타의 심령에 복음의 씨가 자라도록 이끌어주셨던 것이죠.

 

(적용) 이와 같은 사실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것이죠.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침묵 가운데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성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지금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소아시아 지역의 에베소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 에베소는 당시에 인구 25만이 살고 있는 항구도시로서 세계 곳곳의 무역상들이 드나들던 곳이었습니다.

더욱이 그곳 에베소에는 24개의 유방이 달린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우뚝 세워져 있었죠.

그러니 이집트와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와 인도에서 오는 무역상들은 아데미 신전에서 사업번창을 위해 빌고 또 빌었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에베소의 구리세공업자들은 무역상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해 부적용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았죠.

 

바로 그런 에베소에 바울이 들어가 3년 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혼자서 복음을 전한 게 아니었죠.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만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를 이미 에베소에 남겨 둔 채 돌아왔다가 다시금 그곳에 들어간 격이었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그 부부와 함께 천막을 만들며서 안식일이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3개월간에 걸쳐 복음을 전했죠.

나머지 2년 기간은 티란노스의 스콜레곧 두란노라는 사람의 상가를 빌려 점심 낮잠자는 시간에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죠.

 

그때도 바울이 모든 걸 주도한 게 아니라 바울 너머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죠.

그때 바울은 천막 만들 때 사용하던 앞치마격의 보자기와 땀 닦을 때 사용하던 천조각을 귀신 들린 자와 병든 자에게 얹었죠.

그러자 그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났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조차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죠.

 

그 뿐만 아니라 그 에베소에는 바울이 오기 전부터 마술을 행하던 마술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마술사들조차도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 앞에 자신들의 마술을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여태껏 모아놓은 마술책들을 불태워버렸는데, 그 책값만 은화 5만 드라크마였습니다.

은화 5만 드라크마는 한 사람의 5만 일 분 임금으로 한 사람이 13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거금이죠.

그런데도 그들은 바울 앞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앞에서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그걸 불태워버린 것이었죠.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믿음으로 가능한 일일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친히 일으키신 섭리였습니다.

그러니 더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주님께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런 와중에 데메드리오라는 구리세공업자가 자기 수입이 끊어질 걸 내다보고 많은 동업자들과 시민을 불러모아 연극장으로 달려갔죠.

물론 그저 간 게 아니라 바울을 따라다닌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아리스다고’, 곧 주님의 제자 둘을 앞세우고 간 것이었죠.

그곳에서 그 구리세공업자들과 시민들은 그 전부터 떠받들던 아데미 신의 이름을 부르며 2시간 가량 열광했죠.

그만큼 바울과 함께 하는 모든 일들을 아데미의 이름으로 기를 죽이고자 함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섭리 가운데 연극장의 서기장이 무장한 군인들을 대동해 그 집회를 해산시켜버렸습니다.

그때 바울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배를 타고 애게해를 건너 예루살렘에 돌왔죠.

하지만 뒤이어 예루살렘에 온 에베소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바람에 결국 체포당하여 로마까지 이송되었죠.

그때 바울은 로마에 이송돼 네로 황제의 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2년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2년동안 바울은 로마 군인들이 보는 앞이라 집을 나설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오늘 본문의 에베소서를 비롯해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써보냈죠.

 

(전개) 바울이 로마의 가택연금 상태 속에서 에베소서를 써 보낼 때 무엇을 중점에 두면서 써 보냈다고 했습니까?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죄와 사망의 어둠 속에서 지금 빛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라는 것이죠.

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구원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고 했죠.

 

다만 어둠 속에서 빛으로 불러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주 안에서 빛된 자녀임을 기억하며 빛의 자녀다운 삶 곧 빚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했죠.

 

그래서 우리가 에베소서 5장 말씀을 읽으면서 지난 시간까지 두 시간에 걸쳐 핵심적으로 살펴본 말씀이 그것이었죠.

너희는 주 안에서 빛이라하는 말씀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하는 말씀 말입니다.

 

왜 바울이 그런 권면의 말씀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또 이 편지를 함께 돌아가면서 읽을 소아시아 7교회에 써 보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전 에베소 성도들이 모두 아데미 신을 좇고 세상의 어둠을 좇아 살았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빛된 자녀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죠.

그렇지만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세상 탐욕과 로마의 권력와 세상 시류에 휩쓸려 죽은 물고기처럼 사는 성도들이 없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 성도들은 살아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는 죽은 자들 가운데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가 돼야 한다고,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은 사도 바울의 이 편지 본문을 읽는 동안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됩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 자인가?”

나는 세상 시류에 휩쓸려 죽은 물고기처럼 사는 자인가 아니면 죽은 자들 가운데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로 살고 있는가?”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빛의 자녀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그런데 이것은 내 힘과 내 열심으로 될 것 같지만 우리 곁에서 계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죠.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원해) 왜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한 것이겠습니까?

술취함 속에 살아서는 성령님의 뜻을 분별할 수도 없고,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주석가 핸드릭슨(Hendrkisen)은 당시 헬라인들은 디오니소스(Dionysous) 제의 때 신과 깊은 교제를 위해 술을 마시고 취했다고 합니다.

에베소 시민들 역시 아데미 신에게 빠져들기 위해 술을 마시고 춤과 환락에 취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하지만 그것이 어찌 그들의 신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일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술에 취하면 이성을 잃고, 사리분별을 상실하게 돼,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말이죠.

 

우리가 민수기를 묵상할 때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도 하나님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고 만 걸 살펴봤죠.

그들 역시 사리분별력을 상실할 정도로 술에 취해, 이교도의 불을 가져와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다가, 그렇게 죽임당한 것이었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명분 아래에 술에 취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답과 아비후와 같은 꼴이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구약성경을 꿰뚫고 있는 성경학자이기도 하기에, 그 사실을 모를리 없을 것입니다.

 

그 까닭에 바울은 술에 취한 것은 방탕한 것이라고, 낭비하는 일이라고,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까닭에 바울은 술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에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죠.

 

여기에 충만함을 받으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은 성령의 의해 가득 채워지라”(NASB, but be filled with the Spirit)란 뜻이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이 가득 차서 너를 주관하시도록 하라”NLT, let the Holy Spirit fill and control you는 의미죠.

 

(깨달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령을 지배하거나 그분에게 명령하는 게 아니란 것이죠.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끄시도록 내 삶의 주권을 내어드리는 것이 성령충만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더욱이 성령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형이기에, 우리는 성령충만함에 사로잡혀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빛가운데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그 성령님의 충만하심 속에 거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가?

(은혜)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 취하기보다도 성령의 충만함 속에 거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이죠.

(주음성)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그렇게 우리 심령에 성령의 음성을 통해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너도 성령의 충만함 속에 거하기를 원한다는 걸 너는 알고 있느냐?”

성령은 생명과 진리의 영이요 널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진리로 인도하는 영으로, 성령을 네게 부어주길 원한다.”

그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 속에서 네가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는 예배자가 되길 원한다.”

그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아이나라는 아이의 엄마가 콩고 땅 복음의 불모지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지 않았느냐?”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한 명도 구원해내지 못했지만 주님은 침묵 가운데서도 복음의 씨앗이 자라도록 역사하지 않았더냐?”

그 일이 어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능력과 열심가운데 된 일이겠느냐?”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받고 마술사가 책을 불태우는 일이 어찌 바울의 개인적인 능력으로 된 일이었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지금부터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성령님의 충만함을 덧입고 살아야 이 죄악된 세상에서 어둠에 잠식당하지 않고 빛 가운데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성령님의 충만함 속에 살아야 이 세상에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로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성령님의 충만함 속에 있어야 이 세상의 것들에 취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며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찬양) 성령하나님 나를 만지소서 상하고 깨어져 지친 나를

새롭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시들은 내 영혼 살리소서.

성령하나님 이 땅 고치소서 죄악의 어둠 속 헤매는 우리

태워 주소서 성령의 불로 세상 헛된 맘 태우소서.

임하소서 성령 하나님이시여 지금 이 곳에 임하소서.

바람처럼 불처럼 성령이여 임하소서.

 

(발췌) 수요일 밤에 나눴던 말씀이 너무나 은혜가 돼서 다시 한 번 나누고 싶습니다.

김우현 감독을 이끄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관한 이야기였죠.

그 내용은 김우현의 하나님 심장이란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분은 맨발로 서울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최춘선 할아버지의 팔복이란 영상을 찍어 널리 알려진 분이죠.

실은 최춘선 할아버지는 가난해서 맨발로 복음을 전한 게 아니라 부유한 지주의 아들이요 일본 유학자였습니다.

그곳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그 일본 땅에서 우찌무라 간쪼의 제자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죠.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는 가난한 이들의 영혼을 구하고 살리는 주님의 통로였는데, 일제가 대동아 전쟁을 벌일 때 중국에 들어가 중국 빈민들을 섬긴 분이었죠.

중국의 장개석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도 바로 그 도요히꼬 목사에게 성경을 배웠습니다.

1945년 전세가 바뀌어 일본이 패망하고 200만 명의 일본군인이 인질로 잡혀 있을 때였죠.

그때 장개석 총통은 도요히꼬 목사 한 사람 때문에 그 200만 명의 일본인 군인 포로를 모두 돌려보내준 일이 있습니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바로 그 도요히꼬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고, 젊은 시절 김구 주석과 함께 만주 벌판을 누비며 광복군 투사로 일을 했죠.

 

광복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교파에 휩쓸리지 않고 참된 조선산 기독교조국 통일을 위해 맨발로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것이죠.

그 분이 돌아가신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일한 공로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삶을 김우현 감독이 찍었는데, 의도를 갖고 찍은 게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김우현 감독이 유명세를 탔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은 걸 알고 음지로 숨어들었죠.

그때 성령님께서는 하늘의 언어곧 방언의 세계를 열어주셨는데, 일본에까지 가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집회 때 K교수란 분을 만나 이스라엘의 언약과 회복에 대해 듣게 되죠.

그때까지 김우현 감독은 예수님을 죽인 이들이 유대인들 곧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었죠.

그러다 그의 고향땅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 교회에 가서 집회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죠.

그곳에서 집회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한 자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1990년대 초에 한국에 온 메시아닉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닉쥬란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이들을 말하는 것인데, 그중에 목사님들도 있다는 것이었죠.

그때부터 그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고, 용돈을 아껴서 메시나익쥬 목사님에게 헌금을 보냈다는 거죠.

 

그 후에 김우현 감독이 일본 삿포로에 가서 연합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손을 달라고 했는데 80%가 손을 드는 것이었죠.

그때 그곳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듯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인 자신들이 한 새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2008년 여름 김우현 감독이 처음 이스라엘 땅을 밟았는데, 그곳에서 아셔 인터레이트목사를 만나게 되죠.

그는 하버드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유대인인데, 1970년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주님을 만나 메시아닉쥬 목사가 된 분이었죠.

더욱 놀라운 것은 춘천에서 만난 그 자매가 기도하고 선교비를 보냈다는 분이 바로 그 아셔 인터레이트 목사였던 것이죠.

 

그 후에도 김우현 감독이 열 번에 걸쳐 이스라엘 땅을 밟고 그 땅 그 백성들이 주님을 영접하도록 간절히 기도했죠.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간증을 듣게 됩니다.

미국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레베카라는 자매가 어느 저녁에 홀로 예루살렘의 유대인 구역을 돌며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자기를 따라오는 기척을 느껴 불안한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레베카하고 자기 이름을 부르며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뒤돌아보지 마세요. 주님께서 당신 이름을 알려주셨고 이 말을 꼭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그는 거리를 두고서 조용히 따라오면서 그녀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정통 유대인 랍비였고, 50여명의 랍비들이 어느날 모여서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연구하고 토론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노크를 해서 문을 열어보니 자신들이 경멸하는 예수아”(예수님의 히브리 이름)가 서 있었다는 것이죠.

그때 그 랍비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인 줄 영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당황하는 그들에게 마치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말씀하셨듯이 그렇게 직접 가르쳐주셨다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아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령에 쓴 바 자기에게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4:25-27)

 

바로 그와 같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곳에 모인 랍비들이 모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변화됐다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한 랍비가 지금 예루살렘의 유대인구역을 돌며 중보기도하는 레베카를 따라오던 그 랍비였던 것이죠.

그 랍비가 성령님의 은사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면서 주님께서 그 자매에게 전하도록 한 말씀을 전하는 거입니다.

자매님 주님께서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자매에게 전하라고 하셨어요.”

전 세계의 유대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중보하라고 자매에게 전하라고 하셨어요.”

 

(깨달음) 무엇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 성령님의 역하심을 통해 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세계 만국에서 부르고 계신다는 것 아닙니까?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13:26-2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 앞에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온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무화과 나무가 잎사귀를 내고 무성해진다는 의미가 곧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들이 3만명 정도요,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 메시아닉쥬는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콩고는 물론 아프리카 내륙에도 전해져야 하지만,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에게 그 복음이 더 급속이 들어갈 때, 그때가 바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다가온 때라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일들이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성령님의 마음을 품을 때 성령님의 충만함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내음성)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는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섭리를 바라보게 해 주세요.”

주님, 주님은 지금도 성령님의 충만함 가운데 있는 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펼쳐 보이고 계시는 줄 믿어요.”

주님, 저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셔서 이 세상에 죽어가는 제 친구, 제 아내, 제 동료들의 영혼을 보게 해 주세요.”

주님, 저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셔서 주님의 빛 가운데 살 수 있도록 역사해 주세요.”

주님, 저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셔서 제가 사는 이 땅에 이 시대의 에베소를 향한 그 지경이 되게 해주세요.”

제가 누군가 한 영혼을 위해 주님 사랑을 나누고 섬기는 일이 콩고의 그 엄마가 한 일처럼 복음의 씨앗을 심는 일이 되게 해주세요.”

지금은 누구도 알 수도 없고,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지만, 훗날 주님께서 이 일을 통해 빛의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어요.”

주님, 이 연약한 자를 붙잡아주셔서 매일매일 성령의 충만함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빛으로 인도함 받으며 살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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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연약한 존재지만 우리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베푸시고 진리로 이끄시는 아버지의 영이십니다.

그 성령님의 충만함 속에 살 때 우리가 사는 삶은 진리의 삶이요 생명의 삶의 빛의 삶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의 것들에 취해 살지 않도록,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 속에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을 사모하며 성령님과 깊은 교제 속에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 제게 임하소서.”

성령 하나님, 제 심령을 통치하소서.”

성령 하나님, 제 삶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 주소서.”

성령 하나님, 죄악 속에 있는 제 친구 제 동료 제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저를 사용하소서.”

성령 하나님 제 인생이 주님 안에 거하게 하셔서 빛의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시옵소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와 같은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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